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차 중에 단속기준을 넘는 공회전을 하고 있는 관광버스 |
◆미세먼지 유발하는 자동차 공회전
각 지방자치단체는 이른 바 ‘공회전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다. 공회전 금지법은 대기환경보전법 중 하나로 차량 공회전 시 발생하는 배기가스를 줄이고, 에너지 절감을 위해 제정됐다.
대기환경보전법에 따라 대기 온도가 섭씨 5도 이상일 때는 공회전이 2분까지 허용되지만, 0도 초과 5도 미만일 때는 5분 이내로 공회전할 수 있게 돼 있다.
그러나 도심 주요 관광지를 운행하는 관광버스들은 규정을 초과해 공회전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관광지 구경을 하고 돌아올 승객들의 편의를 위해 더울 때는 차량 실내온도를 낮추려 에어컨을 켜고, 추울 때는 실내를 따뜻하게 하려 히터를 틀어놔야 해서 버스에 시동을 걸고 공회전 상태로 대기할 수밖에 없다.
문제는 공회전 시 발생하는 배기가스가 대기를 심하게 오염한다는 것이다. 대기 중에서 다른 물질과 반응해 미세먼지와 초미세먼지를 만드는 이산화질소가 주로 버스 등 경유차에서 다량으로 배출되기 때문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이산화질소 등 대기오염물질을 ‘건강에 대한 주요한 환경적 오염’으로 규정한다.
◆“덥다고 항의하는데 어쩌라고”
30일 서울시가 지정한 ‘녹색교통지역(한양도성, 광화문, 경복궁, 홍인지문 등)’ 몇 곳을 돌아보니 관광지나 면세점 인근에서 승객을 하차시킨 관광버스가 도로 끝 차선에 일렬로 주차돼 있었다.
이 중 시동을 켜둔 일부 버스 기사들에게 그 이유를 물었다. 한 버스 기사는 “버스는 승용차와 달리 창문을 열 수 없어서 실내가 금방 더워져 에어컨을 약하게 틀어 온도를 유지한다”며 “한여름에는 에어컨을 켜지 않으면 더워서 못 견딜 정도다. 그나마 봄가을에는 시동을 켜고 끄길 반복한다”고 말했다.
관광객들이 관광을 하는 동안 마땅히 대기할 공간이 없다는 점도 원인으로 들었다. 다른 버스 기사는 “손님들을 내려주면 길게는 한두 시간 기다려야 하는데 마땅히 갈 곳이 없다”며 “하루에도 여러 곳을 옮겨 다니는데 인근 커피숍에 가는 것도 한두 번이지 버스에서 대기하게 도니다”고 전했다. 그는 “정해진 시간보다 빨리 돌아오는 손님도 많아 차 안에서 시간 때우는 일이 잦다”며 “에어컨을 끄면 나부터 덥고 갑갑하다. 손님들도 차 안이 덥다고 말해 어쩔 수 없이 시동을 켜둔다”고 말했다.
‘주자금지’ 표지판이 버젓이 있음에도 버스가 시동을 켠 채 주차돼 있다. |
단속 딱지를 피하기 위해 시동을 켜두는 경우도 있단다. 한 버스 기사는 “비상등을 켜두면 단속반이 차를 이동하라고 하든지 경고문을 주고 끝내기도 한다”고 말했다.
◆인력 부족으로 공회전 단속도 한계…일본 사례 참고 등 개선방안 시급
공회전 금지법에 따라 자동차 공회전이 제한된 장소에서 시동을 켜고 5분을 초과한 차량은 사전 경고 없이 과태료(5만원) 부과 대상이다. 하지만 단속 인력이 부족하고 현실적으로 모든 차량을 단속할 수 없어서 공회전 차량 대다수가 방치되는 실정이다.
관광버스 기사들은 “차에서 대기하는 시간만 줄여도 공회전은 절반 가까이 줄 것”이라며 휴식 공간 필요성을 제기했다. 쉴 공간이 있다면 비좁은 차내에 있을 필요가 없고, 손님이 돌아오기 전 잠깐 에어컨을 틀면 공회전하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것이다.
마땅히 쉴 데가 없어 버스 짐칸에서 휴식을 취하는 기사들. 뉴시스 |
그럼 가까운 일본은 어떨까. 일본은 관광지 매표소나 관리사무소 인근에 버스 기사가 승객을 기다리며 쉴 공간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일본 버스협회 관계자는 “모든 관광지가 그런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기사나 여행가이드가 손님을 기다리며 쉴 공간을 마련하고 있다”며 “여기서 다음 일정 계획이나 화장실을 이용하고 차를 마시는 등 잠시 휴식을 취한다”고 말했다. 이어 “장시간 근로로 이어지는 일의 특성상 버스 기사의 적절한 휴식은 승객안전으로도 이어질 것”이라며 “버스 기사들도 쉴 공간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 관계자는 “일본도 처음부터 쉴 곳을 마련한 건 아니었다”며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더 나은 방향으로 노력한 결과 지금에 이르렀다”고 말했다.
일본의 경우 대부분 관광지에 관광버스 기사가 휴식을 취할 수 있는 곳이 별도로 마련돼 있다. (사진= 일본 버스협회 캡처) |
우리도 한정된 인원으로 단속에만 주안점을 둘 게 아니라 관광버스 기사들이 차내에서 머물지 않고 쉴 수 있는 공간 등 적절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대목이다.
글·사진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 세상을 보는 눈, 세계일보
이 기사의 카테고리는 언론사의 분류를 따릅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