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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주 전 육군 제2작전사령관은 "이순신 장군의 심정을 조금이나마 알 것 같았다"라고 말했습니다(5월 2일 동아일보 인터뷰). 지난달 26일 뇌물 혐의에 대해 2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고, 사흘 뒤인 29일에는 공관병 갑질 의혹과 관련해 검찰에서 직권남용 혐의 등에 대해 불기소 처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신에 대한 비판, 공격, 비난은 이순신 장군에 대한 비판, 공격, 비난이 그랬듯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고 주장하는 셈입니다. 조선일보 인터뷰에서는 억울한 비판과 수사를 받았다며 "국가 권력이 '육사 죽이기'를 하면서 현역 대장인 나를 표적으로 삼았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법원과 검찰을 통해 억울함을 벗었다는 박 전 사령관과 달리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여전히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습니다. 지난 2월 26일 법정에 출석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검찰은 정말 영민하게, 목표 의식에 불타는 수십 명의 검사를 동원해 법원을 이 잡듯 샅샅이 뒤졌다. 흡사 조물주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듯 300여 페이지나 되는 공소장을 만들어냈다"라고 주장했습니다. 자신에게 적용된 직권남용 혐의는 "무에서 유를 창조"한 것, 없는 혐의를 만들어낸 것이란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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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찬주의 당당함과 양승태의 억울함: 검찰의 상반된 판단
박찬주 전 사령관은 억울함을 풀고, 양승태 전 대법원장은 여전히 억울함을 느끼는 것은 검찰의 상반된 판단 때문입니다. 두 사람의 핵심 혐의는 똑같이 직권남용이었습니다. 하지만 박 전 사령관은 검찰의 불기소 처분을 받아 당당하게 언론과 인터뷰를 하고 있고, 양 전 대법원장은 구속된 상태로 검찰의 기소 처분을 받아 법정에서 항변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검찰이 두 사람에 대해 정반대 판단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두 사람의 상황이 실제로 판이하게 달랐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검찰이 비슷한 상황에 다른 기준을 적용한 것일까요?
이 취재파일에서는 검찰이 박찬주 전 사령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에게 모두 일관된 기준을 적용했는지 따져보려고 합니다. 나아가 검찰이나 법원에서 불기소나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것이 한 사람의 당당함을 보증할 수 있는 근거로 판단할 수 있는지도 살펴보려 합니다. 정치적·사회적 이슈와 인물에 대한 판단을 마치 승부를 가리듯 검찰과 법원에 맡기는 경향이 적절한지도 검토해보겠습니다.
● 박찬주는 왜 무혐의 처분을 받았는가: 직권남용의 딜레마
박찬주 전 사령관에 대한 검찰의 불기소 처분부터 보겠습니다. 박찬주 전 사령관의 '갑질'과 관련해 고발인인 군인권센터가 적용한 죄명은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와 군 형법의 가혹행위금지 조항 위반이었습니다. 핵심 혐의인 직권남용에 대해서만 살펴보겠습니다. 고발인인 군인권센터는 전직 공관병들이 주장하는 아래와 같은 박 전 사령관의 행동에 대해 직권남용죄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일부 혐의는 생략).
1. 2013년 가을 ~ 2016년 가을 경 공관병들에게 모과와 감을 따게 한 뒤 모과청, 감말랭이, 곶감을 만들도록 한 혐의
2. 2013년 4월 ~ 2017년 7월 경 공관병들에게 자신의 가족과 손님이 공관에 방문했을 때 바비큐 파티를 준비하게 하고, 자신의 아들과 친구들의 잠자리를 준비하게 하고 세탁을 시킨 혐의
3. 2015년 12월 ~ 2017년 7월 경 운전부사관과 전속부관에게 자녀들을 위해 자신의 개인차량을 운전하게 한 혐의
4. 2013년 4월 ~ 2017년 7월 경 공관에 있는 골프연습장에서 골프 연습을 하면서 공관병들에게 골프공을 줍게 한 혐의
5. 2015년 3월 경 육군참모차장으로 근무하면서 계룡대 근무지원단장으로 하여금 공관병들을 최전방 GOP 경계근무에 1주일씩 파견근무하게 한 혐의 (※ 공관병들 주장에 따르자면 부인의 요구에 저항한 공관병들을 GOP에 보낸 것이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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검찰은 피해를 당했다고 주장했던 공관병들을 여러 명 불러서 조사했습니다. 공관병들은 대부분 언론이나 시민단체 관계자에게 진술한 것과 마찬가지 이야기를 검찰 조사에서도 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검찰도 공관병들 진술에 신빙성이 없다고 판단해서 박 전 사령관을 불기소 처분한 것은 아닙니다.
