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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6 (수)

학생자살 늘자 SNS상담·공단선 노동자 관리…日의 핀셋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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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당신의 생명은 소중합니다 2부 ③ 日지역 맞춤형 대책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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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희 지역에서는 청소년 자살 예방 교육에 중점을 두고 지역 내 학교들과 연계해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습니다."

최근 일본 도쿄 에도가와구청에서 만난 기쿠치 요시코 씨는 쉴 새 없이 걸려 오는 전화를 받느라 분주했다. 구청 보건예방과에서 자살 예방 정책을 담당하고 있는 기쿠치 씨는 에도가와에서 진행하고 있는 자살 관련 정책의 구체적 내용을 수화기 너머로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었다.

에도가와구는 자살 예방 정책의 모범 사례로 꼽힌다. 에도가와 인구는 약 70만명으로 도쿄 23개구 중 인구가 넷째로 많은 기초지방자치단체다. 주거 중심 도시로 인구 구성에서 고령자가 차지하는 비율이 높은 점이 특징이다. 에도가와에서도 2013년 인구 10만명당 자살자 수(자살사망률)가 22.7명에 육박하는 등 위기가 고조됐다. 이에 이듬해인 2014년 자살 예방 대책 전담조직인 '생명지원계'를 만들어 자살사망자 줄이기에 사활을 걸었다.

에도가와는 자살 대책과 직접적 연관이 있는 정신보건 분야뿐 아니라 구민에 대한 모든 정책을 분류해 자살 업무와 연계할 수 있는 체계를 구축했다. 지난해부터는 구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심리상담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지역 내 아동·청소년들의 사망 원인을 분석한 결과 자살이 1위로 나타났기 때문이다. 학생들이 겉으로 꺼내기 어려운 고민을 친구와 채팅하듯 상담할 수 있도록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상담 교육을 개시했다. 초등학교는 학교마다 담당 교사를 지정해 필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중학교에는 보건사·심리사 등 구청 소속 직원이 파견돼 직접 가르치고 있다.

오카다 구니코 생명지원계장은 "전담조직 구성 이후 자살사망률이 지속적으로 줄면서 2017년 16.6명을 기록했다"며 "10년간 자살자 수를 30% 줄이자는 정부 방침에 따라 2026년까지 자살사망률을 14명대로 낮추는 게 목표"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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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에서 열린 전국자살대책주관과장회의에서 일본 47개 도도부현 자살 대책 담당자들이 모여 지역 맞춤형 자살 대책 수립과 관련한 교육을 받고 있다. [사진 제공 = 일본 자살종합대책추진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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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자체가 자체 수립한 자살 대책이 효과를 보이자 2016년 개정된 자살대책기본법(자살방지법)에는 도도부현(한국의 광역지자체에 해당)은 물론 시정촌(한국의 기초지자체에 해당)까지 개별 자살 예방책을 마련하라는 의무 조항이 포함됐다. 자살 문제에 대응할 수 있는 지역 단위를 보다 세밀하게 나눠 맞춤형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한 것이다. 일본 정부는 지난 3월까지 각 지자체가 자체 자살 대책을 수립해 향후 5년간 지역 전반의 자살 예방 정책을 진행하도록 했다.

이런 지역별 맞춤 정책 추진을 지원하는 곳이 일본 자살종합대책추진센터다. 센터는 다년간의 통계를 기반으로 데이터 분석 시스템인 '자살 실태 프로파일'을 구축해 전국 1741개 지자체에 필요한 자료를 패키지 형태로 제공했다. 지역별 자살사망자 특징을 여섯 가지로 분류해 지역 내에서 시급한 자살 문제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성별, 나이, 직업 유무, 동거 유무 등을 기준으로 자살에 취약한 계층을 선별하는 작업도 진행했다. 각 지자체는 센터가 제공한 자료를 바탕으로 자살 대책의 기본 방침을 정하고 구체적 시책을 마련했다.

가네코 요시히로 자살종합대책추진센터 통계분석실장은 "단순히 실태 분석 자료를 보고 대책을 마련하는 건 쉽지 않아 센터에서 지역 정책 패키지를 만든 것"이라며 "지역별 자살자의 특성을 최대한 상세하게 제공할 수 있도록 1년마다 프로파일을 업데이트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각 지자체들은 센터에서 확보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중점 정책을 펼치고 있다. 지바현 야치마타시는 수도권 베드타운 성격을 지닌 도시로 10대 학생들의 거주 비율이 높다. 이에 학교 생활 적응에 어려움을 호소하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상담 활동을 진행한다는 계획을 수립했다. 공단 지역인 후쿠오카현 기타큐슈시는 기업 인사팀 직원들을 중심으로 '직장 정신건강 세미나'를 개최할 방침이다. 농어촌 고령자들이 많이 사는 도야마현 도야마시에선 노인 요양사들을 상대로 정신보건 교육이 진행되기도 한다. 이바라키현 다카하기시는 동일본 대지진에 따른 피난민들이 다수 거주하는 만큼 이들에 대한 건강 점검과 가정 방문을 벌이기로 했다.

한국 정부도 지역별 특성을 살린 자살 예방 대책이 필요하다는 인식에 따라 지난해부터 '자살 예방 국가 행동계획'을 통해 실태 파악에 나섰다. 지난해 5월부터 중앙심리부검센터에서 경찰 수사 기록을 토대로 자살사망자 전수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사망자의 거주지를 기준으로 집계했던 것과 달리 사망 당시 발견 지역을 기준으로 분석하고 있다.

전홍진 중앙심리부검센터장은 "자료 분석은 올해 12월까지 진행할 계획"이라며 "전수조사가 완료되면 지역별 맞춤형 계획을 세우기 위한 토대가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지역별 맞춤형 자살 대책 수립을 마친 일본은 세우고(Plan), 행동하고(Do), 평가하고(Check), 조치한다(Act)는 'PDCA 사이클'을 적용해 자살 대책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기 위한 다음 단계로 나아가고 있다. 모토하시 유타카 자살종합대책추진센터장은 "지역별 대책이 마련됐고 앞으로는 대책이 제대로 정착하는지 평가하는 도구를 마련해야 한다"며 "지자체의 자살 업무 담당 직원들을 지원하는 별도의 센터를 광역지자체에 만드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도쿄 =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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