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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노동계에 끌려다니는 정부…경사노위 뒤에 숨어 책임 회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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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멈춰선 사회적 대타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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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4월 23일 진통 끝에 노동계와 경영계, 정부는 사회적 대화기구인 경제사회노동위원회를 설립하기로 합의했다. 이후 한 달여간 경사노위법 제정 과정을 거쳐 그해 6월 경사노위가 공식 출범해 사회적 의제들을 집중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다. 이후 1년여가 지났지만 성과는 전무하다.

올해 2월 겨우 노사가 의견 일치를 본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합의문은 경사노위 첫 공식 합의안이 될 뻔했지만, 경사노위 최종 의사결정기구인 본위원회에서 의결되지 못했다. 탄력근로제 확대를 반대한 일부 근로자위원들이 본위원회 보이콧을 선언하면서 의결 조건을 채우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반쪽짜리 탄력근로제 합의안이 국회로 넘어갔지만 여야 간 의견 차이가 커 개정이 이뤄지지 않고 있다. 국제노동기구(ILO) 핵심협약 비준도 공익위원 권고안은 만들었으나 노사 모두 이에 반발하며 진통을 겪는 중이다.

지난 3월 성공한 것처럼 보였던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도 결국은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 카풀 스타트업들은 기존에 잘 진행해왔던 사업에 규제(출퇴근 시간만 카풀 허용)만 더해졌다며 강력 반발했고, 택시도 법인·개인 간 이해관계가 전혀 달라 일치된 의견을 내지 못하는 상태다. 합의문의 실체적 내용을 구성할 실무기구는 아직 제대로 모습을 갖추지도 못했다.

이처럼 사회적 대타협이 겉도는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구색 갖추기만 신경 쓰고 합의 내용을 제대로 담보할 수 있는 대표성과 전문성이 부족하다고 지적한다.

신율 명지대 정치학 교수는 "사회적 대타협을 위해서는 대표자성과 전문성 두 가지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러나 현 정부는 이 두 가지를 갖추지 못한 채 '민주적인 이미지'를 띠게 하기 위해 사회적 대타협을 활용할 뿐"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현 정부가 추진하는 사회적 대타협 기구 구성원들은 제대로 된 대표성을 갖지 못했다. 사회적 대타협 기구란 취지에 맞게 각 이해당사자 그룹을 대표하는 집단이 기구의 구성원이 돼야 하지만 대표성도 없는 몇 개 그룹이 구성원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가령 경사노위의 경우엔 양대 노총의 대표성이 과대 포장돼 있다. 심지어 민주노총은 경사노위에 참여하지도 않으면서 장외에서 경사노위 결정을 좌지우지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고용노동부 등에 따르면 2017년 기준 한국의 노조 조직률은 10.7%에 불과하고 양대 노총으로 한정하면 그 비율은 더 떨어진다. 그럼에도 양대 노총은 노동계 전체를 대변하는 위치에 올랐고, 진보정권인 현 정권 들어 발언력을 더 키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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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서울 종로구 새문안로에 위치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사무실 앞을 직원이 지나가고 있다.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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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사노위가 모양새를 갖추기 위해 청년·여성·비정규직을 대표하는 근로자위원 3명을 뒀지만 이들은 사실상 민주노총 대변인 노릇만 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민주노총이 탄력근로제 단위기간 연장 합의문에 반대하자 이들 3명은 명확한 이유 없이 이를 의결하는 본위원회 참석 약속을 두 번이나 파기했다. 문성현 경사노위 위원장은 3월 대위원회 무산 직후 "(청년·여성·비정규직) 계층 대표들은 대통령이 주관하는 사회적 대화 보고회도 무산시켰고 참석 약속을 두 번이나 파기했다"며 "위원회는 이런 상황을 엄중하게 인식하고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더불어민주당과 카카오, 택시 4단체 간 합의에 불과한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의 대표자성은 한층 더 취약하다. 우선 카풀의 대표자로 카카오모빌리티가 나섰지만 풀러스, 위모빌리티, 위츠모빌리티 등 카풀 업체들은 사회적 대타협 기구의 합의안을 무효로 간주한다. 이들 3사는 지난달 공동성명을 통해 "카카오에 플랫폼 택시 독점권과 카풀 사업 자율경쟁 방어권까지 인정하며 신규 업체의 시장 진입을 막는 기득권끼리의 합의"라면서 "전면 무효화하고 재논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택시 또한 법인·개인택시 간 이해관계가 다르고 심지어 법인택시 내부에서 노사 간 이해관계가 갈린다. 카풀 이슈로 번호판(면허) 거래 가격이 급락한 개인택시 기사들은 원천 무효를 주장하고, 완전 월급제 도입을 두곤 법인택시 노사가 대립하는 형국이다. '택시' 하나로 묶을 수 없는 집단을 동일화한 나머지 생긴 부작용이다.

사회적 대타협을 내세우고 정부는 완전히 뒤로 숨어버린 것도 문제다. 신 교수는 "현 사회적 대타협 형태는 정부가 '우리는 민주적 과정을 거치고 있는데 이 기구 안에서 해결하지 못하니 우리는 책임이 없다'는 식의 면피를 위한 도구에 불과하다"며 "실제로 무엇을 이루려 하기보다는 실패할 확률이 높은 사안은 사회적 대타협에 맡겨놓고 뒷짐만 지고 있다"고 말했다.

여당으로 파견 간 경험이 있는 한 고위공무원은 "최근의 주요 의사결정은 청와대와 당 일부 '정치그룹'에 의해 주도되는 측면이 크다"며 "정부가 나서지 않고, 청와대에서 하달하는 걸 그저 실행하려는 복지부동한 자세가 있다"고 전했다.

택시·카풀 사회적 대타협에 속한 한 여당 의원은 "국토교통부가 가장 문제다. 제대로 된 산업 발전 플랜을 들고 와서 설득을 해야지 카풀을 공유경제의 아이콘처럼 홍보하면서 이해관계자 설득 문제에선 뒤로 빠져 있다"고 지적했다.

[김태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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