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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4 (월)

적폐 굴레 벗고 속도내는 민자사업…건설업계 “그래도 못 미더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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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가 그동안 달갑지 않게 생각하던 민간투자사업에 대한 태도를 바꾸면서 건설업계가 관련 사업 수주에 관심을 두고 있다.

사회간접자본(SOC) 투자 감소와 주택 공급 위축으로 수주 잔고가 계속 주는 상황에서 일감을 늘리는 데 중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건설업계에서는 정부 정책이 바뀐 예가 많아 섣불리 달려들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민간투자사업은 도로 등 SOC 시설을 정부 대신 민간이 투자해 짓고, 이용 요금 등을 통해 투자금을 회수하도록 하는 사업이다.

24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총 12조6000억원이 들어갈 13개 민자사업에 착공하기로 했다.

정부는 그동안 민자사업을 계속 줄여왔다. 지난 2007년 실시협약금액 기준으로 11조6000억원에 달했던 신규사업 규모는 지난 2017년 4조2000억원까지 쪼그라들었다.

조선비즈


특히 문재인 정부 들어서는 민자사업 진행이 더 어려워졌다. 민자사업이 사업자에게 특혜를 준다는 부정적인 시각이 팽배했기 때문이다. 정책 기조가 바뀐 대표적인 예가 서울~세종 고속도로 안성~세종 구간을 재정사업으로 전환한 것이다.

정부는 애초 민간투자사업 적격성 조사를 거쳐 이 구간은 민간투자사업으로 진행하는 게 유리하다는 결론을 냈었다. 하지만 이 사업이 문재인 대통령의 고속도로 공공성 강화 공약을 실행하는 대표 사업으로 꼽히면서, 2조5000억원쯤 되는 사업비를 전액 국고로 부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당시 그렇지 않아도 예산이 줄어 SOC 투자가 어려운 마당에 이 사업까지 떠맡는 것은 무리라는 의견도 많이 나왔지만, 정책 기조는 바뀌지 않았다. 이후 지난해에도 민자사업 업무의 상당수는 기존 사업의 실시협약을 변경해 통행료를 낮추는 것 등 공공성 강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하지만 올해부터 정부가 달라진 모습을 보이고 있다.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고용 위기가 거론되는 등 거시경제 상황이 나빠지자 민자사업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방향으로 정책 기조를 바꾼 것이다.

기획재정부는 올해 3월 민간투자사업 추진방향을 밝히면서 필수 공공시설의 조기 확충과 경제회복에 기여한다는 명분을 맨 앞에 내세웠다. 이어 "민자 활성화와 공공성 강화를 균형감 있게 병행해 추진하겠다"고 했다.

여기에는 그동안 지방자치단체와 이견이 있거나 환경영향평가, 주민민원 등으로 지체된 대형 교통사업 12조원어치를 빠르게 추진하겠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3조7000억원이 드는 평택~익산 고속도로와 1조8000억원이 드는 광명~서울 고속도로 등이 올해 민자로 추진될 대표적인 사업이다.

정부는 또 민간투자사업 진행 속도를 높이기 위해 단계별 허용 기한을 제한하고, 사업 대상은 모든 사회기반시설로 확대하는 등 전방위적으로 지원하겠다고 했다.

정부는 정책방향을 발표한 직후인 4월에 첫 민간투자심의위원회를 열어 4000억원짜리 서울아레나 복합문화시설 사업을 민간투자사업으로 지정하고, 한 달 만인 5월 초 두 번째 회의를 열어 부산 승학터널, 위례신사선 도시철도를 민간투자사업으로 지정해 제3자 제안 공고를 냈다. 또 평택동부고속화도로는 사업시행자를 평택동부도로 주식회사로 지정하며 속도를 냈다.

정부의 이런 변화에 건설업계도 계산기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민자사업 자체가 새로운 사업 기회가 되는 데다, 시공 물량도 동시에 확보할 수 있어서다. 하지만 당장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부담스럽다는 시각이 많다. 특히 그동안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등 민간이 준비해 제안한 사업을 정부가 가져간 예가 많다 보니 정부를 믿지 못하겠다는 분위기도 감지된다.

한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올해 들어 정부로부터 민자사업을 발굴해 제안해달라는 요청을 여러 차례 받았다"면서 "하지만 새로운 사업을 기획해 준비하는 데까지 2~3년은 걸리는 터라 당장 사업을 제안하기 어려운 것이 현실"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민자사업에 대한 정부의 태도가 바뀐 경험도 많아 올해는 정책 기조를 지켜보면서 준비를 하는 쪽으로 대응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대형건설사 관계자는 "늦은 감은 있지만, 이제라도 경기활성화 측면에서 SOC 투자를 늘리고 민간자본을 적극적으로 유인하는 방향으로 정책기조를 바꾼 것은 다행"이라면서도 "다만 최근 서울~세종 고속도로와, 평택~오송 복선화 사업 등 민간이 추진했던 사업들이 재정으로 전환된 사례가 나오다 보니, 정부 정책의 일관성에 의문과 우려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자사업은 정부와 민간이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진행돼야 한다"고 덧붙였다.

민자사업 컨설팅을 담당하는 한 회계법인 관계자는 "정부가 정책 기조를 바꿨지만 아직까지 건설업계에서 새로운 사업 준비를 시도하는 움직임은 많지 않아 보인다"면서 "정치권이 민자사업은 나쁜 것이라는 인식을 심어 국민 여론이 좋지 않은 것도 건설회사들이 부담을 느끼는 요인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민자사업에 대한 평가를 정치적으로 활용하지 않아야 시장 원리가 제대로 작동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재원 기자(true@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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