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11공수여단에서 철거해 온 전두환 비석이 광주 5·18자유공원 화장실 옆으로 옮겨지고 있다./사진=뉴스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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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0년 광주에서 민주화의 불길이 피어올랐던 5·18 민주화운동 39주년이 하루 앞으로 다가왔다.
5·18 민주화운동은 1980년 5월18일 전후로 광주와 전남 등지에서 시민들이 전두환 전 대통령 등 신군부의 집권 음모를 규탄하고 민주주의 실현을 요구한 운동이다.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전두환씨 등의 집권을 가시화하자 광주에서는 전남대와 조선대 학생들 주도로 집회를 여는 등 다양한 활동이 벌어졌다.
갈수록 시위 규모가 커지자 신군부는 5월14일 공수부대를 투입해 학생을 포함한 시민들을 연행하고 언론을 통제했다. 그럼에도 시민들이 해산하지 않자 계엄군은 시민을 상대로 폭력을 행사하고 발포까지 하기에 이르렀다.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계엄군에 맞섰고 그 과정에서 확인된 사망자만 200여명 넘는 등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 당시 부상을 입은 상이자와 행방불명자 등 더하면 피해자 규모는 최소 7000명을 넘어선 것으로 조사됐다.
이후 5·18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실을 밝히기 위한 노력이 꾸준히 이뤄져왔다. 최근 "당시 전두환씨가 광주를 직접 방문해 헬기 사격을 지시했다"는 진술이 나오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김용장 전 주한미군 정보요원은 "전두환 당시 보안사령관이 1980년 5월21일 낮 12시를 전후로 K57(광주 제1전투비행단)을 방문했다"고 증언했다.
최근 이종명·김순례·김진태 등 자유한국당 의원들이 5·18 민주화운동을 '북한군이 개입한 폭동'이라고 주장하면서 논란을 빚기도 했다. 5·18 시국회의 등 시민단체들은 5·18 망언을 사과하고 제대로 된 징계 절차가 이뤄지지 않으면 황교안 한국당 대표의 광주 방문을 거부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5·18 민주화운동을 상징하는 민중가요 '임을 위한 행진곡'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임을 위한 행진곡은 당시 5·18 민주화운동 과정에서 사망한 두 남녀의 영혼결혼식을 내용으로 삼고 있다. 일부에서는 "국론을 분열시킨다"는 이유로 비판해왔지만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기념식에서 제창할 것을 지시하면서 다시 울려퍼지게 됐다.
한편 5·18 민주화운동 39주년 기념식은 이달 18일 국립 5·18 민주묘지에서 열릴 예정이다.
김영상 기자 video@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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