불기소 처분의 주된 이유는 '갑질'이 박찬주 전 사령관의 '직권' 즉, 상급자로서의 정당한 권한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모과청을 만들게 하거나, 골프공을 줍게 한 것, 그리고 (공관병들 주장에 따르자면) 부인의 지시에 반발하는 공관병들을 GOP로 보낸 것들은 4성 장군이라는 '지위를 이용한 불법 행위'라고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장군으로서의 권한을 남용한 것은 아니라는 논리입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인지는 조금 뒤 자세히 살표보겠습니다.
그에 앞서, 박찬주 전 사령관에 대한 불기소 처분서 내용을 구체적으로 보겠습니다.
"판단건대, 형법상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는 사회적 비난 가능성의 존재를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그러한 지시들이 형식적, 외형적으로 볼 때 박찬주의 직무수행으로 인식될 것을 전제로 하는데, 박찬주의 (모과청을 만들거나, 손님 등을 위해 바비큐 파티를 준비시키거나, 자녀를 위해 운전을 하게 한) 위와 같은 지시는 객관적으로 볼 때 박찬주의 직무수행과 거리가 멀고, 나아가 제7기동단장·육군본부 참모차장·제2작전사령관의 일반적 권한 범위 내의 것이 아님이 명백하여 (설사 박찬주의 행위가 인정된다 하더라도) 직권남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
"직권남용은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는 사항에 관하여 그것을 불법하게 행사하는 것, 즉, 형식적·외형적으로는 직무집행으로 보이나 실질적으로는 정당한 권한행사 외의 행위를 하는 경우를 의미하고, 공무원이 그의 일반적 권한에 속하지 않는 행위를 하는 경우인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는 그에 해당하지 않는다…(중략)…골프공을 줍게 하였다는 사실이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두고 박찬주가 직무권한을 행사하였다고 볼 수 없으므로 직권남용죄로 의율할 수 없다고 봄이 상당하다(=타당하다)."
"(법에 규정된 절차에 따르면, 파견요청은 파견을 받는 부대가 먼저 요청하여야 이뤄지는데) 공관병들이 파견된 12사단이 아니라 박찬주가 육군참모차장으로 있던 육군본부가 파견요청을 실시하였다는 점 등에 근거할 때 박찬주가 계룡대 근무지원단장에게 공관병들의 파견의뢰한 것은 법적 근거가 없다고 판단된다…(중략)…따라서 박찬주가 계룡대 근무지원단에 공관병들의 12사단 (GOP 경계근무) 파견을 의뢰한 것은 육군을 지휘하는 육군참모총장을 보좌하는 육군참모차장의 권한행사 범위 내에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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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행동'과 '죄가 되는 행동'의 구분
불기소 처분서에 등장하는 검찰의 논리는 사실 상식적 법 감정과는 배치되는 면이 있습니다.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라는 '나쁜 행동'과 "직권남용"이라는 '죄가 되는 행동'을 엄격하게 구분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직권남용죄로 처벌하기 위해서는 육군참모차장이나 작전사령관이라는 '지위'나 '위세'를 이용해 부당한 행동을 하급자에게 시킨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지시를 받은 사람이나 제3의 인물이 볼 때는 정상적 직무수행을 위한 지시였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부당한 목적 달성을 위해 지시한 것이라는 사실이 입증되어야 한다는 논리입니다.
