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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의료사고로 투병하다 사망한 환자, 남은 진료비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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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중앙포토]


의사의 오진으로 불필요한 수술을 받았고, 이 수술 후유증으로 오랜 기간 병을 앓다 사망했다면 남은 가족들은 이 기간 의료비를 모두 부담해야 할까.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의료 과실 뒤 후유증 치료만 해왔다면 환자에게 치료비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앞서 치료비를 낼 의무가 있다고 판단한 원심판결을 깨고 3일 이 사건을 서울중앙지법으로 파기환송했다.

2009년 5월말 서울대 병원에 입원한 박모씨는 입원 이틀 뒤인 6월 초 폐절제술을 받았다. 그런데 수술 직후 박씨에게 폐렴이 발생해 박씨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그 후 박씨는 사지 마비, 신부전증, 뇌병변 장애 등을 앓다 5년여 뒤인 2013년 12월 사망했다.

사망한 박씨의 아들 등 가족들은 "병원 측이 진단 과정에서 아버지의 폐 병을 암이 폐로 전이한 것으로 잘못 진단해 불필요한 수술을 했고, 이로 인한 합병증으로 아버지가 사망에 이르렀다"고 주장했다. 또 "의료진이 환자에게 수술로 인한 후유증과 다른 치료방법에 대해 충분히 설명하지 않았다”며 남은 의료비를 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서울대병원 측은 사망한 박씨의 아들 두 명과 박씨의 아내에게 미납된 의료비 9400만원 가량과 지연손해금을 내라는 소송을 냈다.

1ㆍ2심, "병원 측 과실 책임 넘는 부분, 진료비 내야"
1심 재판부는 유족이 사망한 박씨의 미납 치료비를 내야 한다고 판결했다. 의료 과실이 발생하기 전에 생긴 치료비나 의사의 책임 비율을 넘는 부분의 치료비는 환자가 내는 것이 공평하다고 본 것이다. 당시 가족들은 진료비 소송과 별도로 병원을 상대로 의료 과실 손해 배상 소송을 진행하고 있었는데, 이 판결에서 병원 측 손해배상책임이 20%로 산정됐다. 1심 재판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사망한 박씨 가족들에게 진료비 미납 총액의 80%인 7500여만 원을 가족들의 상속 지분에 따라 나눠 내라고 판결했다.

2심 재판부도 비슷한 취지로 선고했지만 내야 할 금액이 조금 달라졌다. 2심에서는 별도로 진행되고 있던 의료과실 손배소 항소심 결과에 따라 병원 측 책임이 30%로 올라갔다. 또 재판부는 박씨의 아들이 작성한 입ㆍ퇴원 약정서 내용을 고려했다. 약정서에는 박씨 아들을 연대보증인으로 하고, 이때 연대보증 한도액을 3000만원으로 정했다. 2심은 "서울대병원 측이 연대보증을 선 아들에게는 진료비가 아닌 연대보증책임만 청구했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진료비 미납 총액의 70%인 6600만원 중 상속 지분에 따라 박씨 아내가 2800여만원, 박씨의 다른 아들이 1800여만 원씩 내고, 이 금액(약 4600만원)에 대해 연대보증을 선 아들에게 3000만원까지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봤다.

대법원, "의료과실 보전하는 치료라면 환자에게 수술비와 치료비 물을 수 없어"
대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의사의 손해배상책임이 제한됐더라도 병원 측이 환자 가족에게 수술비와 치료비 지급을 청구할 수 없다고 봤다. 대법원은 의사가 주의 의무를 다하지 않아 환자의 신체 기능이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 망가졌고, 이 이후에는 후유증 치유나 상태 악화를 막는 정도밖에 치료하지 못했다면 이는 의료 과실 손해를 보전하는 치료일뿐이므로 환자 측에 병원비를 청구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소송을 통해 인정받은 의료진 책임은 30%이지만, 이를 넘는 진료비도 청구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대법원은 사건을 다시 심리하라며 사건을 서울고등법원에 돌려보내고, 서울대병원 측의 상고는 기각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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