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너머로 보이는 청와대.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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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의 시사(時事)는 날로 그릇되고 백성들의 기력은 매일 소진되고 있습니다. 이는 권세 있는 간신들이 세도를 부렸을 때보다 심합니다. 간신들이 남겨 놓은 해악 때문에 훌륭한 논의(論議)가 있다 해도 백성들의 힘은 바닥났습니다. 이대로 가면 10년이 못 돼 화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언로(言路)를 넓게 열어 거리낌 없이 의견을 받아들이십시오.”
당시 조선은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나뉘어 허구한 날 당파 싸움을 벌였다. 1591년 함께 일본을 정탐하고 돌아온 서인 황윤길은 ‘일본이 침략 준비 중’이라고 보고했지만 동인 김성일은 ‘전쟁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선조는 집권세력이던 동인의 말을 받아들여 짓고 있던 성조차 축성을 그만두고 안일하게 대처했다.
조정은 전쟁이 코앞인 위기 상황도 평화라고 우길 만큼 지록위마(指鹿爲馬)에 빠져 있었고, 선조는 충신의 직언과 백성의 민심을 읽을 안목이 없었다. 이이는 죽기 2년 전(1582년) ‘진시폐소(陳時弊疏)’라는 상소문에서 ‘200년 역사의 나라가 2년 먹을 양식이 없다. 더 이상 나라가 아니다’고 했다. 얼마 후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한양은 침공 20일 만에 함락됐다.
율곡 이이.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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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제든 ‘묻지마’ 범죄와 몰래카메라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두려움, 미세먼지로 숨 쉴 자유조차 박탈당한 일상의 파괴가 시민들을 불안하게 했다. 주거·일자리 등 불안정한 민생은 삶의 전반을 피폐하게 만들었다. 특히 빅데이터에 드러난 ‘소득주도성장’을 다룬 기사엔 6000개가 넘는 댓글이 달린 것처럼 시민들은 여전히 일자리와 고용 등 이슈에 관심이 많았다.
그러나 이런 ‘불안’의 근본 원인은 단순히 힘든 현실 때문만이 아니다. 오늘보다 내일이, 우리보다 자식세대가 더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없기 때문에 불안감을 느낀다. 이는 결국 사회 문제를 해결해야할 정치가 비전을 제시하지 못하고 당파싸움에만 골몰하고 있기 때문이다.(김광두 서강대 석좌교수)
2017년 5월 19대 대통령 선거 마지막 유세를 펼치고 있는 문재인 당시 더물어민주당 대선후보.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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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데이터는 민심을 여과없이 드러낸다. 시민들은 현 정부가 ‘내로남불’로 또 다른 적폐가 되지 않길 기대한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정확히 민심을 읽고 직언과 비판도 거리낌 없이 들을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을 근거리에서 보좌하는 이들은 “나라에 이롭다면 끓는 가마솥에 던져지고 도끼로 목을 잘라도 피하지 않겠다”는 이이의 말처럼 직언할 수 있는 용기가 필요하다. 그러나 현 정부에서 민심 그대로 간언할 이가 몇이나 될까. 남아있는 문재인 정부 3년의 성패는 그 숫자에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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