피부병 피하려 생수로 샤워, 식당 주인들 '생수 조리' 홍보
정부, 사태 16일째에도 허둥지둥 vs 이웃주민들 '온정의 손길'
"붉은 수돗물 못 믿어"…생수로 식재료 손질 |
(인천=연합뉴스) 홍현기 기자 = "더는 정부나 인천시를 믿지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서 이번 사태가 정상화될 때까지 기다릴 수 없지요. 우리 스스로 알아서 살길을 찾아야죠."
13일 오후 7시 인천시 서구 당하동 한 상가건물 1층에 있는 일식 요리 전문점. 한창 손님이 많아야 할 저녁 시간대지만 가게에 있는 10여개 테이블 중 절반 이상은 텅텅 비어있었다.
이 식당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지역 맛집으로 소개될 정도로 유명한 곳이지만 지난달 30일 붉은 수돗물 사태가 발생한 이후 손님이 자취를 감췄다.
이 식당의 위성철(33) 사장은 가게에 파리만 날리자 묘책을 떠올렸다. 조리과정에 모두 생수를 쓴다는 사실을 적극적으로 홍보하고 나선 것이다. 홍보 문구 덕분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나마 최근 손님이 다소 늘었다고 했다.
가게에는 음식을 조리할 때 쓸 생수통이 쌓여 있었다. 위 사장은 "설거지하는 물만 빼고는 식재료를 손질할 때도 생수를 쓰고 있다"며 "수돗물이 언제 정상화될지 몰라 생수를 쓴다고 홍보하면서 손님을 모으고 있는데도 손님이 많지 않다"고 하소연했다.
생수로 요리하는 음식점 |
이 가게는 생수를 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마실 물을 서빙할 때부터 아예 손님에게 생수병을 가져다준다.
가게 냉장고에는 손님에게 내줄 500㎖짜리 생수 수십병이 쌓여 있었다. 가게 밖에는 조리용으로 쓸 1.5ℓ짜리 생수병이 보관돼 있었다.
익명을 요구한 가게 매니저는 "여름철에는 메밀을 찾는 손님이 많아 장사가 잘 되는데 적수 때문에 손님이 없다"며 "생수를 사다가 쓰면서 추가 비용이 들어가지만, 보상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생수로 조리해요" |
인천 붉은 수돗물 사태가 해결의 기미를 보이지 않고 조속한 정상화도 기대하기 어렵게 되자 시민들은 저마다 방식으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정부나 인천시가 이번 사태 대응에 제 역할을 하지 못하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스스로 살길을 찾아 나선 것이다.
인천시는 또 붉은 수돗물 사태가 영종도와는 관련이 없다고 주장했다가 한국수자원공사의 조사 결과가 나온 뒤에야 기존 주장을 번복하기도 했다.
적수 사태의 여파는 강화도까지 영향을 끼쳐 인천시 강화군 내 초·중·고교 11곳과 유치원 1곳에서 적수가 의심된다는 보고가 들어오기도 했다.
14일로 붉은 수돗물 사태가 16일째를 맞았는데도 정부와 인천시는 아직 사태 원인조차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
13일 오후 찾아간 서구 당하동 빌라 가정집에는 화장실·주방·다용도실 등 수도꼭지마다 필터가 달려 있었다.
주방 수도꼭지의 필터가 이날도 금세 검게 변하자 주부 김선우(47)씨는 생수로 야채를 손질했다. 김씨가 이날 물티슈를 수도꼭지에 묶은 채 10분 정도 수돗물을 흘려보내자 물티슈에서 검은색 알갱이들이 발견됐다.
수돗물서 나온 이물질 |
김씨의 집 정수기에는 딸이 무심코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사용금지'라는 글이 써 붙여져 있었다. 다용도실에는 1.5ℓ짜리 생수병 80여개가 쌓여 있었다.
김씨는 "요리할 때는 반드시 생수를 쓰고 샤워를 한 뒤에도 생수로 몸을 한 번 더 씻는다"며 "딸 2명이 있어 하루 생수 20병 정도가 들어가 비용 부담이 크지만 샤워할 때 생수를 쓰지 않으면 피부가 가려워 어쩔 수 없다"고 호소했다.
서구 당하동 아파트에 사는 주부 이소영(36)씨도 "아이 4명을 키우는데 매일 샤워 후 몸을 헹구거나 음식을 할 때 모두 생수로 하고 있다"며 "아예 기존 수도관으로 들어오던 정수기 사용을 중단하고 생수통을 넣는 정수기를 빌렸다"고 토로했다.
샤워하기 위해 화장실에 비치한 생수병 |
정부나 행정 당국은 신뢰를 잃고 있지만 이웃 동네 주민들은 따뜻한 사랑을 발휘했다.
인천시 서구와 인접한 경기도 김포 지역 주민들은 모금 운동을 통해 구매한 생수를 피해지역 주민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자신의 가게나 집에 와서 물을 떠 가라는 시민들도 있다. 김포시 감정동 주민 안혜진(35)씨는 자신이 운영하는 세차장 수도를 무료로 개방했다.
안씨는 "수돗물로 아이들에게 피부병이 생겼다는 사진을 보고 뭐라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웃 주민들이 편하게 물을 떠 갈 수 있도록 수도꼭지를 외부에 설치하고 서구 지역 인터넷 카페에 글을 올렸다"고 설명했다.
무료로 수도 개방한 세차장 |
h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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