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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5.13 (월)

[필동정담] 국가폭력과 女警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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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국가는 강제적이고 폭력적이다. 몇몇 독재국가에 국한한 얘기가 아니다. 오히려 선진화된 체제일수록 국가의 강제력은 더 광범위하고 촘촘하다. 국가는 국민에게 원치 않는 세금을 징수하고 필요에 따라 자유를 제한하며 법을 어기면 신체를 감금하기도 한다. 선진국에서 공권력에 함부로 대들다간 신세 망치기 십상이다.

국가가 폭력을 갖게 된 배경을 단순화한다면 국가폭력을 용인함으로써 개인들이 누릴 수 있는 자유와 권리가 더 커진다는 합리적 믿음 때문일 것이다. 물론 내용상으로는 효율성, 즉 거래비용 문제가 깔려 있다. 옆집 숟가락 수까지 훤히 알 만큼 유대관계가 강한 작은 부족사회에선 개인 간 갈등과 분쟁을 조율하는 게 어렵지 않다. 하지만 대규모의 낯선 다수가 모여 사는 공동체에서는 개개인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의 합이 억압적 중재자에 의한 사회질서 유지 비용보다 훨씬 크다. 그 억압적 중재자가 국가라는 형태로 발전했다는 건 기초교육만 받아도 이해할 수 있는 얘기다.

국가폭력의 전형은 경찰 같은 공권력이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경찰이 일상적으로 얻어맞는 동네북에 가깝다. 지난주에도 경찰을 폭행한 주취난동꾼을 제대로 제압하지 못한 속칭 '대림동 여경' 문제가 불거졌다. 여경 무용론부터 공영방송 조작론에 이르기까지 인터넷 세상이 떠들썩하다. 경찰이 공개한 동영상을 보면 여경도 분명히 애를 쓴 건 맞지만 난동꾼을 제압하기엔 역부족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문제의 핵심은 특정 여경 개인의 신체적 능력 수준에 관한 것이 아니라 국가폭력이 정작 필요한 때 작동하고 있는가에 관한 것이다.

경찰 선발에서 여경 비중이 2015년 12%에서 올해 25% 이상 폭발적으로 치솟아온 현실을 감안한다면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다. 이번엔 경찰 따귀나 때리는 수준이었지만 다음번엔 강력범죄 현장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그럴 때 여경은 지원 병력이 올 때까지 발만 구르거나 주변 시민에게 대신 나서달라고 요구할 수는 없다. 그런 국가폭력이라면 존재가치가 없을뿐더러 부작용만 양산한다. 여경의 신체적 능력을 현저하게 키우든 무기를 보급하든 대책을 내놔야 한다. 인권 타령에 밀려 국가 개념마저 위태롭게 해선 안 된다.

[이동주 비상임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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