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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6 (일)

실적 죽쒀도 연봉 올린 경영인···권진혁·조현준·강환구 '톱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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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기업 분석①


중앙일보

2018년 사업보고서 전수조사.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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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상장사 가운데 실적이 나빠졌는데 연봉을 10% 이상 올린 경영자가 많은 것으로 확인됐다. 일부 사주 일가는 사내에서 특별한 직책을 맡지 않으면서 최고경영자(CEO)보다 연봉을 더 받았다. 이사회를 장악한 경영진이 성과 분배를 왜곡한다는 비판이 나온다.

중앙일보가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 자료를 토대로 국내 주식시장에 상장된 2103개사를 전수 조사한 결과 이같이 나타났다. 2016년보다 2017년 연간 기업실적이 악화했는데도, 지난해 최고위급 경영진에게 5억원 이상의 보수를 지급한 기업이 312개사에 달했다. 금융감독원 성과보상체계모범규준은 2018년부터 5억원 이상의 보수를 받는 임직원의 개인별 보수를 기재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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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은 악화했는데 근로소득은 오히려 늘린 경영자. 그래픽 =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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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년도 실적이 나쁘면 경영 성과에 책임이 있는 최고위급 경영자도 다음해 월급이 줄어드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들 기업 중 49개사(11.7%)는 경영자 연봉을 10% 이상 인상했다. 여기서 연봉은 퇴직금 등 비근로소득을 제외한 수치다.

이와 같은 분석 방식에 대해서 박창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실적과 최고위 경영자 소득을 비교하는 방식은 엄밀한 학계의 검증을 거치지 않았다는 점에서 다소 한계가 있다”면서도 “다만 ▶올해 최초로 미등기임원 연봉공개가 시작됐고 ▶기업이 정확한 연봉산정방식을 대외비로 감추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언론이 기업 연봉 산정의 경향성에 대해서 문제제기할 수 있는 분석 방법”이라고 평가했다.

49개사 61명, 실적 악화에도 연봉 10% 넘게 인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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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지난해 보수가 15억원 이상 증가했다. [사진 현대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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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적이 악화했는 데도 임금 인상이라는 '혜택'을 누린 경영인은 49개 기업, 총 61명이다. 인상률로만 보면 코스맥스그룹의 건강기능식품 계열사인 뉴트리바이오텍(현 코스맥스NBT)을 창업한 권진혁 전 대표가 가장 많이 올랐다. 지난해 5월 퇴임하면서 5개월치 월급을 받았는데, 2017년 보다 근로소득이 4배(300%·1억8000만원) 상승했다. 퇴직금·성과급을 합치면 8억6200만원을 받았다. 이 회사는 2016년보다 2017년 영업이익이 –38.6% 순이익이 –62.7% 감소했다. 이에 대해 코스맥스NBT는 “지난 2014년 계약한 연봉 지급 규정에 따라 성과급을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김갑래 자본시장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 당국이 연봉 공개를 규정한 취지는 주주에게 경영자가 성과에 적합한 보수를 받고 있는지 모니터링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라며 “기업 이익이 감소했는데 경영자 고정급이 몇 배로 뛰었다면 주주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책임을 묻는 논의가 뒤따라야 한다”고 말했다.

