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천주교회의 성조로 불리는 광암 이벽(1754∼1785)의 저작 '성교요지(聖敎要旨)'가 후대 중국에서 활동한 미국 선교사 윌리엄 마틴(1827-1916)의 저서 일부를 누군가 베껴 쓴 위작이라는 연구결과가 제시됐습니다.
동서그리스도교문헌연구소의 김현우 연구원과 김석주 부소장은 18일 장로회신학대에서 열린 아시아기독교사학회 학술대회 공동 발표문에서 "윌리엄 마틴이 쓴 'The Analytical Reader'의 '쌍천자문(雙千字文)'과 이벽의 '성교요지' 본문이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을 발견했고, 이후 성교요지가 마틴의 'The Analytical Reader'의 내용 일부를 빼서 쓴 별쇄본임을 알게 됐다"고 주장했습니다.
발표문에 따르면 그간 성교요지는 이벽이 중국 내 천주교 전래를 소개한 '천학초함(天學初函)'을 읽은 뒤 자신의 서학관을 풀어쓴 것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성교요지는 한문 필사본 두 편과 한글 필사본 한 편이 현존합니다.
1967년 기독교사학자였던 김양선 목사가 숭실대에 기증하며 이들 필사본의 존재가 알려졌습니다.
한문 필사본 한 편은 한국 천주교 초기 사료인 '만천유고'의 잡고 편에 실렸습니다.
한글본은 한문본에서 주석을 제외한 본문 부분만 우리말로 번역한 것으로, 단순 학습이나 암기를 위해 두 번 베껴 쓴 것입니다.
성교요지의 나머지 한문 필사본은 '당시초선'이라는 문헌에 포함돼 있는데 만천유고에 실린 한문본과 본문 내용은 같지만, 주석은 없습니다.
연구자들은 마틴의 'The Analytical Reader'를 토대로 성교요지의 두 한문본을 비교한 결과 만천유고의 성교요지에서는 'The Analytical Reader'에서 발췌한 내용의 의도적인 수정, 탈루가 보인다고 지적했습니다.
당시초선에는 '성씨속해(姓氏俗解)'라는 글도 실려있는데 성씨속해도 'The Analytical Reader'의 1장에 있는 'FAMILY NAMES ANALYZED'와 내용과 순서가 모두 동일해 성씨속해가 'The Analytical Reader'의 내용을 표절한 것으로 판단했습니다.
연구자들은 "이는 소위 이벽의 성교요지라는 것이 'The Analytical Reader'를 필사한 것이라는 명백한 증거"라고 강조했습니다.
마틴은 'The Analytical Reader'의 서문 등에서 중국인 학자의 도움을 받아 천자문과 같은 사언절구(四言絶句) 형식으로 책을 지었다고 명확히 밝히는 반면 성교요지에는 이벽 선생이 썼다는 식으로 두루뭉술하게 적혀 있는 점도 대조적입니다.
연구자들은 "이벽이 자신보다 한 세기나 뒤늦게 태어난 마틴의 저작물을 필사했을 가능성은 전혀 없고, 반대로 중국에서 선교사로 활동한 마틴이 이벽 저작물을 입수해 활자본으로 출간했을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비록 성교요지가 위작 혹은 사기극이라고 해도 광암 이벽의 권위나 입지가 훼손되는 것은 결코 아니며 그는 여전히 한국천주교회의 성조임에 틀림없다"며 "위작 논쟁은 이벽 본인이 야기한 것이 아니라 후대 사람들이 사료 검증에 철저하지 못해 발생한 해프닝일 뿐"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최근 수년간 한국 천주교회 내부에서는 성교요지를 비롯해 한국 천주교 초기 여러 문헌을 놓고 위작 논란이 제기돼 왔습니다.
앞서 윤민구 신부는 이벽이 성교요지를 썼다는 기록이 중요 교회사나 백서에 나오지 않는다며 위작 주장을 편 바 있습니다.
(사진=한국천주교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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