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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18 (화)

길고양이 중성화수술… “사람과 함께 살기 위한 방법입니다” [이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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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번식 철 앞두고 분주한 지자체 / 길고양이 서울만 10~15만 마리로 추정 / 과거 포획 후 살처분했지만, 현재는 중성화 수술 후 방사 /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 예방·치료 통해 생존율 높여 / "사람과 길고양이 공생 위해선 중성화 수술 필수"

고양이 번식 철을 앞두고 서울시 등 각 지방자치단체에서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고양이는 날이 따뜻해지는 4~6월 번식하며 1년에 최대 4번까지 새끼를 낳는 편이다. 이 무렵 새끼들이 많이 태어나 ‘아깽이(새끼 고양이) 대란’이라고 불릴 정도다.

이 시기를 놓치면 길고양이 개체수가 순식간에 증가해 중성화 수술을 통한 조절이 최선의 해결책으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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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획한 고양이를 이동장으로 옮기는 모습.


◆길고양이 중성화 수술사업(중성화 TNR 사업)이란?

전국의 길고양이는 적게는 10만 마리에서 많게는 15만 마리로 추정된 서울을 비롯해 약 100만 마리가 서식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길고양이가 증가하면서 음식물 쓰레기를 뒤지거나 대소변 냄새, 번식철 울음소리 등으로 불편을 호소하는 민원이 연간 1만여 건에 달한다.

길고양이의 개체수가 급증한 건 번식이 빠르고 도심에는 천적도 거의 없기 때문이지만 가정에서 키우던 고양이 유기도 일정 영향을 준 것으로 분석된다. 한국동물구조관리협회 TNR사업팀 이인규 팀장은 “포획된 고양이 중에는 목줄을 한 고양이도 상당수”라며 “주로 병들거나 나이든 고양이가 버려진다”고 설명했다.

길고양이는 과거 포획 후 살처분했지만, 서울시는 ‘애묘인(고양이를 좋아하는 사람들)’과 동물보호단체 의견을 반영해 2008년부터 중성화 수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중성화 수술 사업은 ‘중성화 TNR’이라고도 한다. TNR은 ‘포획(Trap)한 뒤 중성화 수술(Neuter)을 해 포획했던 장소에 다시 방사(Return)한다’는 의미다.

중성화 수술을 위해 포획한 고양이는 동물병원에서 중성화 수술을 한 뒤 원래 살던 곳으로 방사한다.

서울시에서 적극적으로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에 나선 결과 개체수는 4년 전과 비교해 절반 가까이 줄어든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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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의 한 주택가에 설치한 덫.


◆“길고양이를 잡아라”…현장 동행해 보니

지난 17일 이인규 팀장과 길고양이 포획 현장에 동행했다. 포획은 밤에 주로 활동하는 고양이의 특성상 해질 무렵 시작된다. 지역에 따라 다소 차이는 있지만 보통 오후 7~9시쯤 ‘캣맘(고양이를 돌보는 사람)’과 미팅 후 본격적인 작업이 시작된다.

캣맘들은 포획작업 수개월 전부터 사료 등으로 고양이를 유인해 한곳에 모으고, 동선이나 고양이 특징 등을 파악해 작업자에게 알려준다.

이날 포획작업에는 덫 16개와 ‘수술용 보관함(고양이 이동장)’ 20개가 동원됐다. 작업과정은 덫 설치→포획확인 및 포획된 고양이 분류→동물병원 전달 순이다.

덫은 제보자가 고양이 서식지로 지명한 곳과 동선을 고려해 설치된다. 덫 설치는 작업자마다 놓는 개수가 다른데 이 팀장의 경우 한 장소에 덫 2개를 설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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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한 덫에 고양이가 잡혔다.


덫이 많으면 포획되는 고양이가 많을 거로 생각할 수 있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고.

이 팀장은 “포획률을 높이려 많은 덫을 설치하기도 하지만 경우의 수가 많다”며 “타이밍이 안 좋으면 덫을 많이 설치해도 한두 마리만 잡히기도 한다. 요즘처럼 민원이 많을 때는 바삐 움직여 여러 장소에 덫을 설치하고 포획을 늘리는 작전을 쓴다”고 설명했다.

실제 작업은 쉴 틈 없이 진행됐다. 이날 총 8개 장소에 덫을 놨는데 작업 시간 동안 구역을 차로 이동하며 포획을 확인하고 이동장에 옮기는 작업이 새벽까지 계속됐다.

이 팀장은 “차에 실을 수 있는 덫의 수가 제한되다 보니 요즘 같은 번식철은 부지런히 움직이지 않으면 개체수를 줄이지 못한다”며 “그만큼 민원이 많다”고 말했다.