10년래 최악 실적 현대차, 정몽구·정의선 소득 ↑


실적 악화에도 임금을 두 자릿수 올린 경영자의 절반 이상(65.6%·40명)이 사주나 이들의 일가친척이었다. 2010년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 후 지난해 최악의 실적을 기록한 현대차그룹의 경우 2016년보다 2017년 현대차(-20.5%)·현대모비스(-48.9%)는 각각 순이익이 급감했지만, 지난해 정의선 현대차그룹 수석부회장이 현대차·현대모비스에서 받은 총보수(12억4900만원→22억1300만원)는 2배 가까이 늘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지난해 9월 부회장에서 수석부회장으로 승진하면서 임금 책정 기준에 따라 보수도 올랐다”고 설명했다.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80억900만원→95억8300만원)도 같은 기간 보수가 15억원 이상 늘었다. 이에 대해 현대차그룹은 “2016년부터 현대차 실적이 악화하면서 정몽구 회장은 2016년 10월부터 15개월간 급여를 자진 반납했다”며 “급여를 반납하기 이전엔 2015년 연봉(98억원)과 비교하면 오히려 지난해 연봉은 2억2000만원(2.2%) 감소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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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등기 임원인 오너 일가에게 각각 10억 이상을 안겨준 고려아연. 그래픽 = 차준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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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기간 ㈜효성의 영업이익(1조163억원→7708억원)은 24.2% 감소했다. 하지만 이듬해 효성은 조현준 회장(30억원·162.7%↑)과 조석래 명예회장(27억원·80%↑), 조현상 사장(15억1900만원·76.8%↑) 등 사주 일가의 연봉을 2배 안팎 인상했다. 또 뿌리가 같은 한국타이어도 같은 기간 실적이 28.1% 나빠졌지만, 사주 조양래 회장의 차남인 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의 근로소득은 2배로 뛰었다(10억3900만원·102.5%↑).

효성그룹 측은 “2016년보다 2017년 영업이익이 줄어든 것은 사실이지만, 2016년 실적이 사상 최대 기록을 세우면서 이례적으로 높은 영업이익을 기록했다"며"이런 기저효과로 2017년 영업이익은 감소했지만 평년에 비하면 이를 실적 악화로 보기 어렵다”고 말했다. 효성그룹은 또 “특히 조현상 사장은 지난해 6월 지주사 총괄사장으로 승진하면서 그룹의 규모와 역할, 비중을 고려한 연봉을 인상했다”고 설명했다. 한국타이어도 “조현범 사장은 지난해 1월 대표이사 직책을 맡으면서 연봉이 올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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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조현상 사장, 조석래 명예회장, 조현준 회장. [사진 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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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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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밖에 김상철 한글과컴퓨터그룹 회장(69.8%↑·한컴MDS가 지급)이나 김은선 보령제약 회장(44.6%↑), 그리고 정몽구 회장의 장녀 정성이 이노션 고문(40%↑) 등 다수의 사주 경영인도 급여 인상 폭이 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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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아연은 지난해 최창걸 명예회장(왼쪽)과 최창영 명예회장에게 대표이사보다 많은 보수를 지급했다. [중앙포토]


미등기임원인 명예회장이 기업 경영을 책임지는 대표이사보다 거액을 받은 기업도 있다. 고려아연은 지난해 최창걸 명예회장에게 10억1000만원, 최창영 명예회장에게 5억5500만원을 지급했다. 이 회사 대표이사(이제중 부회장) 연봉은 5억2700만원이다. 이제중 부회장은 4개 계열사(케이지엑스·케이지그린텍·클린코리아·징크옥사이드코퍼레이션)에서 회장 자격으로 계열사를 책임지면서, 고려아연에서 부회장 업무도 수행한다.

5개사를 책임지고 경영하는 대표이사보다 명예회장에게 보수를 많이 지급한 이유에 대해서 고려아연은 “회사 창립 기여도와 근속연수를 종합적으로 감안했다”고 설명했다.

5개사 총괄 대표보다 명예회장 더 챙긴 고려아연


같은 회사 대표이사인데, 기업 실적 하락의 책임은 전문경영인이 지고 사주 일가의 소득은 오히려 올라가기도 한다. 2017년 순이익이 적자를 기록한 두산중공업은 대표이사 2인(정지택 부회장, 김명우 사장)이 옷을 벗었다. 지난해 88명의 임원 중 22.7%(20명)가 회사를 떠났다. 하지만 공동 대표이사인 사주(박지원 회장)는 근로소득(14억6300만원→15억4000만원)이 소폭(5.3%) 올랐다.

이에 대해 두산그룹은 “박지원 회장은 2014년부터 5년간 연봉을 인상하지 않았다가, 승진 인사에 따라 2017년 한 차례 연봉을 인상했다”고 해명했다.