나쁜 짓을 한 것만으로는 부족하고, 형법에서 직권남용으로 처벌할 수 있는 조건 즉, 부당한 목적 달성을 위한 지시지만 겉으로 보기엔 정상적 권한행사로 인식되는 상황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 모과청을 만들라는 지시나, 공관병을 GOP에 보내라고 계룡대 근무지원단장에게 지시한 것 등에 대해 검찰은 겉으로 보기에도 정상적 권한행사로 인식되기 어려웠다고 판단했습니다. 쉽게 말해, 나쁜 행동일 수는 있지만 죄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문제는 검찰의 '박찬주 불기소 논리'가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무혐의를 주장하며 내세웠던 논리와 매우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양승태 전 대법원장 측은 '재판개입'이나 '재판거래'가 애초부터 불가능한 개념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예를 들어, 검찰 주장대로 법원행정처가 청와대의 협조를 얻기 위해서나 사법부의 위상을 강화하기 위해서 특정 재판장에게 판결문에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반영하도록 요구한 것이 사실이라고 가정하더라도, 헌법에 독립성이 보장된 재판부의 결정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대법원장의 형식적으로나 외형적으로나 권한행사 범위를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나쁜 행동'일 수는 있지만 처벌할 수는 없다는 논리입니다. 이런 논리에 입각해 통합진보당 지방의원 행정소송 개입 혐의나, 한정위헌 제청 결정 번복 지시 혐의 등 여러 혐의에 대해 양 전 대법원장 측은 '설사 검찰 주장이 사실이라고 하더라도, 대법원장의 직권 행사로 볼 수 없기 때문에 직권남용죄에 해당되지 않는다'라고 주장했습니다.
● '양승태 기준'과 '박찬주 기준'은 동일한가?
그럼에도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을 직권남용 혐의로 구속기소했습니다. 박찬주 전 사령관의 '갑질'은 권한행사로 볼 수 없기 때문에 '나쁜 행동'일 가능성은 있더라도 죄가 안 된다고 판단했지만,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사법농단'은 '나쁜 행동'일 뿐만 아니라 형식적으로나 외형적으로는 권한행사로 보이는 상황에서 실제로는 부당한 행동을 한 것이기 때문에 죄가 된다고 판단한 것입니다. 상반된 판단을 내릴 수는 있습니다. 문제는 검찰이 두 사람에게 같은 기준을 적용한 것인지 의심이 든다는 점입니다.
검찰은 박찬주 전 사령관에 대한 불기소 처분서에서 박찬주 전 사령관의 직권에 대해 7기동군단장이었을 때는 "7기동군단장의 최고 지휘관"이었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육군참모차장 시절에는 "육군본부의 최고 지휘관인 육군참모총장을 보좌하고 참모총장 부재 시 그 역할을 대행하는 임무를 수행"했다고 정의했고, 제2작전사령관일 때는 "제2작전사령부의 최고 지휘관"이었다고 불기소 처분서에 명시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근무하던 부대의 최고 지휘관이었거나, 육군 전체의 최고 지휘관을 보좌하거나 부재 시 대행하는 존재였다는 뜻입니다. 최고 지휘관이 소속 병사(공관병)에게 "개인차량을 운전하라"거나, 지휘계통에 있는 부하에게 "병사들을 GOP로 파견 보내라."라고 지시한 것에 대해, 지시를 받은 병사들이나 부대에 있는 제3자가 지휘관으로서의 지시라는 정상적 권한행사로 받아들일 여지가 없었는지는 의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일관성입니다. 검찰은 박찬주 전 사령관이 부하인 계룡대 근무지원단장에게 (자신이 보기에 근무 태도에 문제가 있는, 공관병들 주장대로라면 박찬주 전 사령관 부인의 부당한 요구를 거부한) 공관병들을 GOP로 파견 보내라고 지시해, 실제로 파견이 이뤄진 것은 정상적인 파견 절차를 어긴 것이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아니라고 결론 내렸습니다. 법령에 규정된 대로 권한이 행사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법적 권한행사의 형식을 갖추지 못했다는 것이니, '나쁜 행동'(=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일 수는 있어도, '죄가 되는 행동'(=직권남용)은 아니라고 판단한 것입니다.
