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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대충 살자” 외치며 위로 받는 무민세대 [연중기획-청년, 미래를 묻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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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속 “아등바등 해봐야 의미 없다” / 슬라임·ASMR·먹방 등으로 ‘소확행’

세계일보

“손으로 쭉 늘렸다가 다시 뭉쳐서 꽉 쥐어짤 때 쫄깃한 촉감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더라고요.”

중소기업에 다니는 양모(26·여)씨의 ‘소소한 행복’은 ‘슬라임’(액체괴물) 만지기다. 슬라임은 물풀, 붕사 등을 활용해 만든 반고체 물질의 끈적이는 질감을 가진 장난감이다. 양씨는 “회사에서 주요 업무가 거래처 전화 받고 발주를 확인하는 일인데, 제대로 안 될 경우 클레임이 모두 나에게로 몰려 스트레스가 장난이 아니다”며 “복잡한 머리를 식히는 데는 아무 생각 없이 슬라임을 주물럭거리는 게 최고”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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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씨처럼 남들이 보기엔 의미 없는 것들에서 즐거움을 찾는 2030세대를 ‘무민세대’라고 지칭한다. 무민세대란 없다는 뜻의 한자 ‘무’(無)와 의미를 뜻하는 영어 단어 ‘mean’을 합친 신조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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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민세대는 대신 눈앞에 있는 ‘소박하고 작지만 확실한 만족감을 주는 행복’(소확행)에서 즐거움과 위안을 얻고자 한다. ASMR(자율감각 쾌락 반응) 듣기, 슬라임 갖고 놀기, 하루에 요리 하나씩 만들어 인스타그램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나 유튜브에 올리기 등 기성세대가 보기엔 의미 없는 행동일지라도 이들에게는 퍽퍽한 현실에서 벗어나 나에게 즐거움과 휴식을 주는 일이다. 이들은 ‘성공해야 한다’,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것에 회의감을 느끼면서 등장했다. 어린 시절부터 남들과 경쟁해 대학에 진학하고 또 취업에 성공하기 위해서 ‘뼈를 깎는’ 노력을 했지만 정작 경기 침체와 취업난 앞에서 매번 쓴잔을 마신 청년 세대들이 ‘노력해도 안 되는 일에 상처받지 말자’고 자신에게 보내는 위안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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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무민세대의 생각이 반영된 것이 지난해부터 SNS를 통해 유행하기 시작한 ‘대충 살자’ 시리즈다. 귀가 아닌 관자놀이에 헤드폰을 낀 캐릭터를 보고 “대충 살자, 귀가 있어도 관자놀이로 노래 듣는 아서(캐릭터 이름)처럼”이라고 하거나, 슬라이딩하는 북극곰 사진을 보고 “대충 살자, 걷기 귀찮아서 미끄러져 내려가는 북극곰처럼”이라고 말하는 식이다. 또 생일 케이크를 칼 대신 가위로 자르는 아이돌 사진을 가리켜 “대충 살자, 칼이 없으면 가위로 케이크를 자르는 엠버처럼”이라는 말을 붙이는 등 수많은 ‘대충 살자’ 시리즈가 웃음을 줬다. 취준생 김모(26)씨는 “대충 살자는 외침도 결국은 그간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고 끊임없이 스펙을 쌓고 경쟁에 내몰리는 등 대충 살지 못하는 우리 모습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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