2016년 대비 2017년 순이익이 9% 감소한 ㈜두산의 대표이사(이재경 부회장)도 지난해 3월 물러났다. 하지만 공동 대표이사인 사주(박정원 회장)는 지난해 수령한 근로소득(24억1500만원)이 2017년 대비 33.3% 증가했다. 이에 대해 두산그룹은 “박정원 회장의 2017년과 2018년 월지급액은 동일하다”며“다만 2017년 3월부터 회장 업무를 수행하면서 2017년 1월·2월 급여에 반영되지 않아 연간 총액으로 보면 지급액에 다소 차이가 있다”고 설명했다.

실적이 좋아져도 사주의 임금은 크게 오르는 반면 전문경영진의 임금은 찔끔 오르거나 동결되는 사례도 많다. 2016년보다 2017년 영업이익이 34.6% 오르자 두산인프라코어는 사주(박용만 회장)의 근로소득(22억4000만원)을 60% 올렸다. 그런데 같은 대표이사인 손동연 사장의 근로소득(6억5000만원)은 전년 수준으로 동결했다.

두산그룹은 “사주든 전문경영인이든 인사관리규정에 따라 영업이익, 지불능력, 시장경쟁력, 기여도, 직위와 직책 등을 고려해서 급여를 산정한다”고 말했다.

두산·OCI·GS·한진, 사주 연봉 인상폭 더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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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현 OCI 부회장. [중앙포토]


OCI도 비슷한 사례다. OCI는 회장(백우석·6억2664만)보다 부회장(이우현·6억7260만원)에 임금을 더 지급했다. 이들은 공동대표이사지만, 회장은 전문경영인이고 부회장은 사주다.

OCI는 “OCI가 보유한 수십대의 법인차량을 이우현 부회장 명의로 등록하면서 5153만원의 차량지원금이 이 부회장의 소득으로 잡혔다”며 “또 (회장에게는 지급하지 않은) 자녀 학자금(2013만원)도 부회장에게 지급했다”고 설명했다.

GS그룹·한진그룹 사례도 비슷하다. GS건설이 허창수 회장 근로소득(25억100만원)을 10.2% 올렸고, 별도로 ㈜GS에서 허 회장 근로소득(23억8100만원)을 3.6% 인상했다. 공시 대상인 GS그룹 산하 전체 상장사 모든 임원중에서 근로소득이 10% 이상 오른 경영인은 허 회장 딱 1명이다.

각종 구설에 휘말렸던 한진그룹에서는 지난해 공시 대상 최고위급 임원 중 유일하게 조원태 대한항공 사장의 근로소득이 상승했다(+5.7%·대한항공 지급분 기준).

이사회 장악→연봉 규정 결정→거액 수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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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모비스 이사회에서 발언하는 정의선 부회장. [사진 현대모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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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하기 힘든 연봉격차의 원인으로 전문가는 이사회 구조를 지적한다. 최고위 경영자 연봉은 주로 이사회에서 결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사주가 이사회를 장악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상 사주가 자신의 연봉을 사실상 자신이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뜻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학과 교수는 “미국·영국과 달리, 한국은 총수가 이사회 이사 선출에 영향력을 행사해 이사회를 장악하면서 기업을 경영하는 경우 많다”며 “최근 문제로 지적받는 사익편취·일감몰아주기·보수과다지급 등과 같은 문제는 이처럼 왜곡된 이사회의 구성에서 비롯한다”고 지적했다.

주주를 대표해서 경영을 맡긴 경영자가 이사회를 장악해 성과와 분배를 왜곡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실적 있는 곳에 보상 있다'는 시장의 기본 원리를 지키지 않는 상장사가 많다는 뜻이다. 김용진 서강대 경영학과 교수는 “단순히 사주라는 이유로 최고경영자가 연봉을 상대적으로 많이 인상하는 것은 주주자본주의 사회에서 심각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장기·단기적 성과를 기반으로 시장과 주주의 판단에 따라 경영인의 몸값이 정해지는 것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문희철·윤상언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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