이런 작업은 약 8~9개월간 계속된다. 작업이 중단되는 시기는 혹한·혹서기와 장마철 그리고 동물병원 의사 판단에 따른다. 장마철의 경우 고양이들이 다른 장소로 이동해 포획이 어렵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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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획된 고양이 모습.


◆“길고양이를 잡아라”…덫에 걸린 고양이들

오후 8시부터 새벽 6시까지 진행된 작업에서 고양이 10마리를 잡아 동물병원으로 옮겼다. 이 팀장에 따르면 포획된 고양이 중 중성화 수술이 어려운 △생후 4개월 미만인 새끼 △몸무게 2kg 미만인 저체중 고양이 △임신 또는 병든 고양이는 현장에서 풀어준다. 이 팀장은 “중성화 수술을 마친 고양이가 덫에 걸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중성화 수술을 받은 고양이들은 귀에 0.5~0.9㎜정도의 표시가 돼 있어 쉽게 구분된다. 지난 6년간 포획작업을 진행한 이 팀장은 한눈에 고양이를 구분했다.

그는 “고양이는 집단 서식하는 동물이라 저체중이나 병든 고양이들은 무리에서 도태돼 풀어줘도 얼마 살지 못한다”며 “중성화 수술이 밀려있어 선별에 신경 써야 한다”고 말했다.

덫에 걸린 고양이들은 비교적 얌전했다. 울음소리를 내며 발버둥치는 고양이들도 있었지만 얼마 지나 겁에 질린 듯 몸을 웅크리고 꼼짝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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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구조관리협회 TNR사업팀 이인규 팀장.


◆“길고양이를 잡아라”…다치기도 하지만 중성화 수술과 방사 중요

고양이 포획 작업은 생각보다 위험했다. 고양이가 작은 틈새나 지붕, 바닥 등 사람이 접근하기 힘든 곳에 서식지를 마련하고, 야간에 작업이 이뤄지다 보니 시야확보에 어려움이 많다. 그래서 고양이를 잡다 넘어지거나 날카로운 물체에 손을 베이는 등 다치기도 한다. 이 팀장 몸에도 크고 작은 상처가 남아있었다.

또 겁에 질린 고양이가 이동장 틈으로 발을 내밀어 할퀴기도 해 중성화 사업이 시작되기 전 예방주사 접종은 필수라고 한다.

이 팀장은 “한번은 지붕에 덫을 설치하기 위해 담을 오르다 떨어진 적도 있었다”며 “좁은 곳을 좋아하는 고양이의 습성상 (다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 같다”고 말했다.

포획된 고양이들은 모두 동물병원으로 보내 중성화 수술을 한다. 이 팀장과 동물병원 원장 설명에 따르면 수술은 수컷보다 암컷이 어렵고, 수술 후 회복 기간도 수컷은 24시간 정도지만 암컷은 72시간이 걸린다. 수컷의 경우 ‘음낭’을 제거하는 간단한 수술이 진행되지만 암컷은 개복 후 난소를 제거하는 등 다소 복잡하기 때문이란다.

또 수술 전 병에 걸리지 않았는지 확인하고 상처 치료를 진행하는데, 이는 포획한 고양이가 병이 있을 경우 수술을 버티지 못해 죽을 수 있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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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보 옆 공터에 길고양이가 살고 있다.


길고양이 중성화 사업은 단순 번식을 억제하는 것이 아닌 예방과 치료를 동시에 진행해 길고양이의 생존율을 높인다.

이 팀장은 “사람과 고양이가 공생하기 위해 중성화 수술은 필수라고 생각한다”며 “중성화 수술받은 암컷은 ‘자궁축농증’ 등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동물병원에서는 건강검진을 시작으로 항생제 등의 각종 예방주사 접종과 상처를 치료해 병에 취약한 길고양이 생존을 돕는다. 사람들의 도움이 없다면 병에 쉽게 노출될 뿐만 아니라 안 좋을 경우 병사하게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방사를 가장 신경써 해야 한다. 고양이는 영역을 두고 생활해 방사는 반드시 포획한 곳에서만 해야 한다”며 “자칫 방사한 장소가 포획장소와 다르면 기존에 있던 고양이 무리에게 쫓기다 도태돼 죽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민원인은 포획한 고양이를 다른 곳에 방사하길 바라지만 규정상 그러지 못해 간혹 항의를 받는다”며 “고양이를 다른 곳에 방사하면 중성화 수술을 받지 않은 다른 고양이들이 구역으로 들어와 영역을 설정하는데, 이 경우 고양이 개체수가 늘어 주민 불편만 가중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양이를 원래 살던 곳으로 보내면 자기 영역 내에서 살다 번식 없이 죽어 개체수가 감소하게 된다”며 “수명을 다할 때까지 다른 고양이의 접근을 막는 문지기 역할을 한다”고 덧붙였다.

사진·글 이동준 기자 blondi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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