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10.16 (수)

비자 8번 퇴짜맞고 영어 못하던 중국인…실리콘밸리 신화로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실리콘밸리의 `테크 빅 2` 중 하나로 꼽히는 비디오 영상회의 소프트웨어 업체 줌(Zoom)이 18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 시장에 데뷔했다. 상장 행사에 참석한 에릭 위안 최고경영자(왼쪽 셋째)가 손을 흔들며 웃고 있다. [AP연합뉴스]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영어 한마디도 못하던 중국 산둥성의 꿈 많은 청년. 미국에 이민 와서 회사를 창업, 억만장자(빌리어네어)가 되다.'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넷플릭스, 시스코 등 거대 기업의 지배력이 강해지면서 더 이상의 드라마는 쓰이지 않을 것 같던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새로운 이민자 성공 스토리가 나왔다. 18일(현지시간) 미국 나스닥에 화려하게 데뷔한 영상회의 소프트웨어 솔루션 기업인 '줌(Zoom)'의 창업자 에릭 위안 이야기다.

에릭 위안 창업자 겸 최고경영자(CEO·48)가 2011년 창업한 줌은 이날 나스닥에 성공리에 상장(IPO)했다. IPO 직전 주당 32~35달러로 평가받던 줌의 주식은 개장하자마자 65달러로 치솟다가 등락을 거듭한 끝에 결국 하루 만에 72.22% 오른 62달러로 마감했다. 시가총액도 상장 전에는 92억달러(약 10조4640억원)로 평가됐으나 이날 주가 폭등으로 159억달러(약 18조846억원)의 가치를 지닌 회사가 됐다. 그야말로 최근 IPO 열풍 속 '신데렐라'가 됐다.

매일경제

각 기업에 영상회의 소프트웨어를 제공하는 줌이 처음부터 주목을 받았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상장을 위해 공개한 정보문서(S-1)에서 지난해 매출이 전년에 비해 118% 증가한 3억3000만달러(약 3752억원)를 기록하고 순이익도 전년도 적자에서 758만달러(약 86억2000만원) 흑자를 낸 것으로 알려지자 '진주 같은 기업'이라는 평가를 받기 시작했다.

올 들어 리프트(Lyft)가 상장하고 우버가 다음달 상장을 예고한 가운데 실리콘밸리의 유니콘 기업(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지닌 비상장 기업)들이 막대한 적자를 보고 있는 것이 드러난 이후여서 더 주목을 받았다. 유니콘 기업들이 가입자 확보, 매출 확대 등 '성장'에만 초점을 맞춰 수익을 내지 못하는 것에 비해 줌은 '흑자' 상태에서 상장했기 때문이다.

특히 본사와 세일즈 조직, 고객들은 미국에 대부분 위치하고 있지만 중국에 약 500명에 달하는 연구개발(R&D) 인력을 두고 기술을 개발하고 업무지원을 하면서 비용을 최적화하고 있는 것도 투자자들의 인기를 끈 비결이다. CNBC는 "줌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현금 보유, 이익 실현, 고객 확보 추이 등에서 투자자들이 감동을 받았다. 특히 줌은 비디오 콘퍼런스의 표준이 될 가능성도 높다"고 평가했다. 기업용 소프트웨어(SaaS) 기업 상장의 모범답안이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위안 CEO의 '흙수저 성공기'도 관심을 받았다. 위안 CEO는 중국 산둥성 출신으로 칭다오에 위치한 산둥과기대를 졸업했다. 대학생 시절 여자친구(현재 부인)를 만나기 위해 10시간 동안 중국의 불편하고 힘든 기차 여행을 마다하지 않았다. 이때 위안 CEO는 "여행하지 않고도 여자친구를 만나면 좋겠다"는 소원으로 비디오 콘퍼런스 사업의 꿈을 꿨다고 비즈니스뉴스데일리(Business News Daily)에 창업 동기를 밝혔다.

위안 CEO가 2017년 7월 이 매체에 실은 기고문에 따르면 대학 졸업 후 석사 학위를 받고 작은 회사를 창업하기 위해 수도 베이징에 왔다가 '인터넷'을 만났다. 그가 베이징으로 옮긴 1990년대에 중국에 '인터넷'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조차 많지 않았다.

이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의 '인터넷과 디지털이 미래를 바꾼다'는 내용의 강연을 듣고 미국 실리콘밸리로 가기로 결심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AOL, 야후, 넷스케이프가 닷컴 붐을 일으키고 있었다.

그러나 미국 이주 시도 2년간 8번이나 비자를 거절당하고 9번째 시도에서 비자를 받아 미국에 와 '웹엑스(WebEx)'라는 비디오 콘퍼런스 기업에 초기 멤버로 취업했다. 이 회사가 2007년 시스코에 인수·합병되고 위안 CEO는 시스코 웹엑스 부문에서 부사장까지 올랐다. 위안 CEO는 "마케팅을 하고 싶었으나 영어를 잘 못해서 엔지니어링으로 전환했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가 창업을 하게 된 것은 시스코가 '고객'을 위한 제품을 만들지 않는다는 판단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는 결국 2011년 시스코 웹엑스에서 일하던 40명의 동료 직원과 함께 나와 줌을 창업했다.

창업 이후 상장에 이른 과정도 '기적'이라는 평가가 많다. 영상회의 비즈니스가 이미 포화된 데다 경쟁자들은 시스코, 구글(행아웃), 마이크로소프트(스카이프) 등 대기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간단하고 편리한 영상회의 소프트웨어를 만든다는 신념으로 경쟁을 돌파해 이날 성공리에 상장하는 영광을 안게 됐다. 중국 산둥성의 무일푼이던 젊은 청년이 실리콘밸리의 빌리어네어 대열에 합류한 날이기도 했다.

[실리콘밸리 = 손재권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