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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슈 아동학대 피해와 대책

[단독]수사기관이 놓은 아동학대, 엄마들이 바로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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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2017년 4월 ‘썬라이즈 발달대안학교’의 문제를 보도한 KBS 추적 60분 캡처 화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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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4월 3일. 서울 고등법원 민사7부(재판장 김종호 부장판사)는 10명의 학대피해 아이와 부모가 발달장애아 대안학교 썬라이즈 원장 부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식비를 제외한 후원금 및 교습비 등 총 1억8241만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 판결은 썬라이즈 측이 상고하지 않아 4월 19일 확정됐다. 2017년 4월 3일 첫 소송을 건 지 만 2년 만에 법원이 썬라이즈의 책임을 사실상 모두 인정한 것이다. 경기 용인에 위치한 썬라이즈 학교는 자폐성 장애전문 치료센터 또는 대안학교로 홍보하며 취학 전 어린아이들을 모집해 운영해온 곳이다. 이곳은 소송이 시작되면서 폐업해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증명 안 된 자폐아 치료로 돈 받아

학대피해를 입은 아이들은 모두 2015년 3~7월 입소했다. 교사들이 아이들을 학대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은 폭력이 이미 상당히 진행된 뒤였다.

자폐스펙트럼 장애를 갖고 있는 민성이(가명·당시 만 4세)는 어두운 화장실에 인형을 갖다 놓고 “벽 봐, 벽 봐, 말 잘 들을 거지? ‘잘못했어요’ 물어봐야지”라는 말을 반복했다. 소연이(가명)는 자신의 머리를 치며 자해했다. 자면서 “무서워요”라며 펑펑 울기도 했다. 아이들 중 일부는 외상 후 스트레스성 장애 진단을 받았다. 학대를 의심한 부모들은 2016년 1월 썬라이즈 학교 원장 부부를 고소했지만 검찰은 ‘증거 없음’으로 불기소처분을 내렸다. 아이를 강제로 질질 끌고 가는 CCTV 영상이 있고, 어두운 곳에 가뒀다는 진술이 있어도 기소할 만큼의 명백한 학대 증거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었다. 수사기관의 불기소처분으로 이들이 택할 수 있는 방법은 민사소송밖에 없었다. 그것이 2년을 끌어온 소송의 시작이었다.

재판부는 “피고들은 자폐성 장애를 가진 자녀를 키우고 있을 뿐 자폐성 장애아동의 치료와 교육에 관한 학위나 경력 등은 전혀 없고, 장애아동의 특성에 맞지 않는 무리한 교과교육 위주의 수업을 진행했다”고 판단했다. 또 “교사들로 하여금 아동의 교육과 발달상 허용되는 정도를 넘은 훈육과 벌을 주게 하는 등 자폐성 장애아동에 관한 전문성이 없음은 물론 교육적인 근거조차 찾기 어려운 독단적이고 부적절한 방법으로 학교의 교육을 진행했다”고 밝혔다.

해당 학교가 자폐증상 개선의 탁월한 방법으로 홍보했던 ‘자기자 치료’ 및 ‘고압산소 치료’에 대해서도 치료효과가 증명된 바 없는 방식이라고 결론냈다. 결국 자폐아를 둔 부모의 절실함을 건드려 후원금 명목으로 수천만 원을 내게 하고, 입증되지 않은 치료를 명목으로 돈을 뜯어내고, 나아가 아이를 학대한 잘못까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판결문을 받아든 엄마들은 어떤 마음일까. 민성 엄마는 기자와 전화통화에서 “그냥 홀가분하다는 마음밖에 없다”고 말했다. 항소심 재판까지 함께했던 부모들은 이제 뿔뿔이 흩어져 각자의 생활을 하고 있다. 학대피해 당시 만 4세였던 아이들은 이제 초등학교 2학년이 됐다. ‘민성이는 이제 학대 기억을 잊은 것 같으냐’는 질문에 민성 엄마는 “그건 잘 모르겠다. 아직도 문득문득 기억하는 것 같다”고 했다.

류인하 기자 acha@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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