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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신성식의 레츠 고 9988] ‘국민연금=용돈연금’ 벗어나려 통계 바꾼 복지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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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금 수령액 적은 특례연금 제외

평균 수령액 38만→45만원 바뀌어

전문가 “꼼수 행정” 지적 잇따라

가입자에게 있는 그대로 알려야

중앙일보

세종시 어진동 국민연금공단 세종지사에서 민원인이 국민연금 관련 상담을 받고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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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건복지부와 국민연금공단이 평균연금액 공개 방식을 슬그머니 바꾼 것으로 드러났다. 전문가들은 ‘국민연금=용돈연금’이라는 지적을 희석하려는 의도가 짙다고 의심하고 있다.

복지부와 연금공단은 연금공단 홈페이지에 가입자·수령자·기금운용 등의 주요 현황을 집계해 매달 공개한다. 올해 3월 초 지난해 11월 치 실적을 공개하면서 내용을 싹 바꿨다. 월평균연금액을 45만2697원이라고 밝혔다. 전 달까지 특례노령연금(이하 특례연금)을 포함할 때 37만8971원, 제외할 때 45만2917원이라고 나란히 표기했는데, 특례연금 포함분을 빼고 금액이 높은 평균액만 공개했다. 마치 한 달 사이에 평균액이 7만원가량 증가한 것처럼 보인다.

특례연금이란 1988년을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95, 99년 확대할 때 고령자에 한해 5년만 가입해도 노령연금을 받을 수 있게 예외를 둔 것을 말한다.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월평균 21만5710원밖에 안 돼 이게 전체 평균을 갉아먹는다. 복지부는 발표 방식을 바꾸면서 평균연금액 산정에 특례연금·분할연금을 제외했다고 명시했지만 이게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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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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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는 노령연금(장애·유족연금을 제외한 일반적 형태의 국민연금) 평균액에도 특례연금을 제외한 수치를 제시했다. 50만9818원이다. 특례연금을 포함하면 39만원대로 40만원이 채 되지 않는다. 그동안 국민연금을 용돈연금이라고 비판할 때 특례연금을 포함한 평균액을 인용해 “국민연금이 40만원도 안 된다”고 지적해왔다.

또 종전에는 노령연금을 ▶20년 이상 ▶10~19년 ▶소득활동 ▶조기 ▶특례 ▶분할로 세분화해서 공개했는데, 이번에 이런 구분을 없애고 노령연금 평균액만 표기했다. 이 때문에 일정액 이상 소득이 있어서 연금을 최대 50% 깎인 경우, 57세에 소득이 없어서 연금을 30% 깎아서 당겨 받는 조기노령연금, 이혼하면서 나눈 분할연금 등의 실태를 알기 어려워졌다. 장애연금도 1, 2, 3급으로 구분하던 방식이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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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신재민 기자 shin.jae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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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지부 이스란 국민연금정책과장은 “특례연금은 국민연금 시행 초기에 5년만 가입해도 연금을 지급하던 한시적 제도였고 지금은 적용하지 않는다. 정상적인 연금이라고 할 수 없어 통계에서 뺀 것이지 다른 의도가 없다”고 말했다. 국민연금공단은 통계심의위원회를 열어 공개 방식 변경을 결정했다. ‘국민연금=용돈연금’이라는 오래된 비판에서 벗어나려는 의도가 작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전문가 시각은 다르다. 오건호 내가만드는복지국가 운영위원장은 “특례연금 수령자가 전체의 5% 정도라면 모를까 30%가 넘는다. 이들을 포함한 평균액도 수급 상황을 아는 데 중요한 정보”라며 “특례를 포함하면 평균액이 작아져 국민연금 신뢰에 부정적인 효과가 있을 것 같아서 뺀 것 같은데, 있는 그대로 자료를 제시하고 편파적으로 해석하지 않도록 유도하는 게 맞다”고 말했다.

더불어민주당 정춘숙 의원실 박상현 비서관은 “특례연금을 빼고 평균액을 산정하면 한 달 새 평균이 37만원대에서 45만원대로 오른 것처럼 보이는데, 국민을 오도하려는 꼼수와 다를 바 없다”며 “자신들에게 불리한 것을 제외할 것 같으면 통계를 제시할 이유가 없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고 가입자가 판단하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연금 수령자 10명 중 3명, 한달 21만원 특례연금 받아
특례노령연금은 ‘효도연금’이다. 88년 사업장가입자를 대상으로 국민연금을 도입할 때 나이가 많은 사람에게 5년만 가입하면 연금을 지급하도록 했다. 당시 만 45~55세가 대상이었다. 15년(지금은 10년) 가입해야 정식으로 연금이 나오는데, 5년만 가입하도록 일종의 특혜를 줬다. 당장 가입해도 만 60세 이전에 15년을 채우기 힘든 사정을 고려해 예외를 인정한 것이다. 95년 농어촌 거주자로, 99년 도시 자영자로 국민연금 대상자를 확대할 때도 비슷한 조건의 특례를 인정했다. 복지제도를 뒤늦게 도입하면서 경제개발에 기여한 고령층을 배려한 측면이 있다.

특례연금 수령자는 93년 처음 나왔다. 그 해 2만4000명이 받기 시작해 매년 증가했다. 2010년 164만5000명까지 증가했다가 점차 감소하고 있다. 한시적으로 운영했기 때문에 신규 가입자가 나오지 않는다. 기존 수령자가 사망하면서 지난해 10월 140만1211명으로 줄었다. 전체 연금수령자의 31.1%를 차지할 정도로 적지 않다. 2010년 55%였으나 점차 줄고 있지만, 여전히 적지 않다. 지난해 10월 기준 수령자 중 남자가 89만519명, 여자가 51만692명으로 여자가 적지 않다.

가입 기간이 짧아서 평균연금액은 21만5710원에 불과하다. 전체 수령자의 57%가 10만원대에 집중돼 있다. 80만원이 넘는 고액 수령자가 4939명이다.

특례연금 수령자의 79%는 70대 노인이다. 80세 이상도 8.1%에 달한다. 초고령 노인에게 매우 중요한 제도다. 10~15년 수령한 사람이 56%로 가장 많다. 15~20년 수령자가 30.1%로 다음이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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