하지만 이 같은 논리라면,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의 입장을 판결문 반영하라고 요구한 행위 등도 아예 헌법이 금지하고 있는 행위이기 때문에 합법적 권한행사의 형식을 갖추지 못한 것이고 따라서 죄가 안 된다는 판단도 가능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의 경우에는 사법행정권 행사의 형식 등을 갖춰 실질적으로는 법이 금지한 재판개입을 한 것이라는 논리를 구성한 반면, 박찬주 전 사령관에 대해서는 지휘관으로서의 지시의 형식 등을 갖춰 실질적으로는 법이 금지하는 개인 사역 동원 등을 시켰다는 논리를 구성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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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 전 대법원장이 직권남용으로 기소됐으니 박찬주 전 사령관도 기소되는 것이 당연하다는 주장을 하거나, 반대로 박 전 사령관이 불기소됐으니 양 전 대법원장에 대한 기소도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검찰이 전직 대법원장과 4성 장군이라는 중요 인물의 직권남용 혐의에 대한 판단을 내리면서 일관성을 유지하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하는 것입니다. 법원이라면 하급심마다 다른 판단을 내리는 것이 가능할 뿐만 아니라, 경우에 따라서는 바람직할 수도 있지만, 검찰총장의 지휘 하에 모든 국민에게 일관된 기준의 기소권을 행사해야 하는 조직인 검찰의 기준이 그때 그때 달라보이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이 아닙니다.
● '불기소 처분'은 '나쁜 행동이 없었다'는 뜻인가?
그런데 검찰 기준의 비일관성을 지적하기에 앞서 생각해봐야 할 점이 있습니다. 과연 검찰에서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법원에서 '무죄'를 받는 것이 공직자의 결백함과 당당함의 근거가 될 수 있느냐는 점입니다. 특히 직권남용 의혹의 경우는 검찰의 처분이나 법원의 판결에 따라 당사자에 대한 평가를 바뀌는 것이 과연 정당한 것인지 의문이 생깁니다.
앞서 말했듯이 직권남용과 관련해 자주 문제가 되는 쟁점은 '나쁜 행동'과 '죄가 되는 행동'의 구분입니다. 조금 더 전문적 용어로 말하자면 '지위를 이용한 불법행위'와 '직권남용'을 분리하는 것입니다. '나쁜 행동'이지만 '죄가 되는 행동'이 아닐 수 있듯이, '죄가 되는 행동'이 아니어도 '나쁜 행동'일 수는 있습니다. 죄가 되지 않는다고 해서 모든 정치적 사회적 책임을 면제받는 것은 아니라는 뜻입니다.
박찬주 전 사령관의 경우 검찰이 불기소 처분서에서 (이미 법리 판단을 통해 무혐의 결정을 했기 때문에) 사실 관계를 정확하게 확정하지 않았지만, 부대 지휘관이 부하인 병사들에게 감을 따서 곶감을 만들게 하거나, 자녀를 위해 개인 차량을 운전하게 하거나, 공관병들을 자의적으로 GOP 경계근무에 파견 보내는 행동은 사실이라면 적어도 '나쁜 행동'인 것은 분명합니다.
