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 8일 서귀포 제주국제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6회 국제전기자동차엑스포’에서 기아자동차의 전기차 ‘쏘울 부스터 EV’가 관람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 기아자동차 제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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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연기관의 배기가스 규제 강화와 미국 일부 주와 중국의 친환경차 의무판매제도 등은 완성차업체들의 전기차 전환을 재촉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등은 가솔린과 디젤차의 단계적 폐지를 선언했다. 이런 흐름 속에 자동차업계는 전체 내연기관의 판매량이 지난해 정점을 찍고 올해부터 내리막을 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미 자동차 시장조사업체인 LMC 오토모티브에 따르면 글로벌 경량차량의 판매량은 지난해 전년보다 0.5% 감소한 9480만대로 집계됐다.
전기차 전환과 내연차의 판매 감소 등은 전통 자동차 부품산업의 고용 감소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독일의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지난해 6월 조사에서 전기차는 차량 전자장치와 배터리 영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지만 전체적으로는 약 7만5000개의 일자리가 감소할 것으로 예상했다. 전체 84만개의 일자리 중 약 9%에 달한다. 2030년까지 전기차가 모든 차량의 25%를 차지하고, 하이브리드 차량이 15%, 내연기관 차량이 60%를 차지하는 것을 가정한 수치이다. 전기차와 하이브리드차의 부품 대부분이 독일 내에서 생산되는 상황을 가정했다.
전기차 전환으로 인한 고용 감소는 부품과 공정의 변화 때문이다. 일본 자동차부품공업협회에 따르면 내연기관의 부품 수는 3만개인데 비해 전기차는 1만9000개, 수소차는 2만4000개이다. 내연기관 차는 변속기와 파워트레인, 흡기계와 배기계, 냉각계 등 수많은 기계계통 장치 부품이 필요하지만 전기전자계통 부품이 중심이 되는 전기차에서는 이런 기계 부품이 간소화되거나 불필요해진다.
EV 전환으로 고용 감소 우려
공정이 모듈화하면서 생산과정이 상대적으로 단순해지고 기간도 단축된다. 표준화된 부품을 조합하는 모듈화는 제조 공정에서 숙련 기술이 필요한 부분을 크게 줄여준다. 고도의 엔진 기술이 없어도 모터와 배터리 제조사와 협력해 자동차를 만들 수 있다. 테슬라와 중국의 바이톤 등 전기차 제조사들이 등장할 수 있었던 것도 모듈화, 수평분업화로 자동차산업의 진입장벽이 크게 낮아져서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지금 내연차는 대부분 강판 위주이지만 탄소섬유강화플라스틱(CFRP)이나 알루미늄으로 바뀌면 프레스 공정과 용접 공정에서의 고용이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미국처럼 3D 프린팅을 적극 활용하면 어려운 부품도 설계도만 있으면 언제든 손쉽게 만들 수 있다. 속도와 원가 문제만 개선하면 장차 숙련 생산공의 자리를 위협할 수 있다.
이런 위기감을 현장의 노동자들도 감지하고 있다. 정종훈 금속노조 르노삼성자동차 지회장은 “전기차는 내연기관과 완전히 다른 차라 부품수가 많이 줄고 특히 전기차 도입 시기가 자동화와 맞물리면서 고용이 줄어들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부품업체가 느끼는 위기감은 특히 강하다. 자동차 부품업체들이 밀집한 부산 장안공단에서 자동차 콘덴서와 배기가스 저감장치(EGR)를 만드는 독일계 기업 말레베어는 원래 260명이던 직원이 올해 희망퇴직과 자연퇴사로 210명으로 줄었다. 노조에서는 독일 본사가 전기차로 넘어가는 글로벌 차원의 흐름에 대비하기 위해 자금을 모으려는 움직임으로 해석했다. 임주희 금속노조 말레베어 분회장은 “내연기관 부품을 만드는 대부분의 사업장은 전기차 부품을 만들 준비가 안 됐다”며 “전기차로 인한 고용 감소가 이미 시작됐고, 앞으로 더 심해질 것이라고 본다”고 우려했다.
실제 국내 자동차 부품업체의 상황은 열악하다. 산업연구원이 지난해 상반기 상장사 94개사를 대상으로 경영성과를 분석한 결과 올해 1·4분기 평균 영업이익률이 2%에 못미치는 것으로 조사됐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이자비용을 내려면 3% 정도는 되어야 하는데 지금은 이자비용은커녕 연구개발이나 설비투자도 못하는 상황이다”라며 “완성차업체는 영업이익률이 5% 정도, 부품업체는 6~7% 정도 나와야 하는데 수요 부족으로 앞으로 상황은 더 나빠질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전기차로의 전환으로 고용이 줄어드는 규모는 완성차보다 부품업체에서 클 것으로 예상된다. 10억원의 매출당 고용인원을 뜻하는 제조업 취업계수를 보면 대기업은 0.9명, 중소기업은 4명이다. 10억원의 매출이 줄면 대기업에서 한 명의 고용이 줄 때 중소기업에서 4명의 일자리가 사라진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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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기업 간 협력 강화해야”
업계는 전기차 생산의 손익분기점을 연간 생산량 10만대, 누적 생산량 100만대 정도로 보고 있다. 문제는 투자비를 회수할 만한 초기 수요가 적다는 점이다. 한 자동차 부품업계 관계자는 “전기차의 경우 리스크를 안고 갈 의지가 있는 업체가 아니면 못키운다”며 “조선산업은 수주와 관련되어 위기가 눈에 보이지만 자동차산업은 눈에 보이지 않게 조금씩 무너지고 있다”고 말했다.
자동차산업협회에 따르면 자동차산업의 직·간접 고용은 전체 취업자의 7% 정도인 170만명이다. 자동차 생산에 10만명, 자동차 운수 쪽에 80만명, 자동차 정비·판매 쪽에 26만명 정도 등이다. 주유소나 기타 활용지원, 교통 할부 리스 등에도 22만명이 종사한다. 구영모 자동차부품연구원 연구원은 “자동차 생산파트만이 아니라 주유소와 같은 후방산업의 고용도 친환경차로 가면서 많이 줄어든다”고 설명했다. 엔진과 달리 전기차 배터리의 경우 적어도 7년 정도는 고칠 일이 거의 없어 정비분야의 일도 줄어든다.
이항구 선임연구위원은 “현대차는 최근 2030년까지 내연기관차 생산량을 50만대까지 떨어뜨리고 전기차 70만대, 수소차 50만대를 생산한다는 목표를 밝혔다”며 “내연기관과 전기·자율주행차의 부품은 완전히 다른 만큼 전기차 시대에 맞는 인력으로의 변화가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현재 국내의 경우 전기차의 핵심인 배터리와 모터 기술은 일정 수준에 올라와 있지만 첨단소재의 생산 역량, 자율주행을 위한 소프트웨어와 센서 기술에서 많이 뒤처졌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선임연구위원은 국내 기업 간의 협력 부족, 장기 전속거래 관행이 전기차 전환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반도체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차가 서로 협력하지 않고, 전속거래라는 관행으로 부품업계도 삼성과 현대에 교차해 납품하는 경우가 적다는 것이다. 그는 “자율주행 전기차 시대에서는 자동차와 전기·전자, 통신기술이 융합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려면 기업 간 협력이 필수이고, 그 협력 범위도 넓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처럼 성장기 전략인 ‘수직통합’만 고수하면 협력업체들은 갈 곳이 없어 각자도생할 수밖에 없다”며 “위기는 아래로부터 올 것”이라고 경고했다.
주영재 기자 jyj@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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