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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임금 떼먹기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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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파견노동으로 굴러가는 교과서 제작…

주휴·연장근로수당 월 50만원씩 떼먹으며 근로기준법 위반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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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성훈(가명)씨는 겨울방학 아르바이트를 찾았다. 채용정보 사이트에서 ㅁ솔루션이라는 회사의 밴딩(묶거나 포장하는 작업) 아르바이트 채용공고를 보았다. 아침 8시30분부터 밤 9시까지 일하면 일당 10만원을 준다고 했다. 주간 근무였고, 신입도 무관했다. 방학 아르바이트로 괜찮을 것 같았다.

ㅁ솔루션에 전화를 걸었다. 교과서를 만드는 일이라고 했다. 출근해야 할 회사의 주소를 알려줬다.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교학사 공장이었다. 교육청에서 새 학기 교과서를 발주받아 제본·생산하는 일이었다. 성훈씨를 채용한 곳은 파견회사인 ㅁ솔루션, 성훈씨가 일하는 곳은 교학사였다.

근무는 교학사, 월급은 파견회사

성훈씨는 바로 다음날 출근했다. 교학사 공장에선 20여 명이 일했다. 아침 8시30분 출근해서 밤 9시에 퇴근하면, 야간조가 출근해 아침에 퇴근했다. 교육청에서 주문받은 초등학교 교과서와 교육방송(EBS) 교재를 찍느라 밤낮없이 인쇄기가 돌았다. 인쇄된 교과서 낱장을 기계에 넣으면 자동으로 제본이 됐다. 만든 교과서는 서울시교육청으로 발송됐다.

점심시간은 40분이었지만 15분 만에 식사를 마치고 자리에 앉아야 했다. 토요일은 당연히 근무, 물량을 맞추기 위해 일요일에도 일했다. 최저임금 8350원을 곱해 하루 10만원을 받았다. 임금은 주마다 지급됐다.

성훈씨는 일주일 만근하면 주휴수당이 생기고, 잔업 하면 연장근로수당을 줘야 한다는 정도는 알고 있었다. 그런데 회사에서는 아무 말이 없었다. 그는 일주일 만근 뒤 ㅁ솔루션에 전화를 걸어 주휴수당을 요청했다. ㅁ솔루션은 “주휴수당은 열심히 일했을 때 수고했다고 주는 것이지, 꼭 줘야 하는 게 아니다”라고 했다. 꾸준히 다니는 직원에게만 준다고 했다. 그러더니 주휴수당 3만원이 통장에 입금됐다. 나머지는 파견회사의 수수료라고 했다. 성훈씨는 이해할 수 없었지만, 어쩔 도리가 없었다. 하루 8시간을 초과하는 근무에 대한 연장근로수당 50%도 들어오지 않았다. 1시간 4175원, 하루 3시간, 주 7일 일하면 일주일에 최소 8만7675원이었다.

그는 네이버를 검색해 근로기준법을 찾아봤다. 5명 미만 사업장의 경우 연장수당을 주지 않아도 되지만, 파견업체가 교학사에 보내는 파견노동자가 평균 10명은 넘는 것 같았다. 성훈씨는 궁금한 게 많아졌다. 5명 이상 기준이 파견업체인지 아니면 교학사인지, 일요일까지 잔업했는데 휴일근로수당과 연장근로수당을 합쳐서 받을 수 있는지, 일요일까지 주 80시간을 일했는데 근로기준법 위반으로 사업주가 처벌받을 수 있는지, 제조업 생산 공정인데 불법파견이 아닌지….

2주 뒤 교학사는 물량이 줄었다며 파견근로 계약을 종료했다. 마지막 일하는 날, 그를 비롯해 ㅁ솔루션 파견노동자들은 교학사에 다니는 지인을 통해 계약직으로 직접고용한 아르바이트는 시급이 법정 최저시급보다 많고, 주휴수당과 연장근로수당 등 모든 수당을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파견노동자들은 “파견업체가 벼룩의 간을 내먹었다”고 분노했다. 노동청에 진정하자는 얘기가 나왔다. 하지만 다시 파견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구해야 하는 사람들은 나서기 어렵다고 했다. 성훈씨와 동료 한 명만 진정을 넣기로 했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살아야 하는 사람이라 우습게 보고, 법에서 정한 최소한의 금액에조차 미달되게 돈을 가로채는 행태에 찍소리라도 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직장갑질119에 장문의 편지를 보냈다.

