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1 (금)

생존자의 기억법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한겨레21]
한겨레21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기억의 사전적 의미는 ‘이전의 인상이나 경험을 의식 속에 간직하거나 다시 생각해내는 것’으로 회상과 큰 차이가 없다. 그러나 사회학자들이 개인적이고 내밀하게 여겨지던 기억에 ‘사회’라는 개념을 더하면서 기억은 사회적 구성물이라는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았다. 사회 구성원들이 어떤 사건을 기념하는 방식, 한 사회에서 과거와 현재가 결합하는 과정,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는 것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이때 기억은 과거를 회상하는 소극적 행위에서 현실에 개입하는 적극적 행위로 나아간다. 그렇게 ‘나의 기억’과 ‘우리의 기억’은 전혀 다른 층위에 놓인다.

멀리 거리 두고 기억하고 싶다는 사람들

2014년 이후 ‘우리의 기억’에는 이런 장면이 있다. 봄날 아침, 바다 위에서 기울어지는 한 척의 여객선. 그때 우리는 몰랐다. 훗날 생존자와 희생자와 실종자로 나뉠 그들의 이름을 몰랐고 그들의 이름을 기억하려는 이들에게 ‘지겹다’거나 ‘그만하라’는 질타가 쏟아지리라는 것을 몰랐다. 세월호 참사는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누군가의 개인적 기억일 수 없다. 그것은 국민을 살리거나 죽게 할 수 있는 국가 통치력의 부재가 드러난 사건이자, 자본 논리에 잠식된 구조적 병폐가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간 사건이었다. 또한 정권이 앞장서서 진실 규명을 방해한 결과 여전히 많은 부분이 의혹에 싸인 사건이고, 우리의 공감과 연민이 정치 공세와 프로파간다(선전) 앞에서 얼마나 쉽게 허물어지는지 보여준 사건이었다. 그러나 기억을 축소하고 왜곡하는 방식으로 자신들의 기득권을 유지했던 자들은 이 사건을 사적 불운으로 규정함으로써 세월호가 사회적·집단적 기억이 되는 것을 차단하려고 했다. “세월호는 교통사고”라는 비유가 대표적 말이다.

더불어 세월호 이전에 있었던 두 건의 참사,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위령탑이 서 있는 장소는 우리에게 ‘기억과 장소’에 대한 질문을 환기한다. 삼풍백화점 위령탑은 사고 현장과 무관한 양재시민의 숲 끝자락에 자리하고, 성수대교 위령탑은 도보로는 접근이 불가능한 후미진 곳에 있다. 추모 공간이 도시의 중심부가 아닌 주변부에 있다는 사실은 우리 사회가 참사 희생자들을 기억하고 싶어 하지 않거나, 기억하더라도 멀리 거리 두고 싶어 한다는 증거인지 모른다. 서울 광화문광장에 세월호 추모 공간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는 한 시민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서울의 중심이고 관광객도 많이 오는 곳이 광화문광장이다. 사고를 계속 떠올리게 하는 추모 공간은 광장에 만들지 않으면 좋겠다.”(<뉴시스> 2019년 3월23일)

장소는 물리적일 뿐 아니라 한 사회에서 누군가의 자리를 상징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이는 망자에게도 예외가 아닐 것이다. 희생자가 사회 가장자리에만 머물러야 한다면 사건 이전의 세상과 이후의 세상은 달라지지 않는다. 우리는 일상이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와 긴밀하게 연관됐다는 인식과 함께 기억을 책임과 연대로 확장해나가야 한다.

기억,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

다리가 끊어지고 백화점이 무너지던 그날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는 것처럼, 우리는 2014년 4월16일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그날 세월호에 탔든 타지 않았든 우리는 모두 여전히 불안전한 이 사회의 생존자다. 세월호를 기억하는 이들은 똑같은 계절, 똑같은 바다, 똑같은 세상을 이전과 다른 눈으로 바라본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사건 이전과 이후의 연속성이 있고 기억을 통해 과거와 현재의 연결고리를 이을 수 있다. ‘이제 그만 잊으라’고 강요하는 사람들에게 ‘무엇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던져야 하는 이유다.

*이번호부터 ‘노 땡큐!’를 집필하는 하재영 소설가는 2006년 계간 <아시아>에서 등단했고 소설책 두 권을 냈습니다. 2018년 버려진 개들에 관한 르포 <아무도 미워하지 않는 개의 죽음>을 출간했습니다.

하재영 소설가



<한겨레21>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이 기존 구독제를 넘어 후원제를 시작합니다. <한겨레21>은 1994년 창간 이래 25년 동안 성역 없는 이슈 파이팅, 독보적인 심층 보도로 퀄리티 저널리즘의 역사를 쌓아왔습니다. 현실이 아니라 진실에 영합하는 언론이 존속하기 위해서는 투명하면서 정의롭고 독립적인 수익이 필요합니다. 그게 바로 <한겨레21>의 가치를 아는 여러분의 조건 없는 직접 후원입니다. 정의와 진실을 지지하는 방법, <한겨레21>의 미래에 투자해주세요.

*아래 '후원 하기' 링크를 누르시면 후원 방법과 절차를 알 수 있습니다.

후원 하기 http://naver.me/xKGU4rkW

문의 한겨레 출판마케팅부 02-710-0543







독자 퍼스트 언론, <한겨레21> 정기구독으로 응원하기!



전화신청▶ 1566-9595 (월납 가능)

인터넷신청▶ http://bit.ly/1HZ0DmD

카톡 선물하기▶ http://bit.ly/1UELpok





공식 SNS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

Copyrights ⓒ 한겨레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