(※ 박찬주 전 사령관은 공관병들에게 감을 따게 했다거나, 부당한 이유로 GOP 파견을 지시했다는 점 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갑질'이 형법으로 처벌할 수 없는 행위라는 판정을 받더라도, 그것이 곧바로 당당하게 억울함을 주장할 수 있는 근거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대법원장이 법원행정처를 통해 재판부에 판결과 관련한 의견을 전달하는 행위나, 지휘관이 개인적 편의를 위해 병사들에게 부당한 행동을 요구한 것은 죄가 되든 안 되든 사회적으로 비판받아야 하는 일입니다. 검찰이 박찬주 전 사령관에 대한 불기소 처분서에 썼듯이 직권남용은 "사회적 비난 가능성의 존재를 전제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직권남용이 안 된다고 해서 사회적 비판을 면제받아야 할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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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검찰 수사에 너무 큰 판돈을 거는 사회: 검찰 권력의 근원
문제는 검찰의 무혐의 결정이나 법원의 무죄 판단이 정치적·사회적 이슈와 관련해 '어느 편이 나쁜 놈이냐'를 판단하는 거의 유일한 기준이 되어가고 있는 최근의 경향입니다. 물론 경찰이나 검찰은 불법 행위에 대해 수사할 의무가 있습니다. 법을 어긴 사람이 벌을 받는 것도 당연합니다. 하지만 정치권 내부에서 분쟁이 생길 때마다, 또는 사회적으로 비판받아야 하는 인물이 등장할 때마다 검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고 재판을 통해 유죄를 받도록 하는 것이 분쟁 해결 절차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지는 분위기가 언제부터인가 팽배해졌습니다.
검찰의 권력이 커진 진짜 이유도 이것입니다. 사람들이 고발장을 들고 검찰이 수사를 통해 "진실을 규명해달라"고 요구하는 순간, 사회적·정치적 이슈에 대한 팩트를 확정하고 문제의 틀을 설정할 수 있는 '정초적 권력'을 자발적으로 검찰에 넘기는 셈입니다. 그런 사람들이 많아질수록 검찰의 힘은 강력해집니다. '비대한 검찰 권력'은 바로 여기서 나옵니다.
수사를 통해서만 진실을 규명하고, '우리 편이 옳다는 것'을 인정받으려는 경향의 또 다른 문제는 형사 처벌이 아닌 영역에서 작동해야 하는 중요한 기능들이 무력화하는 현상입니다. 대표적 사례가 국회의 법관 탄핵 절차입니다. 검찰이 수사를 통해서 양승태 전 대법원장을 기소한 이후, 국회에서 진행되어야 하는 법관 탄핵 관련 논의는 어느 순간 사라져 버렸습니다. '죄가 되는 일은' 아니더라도 법관으로서 '나쁜 행동'을 한 여러 정황이 드러났지만, 검찰 수사 이후에는 마치 모든 책임규명과 사건에 대한 해결책 제시가 끝난 것인양 아무 논의가 이뤄지지 않고 있습니다.
대법원이 검찰의 비위 통보 대상가 규모에 비해 대단히 적은 수의 법관만 징계를 청구해도, 그 명단을 아예 공개하지 않아도, 언론과 여론은 별반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비단 사법농단의 사례 뿐만이 아니라, 검찰이 수사를 착수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때까지는 떠들석하던 여러 이슈가, 영장이 발부되거나 기소가 이뤄지고 나서는 모든 것이 끝난 것이양 정리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이런 일이 반복되면서 검찰의 구속영장 청구 여부, 기소 여부, 법원의 판결은 진실과 관련해 너무나 지나치게 많은 판돈이 걸린 승부가 되어버렸습니다.
● 수사는 수사, 재판은 재판, 그리고 비판은 비판
박찬주 전 사령관과 양승태 전 대법원장의 직권남용 혐의 판단 기준에 일관성이 없어 보이는 것은 물론 중요한 문제입니다. 앞으로 박찬주 전 사령관에 대한 항고 과정 등을 통해 기준의 일관성에 대한 의혹이 해소될 수 있을지도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수사와 재판이 정치와 사회의 영역을 모조리 대체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형사 처벌할 범죄가 아니지만 나쁜 행동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검찰과 법원이 처벌하지 않도록 결정했다고 해서 모든 문제가 해결됐다고 당당하게 주장하는 현상과 모든 문제를 검찰의 기소와 법원의 유죄 판결을 통해 해결하려는 현상은 동전의 양면입니다. 진실과 관련된 모든 판돈을 수사와 재판에 거는 지금의 방식을 끝내지 않고는 악순환은 끊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수사해야 할 것은 수사하고, 처벌해야 할 것은 처벌하고, 부끄러워해야 할 것은 부끄러워하는 정상적인 사회를 소원합니다.
(사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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