‘찍소리’ 내야 돌려주는 체불임금

성훈씨와 동료는 직장갑질119 최혜인 노무사를 만나 체불임금을 계산했다. 일주일 체불액이 12만원이 넘었다. 주휴수당과 연장근로수당만이 아니었다. 교학사가 물량 감소를 이유로 근무기간이 남은 파견노동자들에게 다음날 출근하지 말라고 통보한 것은 회사의 귀책사유로 인한 휴업으로, 휴업기간 평균임금 70% 이상의 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성훈씨와 동료는 ㅁ솔루션을 상대로 노동청에 체불임금 진정서와 입증 자료로 채용공고, 체불금액 정산표, 출퇴근 보고 문자 내역, 출퇴근기록표, 급여 계좌 입금 내역을 제출했다. 당황한 파견회사는 성훈씨에게 적당한 금액으로 타협하자고 했지만, 성훈씨는 법대로 하자고 했다. 결국 회사는 노동청에 진정한 체불임금 전액을 입금했다.

교과서 인쇄 사업은 제조업 생산공정이기 때문에 파견이 금지돼 있다. 하지만 파견법 제5조 ②항 “일시적·간헐적으로 인력을 확보하여야 할 필요”가 있을 때는 파견이 가능하다. 따라서 성훈씨의 업무는 불법파견이 아니다. 이 조항을 악용해 경기도 반월·시화공단을 비롯해 전국 공단의 제조업에 ‘3개월+3개월=6개월’ 파견이 횡행하고, 잠시 쉬게 한 뒤 다시 파견을 받는 불법이 판치고 있다.

학교에서 검인정교과서를 선택하면 시도 교육청에서 교과서를 발행하는 출판사에 제작을 의뢰한다. 개학 전 3개월 동안 교과서가 인쇄·제본되기 때문에 비정규직을 채용할 수 있다. 출판사는 사람을 쉽게 쓰다 버리기 위해 파견직을 쓴다.

교학사는 겨울 시즌 4개월, 여름 3개월 동안 주야 아르바이트를 고용해 교육청이 발주한 교과서를 생산했다. 파견노동자들은 월평균 50만원의 체불임금을 떼였다. 성훈씨와 동료 2명은 노동청에 진정해 체불임금을 돌려받았지만 나머지 파견노동자 20여 명은 고스란히 월급을 떼였다. 성훈씨 체불임금을 기준으로 하면, 학기별로 파견노동자 한 명이 3개월 동안 평균 150만원, 20명으로 따지면 3천만원의 임금을 도둑맞은 것이다.

직장갑질119는 서울시교육청에 공문을 보내 올해 여름방학부터 검인정교과서 제작에 파견노동자를 쓰지 못하도록 하고, 기간제 노동자를 쓰는 경우에도 최저임금법과 근로기준법을 위반하지 않도록 단속을 강화하도록 요구할 계획이다.

서울시교육청이 감독하라

성훈씨는 파견업체가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방문한 적도 없고, 근로계약서도 쓰지 않았다. 교학사의 지시를 받아 일했지만 떼인 월급은 파견회사에 청구할 수밖에 없었다. 중간착취를 용인하는 파견법을 없애지 않는다면, 성훈씨 같은 피해자가 계속 나올 수밖에 없다.

근로기준법 제9조 중간착취의 배제에는 “누구든지 법률에 따르지 아니하고는 영리로 다른 사람의 취업에 개입하거나 중간인으로서 이익을 취득하지 못한다”고 돼 있다. 문재인 정부는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가 중간착취와 불법으로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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