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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性의 진화…아름다움 찾는 암컷, 아름다움 좇는 수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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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바우어새는 탐미주의자, 아니 탐미주의조(鳥)다. 수컷은 암컷에게 구애 퍼포먼스를 펼칠 공연장 '바우어'를 아름답게 꾸미는 데 상당한 공력을 들인다. 나뭇잎과 조약돌, 때로는 페트병 뚜껑까지 형형색색 재료를 마당에 끌어와 이성을 공연장 내부로 초대한다. 손님은 진입로로 천천히 들어가면서 주인의 외모와 미적 수준을 판단하는데, 참을성 없는 수컷이 암컷에게 달려들기라도 하면 홀연히 날아가 버린다. 그래서 수컷은 경쟁자보다 예쁜 바우어를 지어야 하고, 암컷이 자신과 다른 수컷을 충분히 비교할 수 있도록 기다려야 한다.

'아름다움의 진화'는 조류가 미(美)에 집착하는 이유를 진화사(史)에서 찾는 책이다. '새 마니아' 리처드 프럼 예일대 조류학과 교수가 약 30년 동안 수리남과 안데스산맥 등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새들의 아름다움을 연구했다. 가슴깃털을 부챗살처럼 펼쳐 구애행동을 하는 어깨걸이풍조부터 구슬이 알알이 박힌 날개를 자랑하는 풍조까지 조류 세계에는 아름다움에 미친 수컷이 넘친다. 이들이 별다른 효용성도 없는 기관을 발달시켜 가면서 아름다움을 과시하게 된 원인은 무엇일까. 저자는 "암컷이 아름다운 걸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결론 짓는다.

얼핏 순환논증처럼 보이는 이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선 전통적 진화론을 먼저 살펴봐야 한다. 적자생존과 자연선택으로 요약되는 기존 진화론은 수컷의 치장 목적이 광고 효과에 있다고 간주한다. 자신의 뛰어난 유전적 특질을 이성에게 보여주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저자는 이를 반박하며 '광고' 목적으로만 보기엔 불필요할 정도로 화려한 조류의 치장 사례를 든다. 신체 기능을 저하시키면서까지 아름답게 진화한 곤봉날개마나킨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곤봉날개마나킨 수컷의 자뼈는 꽉 차 있는 구조인데, 이는 빈 공간이 절반인 다른 마나킨새들과 대조된다.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날갯짓 소리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비행 능력을 떨어뜨린 것이다.

자기 파괴적인 수컷의 미모 경쟁에서 저자가 발견하는 건 암컷의 '성적 자율성'이다. 대부분 조류는 암컷의 성적 선택권을 높이는 쪽으로 진화해 왔다. 암컷이 제약 없이 파트너를 고를수록 수컷은 멋지고 예쁘게 보여야 할 동기가 커지는 것이다.

대부분 수컷 새가 페니스가 없다는 점도 아름다움을 향한 종의 열망을 키웠다. 강간을 가능하게 하는 페니스가 없다면, 수컷은 암컷을 설득하는 데 더 큰 노력을 기울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수컷 새가 페니스를 포기하는 쪽으로 진화하게 된 건 왜일까. 저자의 추론에 따르면 이 또한 암컷의 선호에 기초한다. 그는 "'강제 교미를 통해 암컷의 배우자 선택을 파괴하는 것'이라면, 암컷들이 성적 자율성에 대한 위협을 감소시키기 위해 '삽입을 거부하는 짝짓기 선호'를 진화시켰을 것"이라고 부연한다.

페니스가 없는 조류는 자신의 정자를 암컷의 총배설강(배설 기관과 생식 기관을 겸하고 있는 구멍)에 넣기 위해 암컷에게 협조를 구해야 한다. 자신을 매력적으로 가꿀 뿐만 아니라 종종 다른 수컷들과 연대해야 한다. 수컷 마나킨새는 그룹을 이뤄 암컷 앞에서 군무를 뽐내고, 여러 수컷 그룹 사이에서 자기 그룹이 뽑히길 기대한다.

일련의 '성적 자율성'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오리는 불행한 새다. 기네스북 기준 42㎝의 거대한 페니스를 자랑하는 오리는 이를 활용해 암컷과 강제 교미를 시도하고, 종종 윤간도 시도한다. 그러나 그런 오리조차도 어떻게든 암컷의 성적 선택권을 높이는 쪽으로 변모해 왔다. 시계 방향으로 꼬여 있는 청둥오리 암컷의 질이 그 증거다. 이는 반시계 방향으로 꼬여 있는 수컷 페니스의 반대다. 수컷이 강제 삽입하더라도 수정이 될 만큼 깊이 진입하기는 어렵다. 실제로 다수 오리 종을 대상으로 친자확인검사를 했더니 암컷 오리가 양육하는 자녀 중 강제 교미를 통해 탄생한 새끼는 2~5%에 불과했다. 암컷 오리가 갖는 전체 교미 중 40%가 강제로 이뤄진다는 점을 봤을 때, 원하지 않는 임신을 할 확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미의 진화사'에서 특이한 건 인간 사례다. 대부분 동물은 수컷이 더 아름답도록 진화한 반면, 인간의 경우 남성은 두드러지는 신체적 아름다움이 없다. 남녀 신체 크기도 16%밖에 차이 나지 않는데, 이는 수컷이 암컷보다 30%가량 큰 여타 영장류와 비교되는 지점이다. 침팬지와 보노보가 큰 송곳니를 자랑하는 것과 비교해 성인 남성이 작은 송곳니를 가지고 있다는 점도 특기할 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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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 역시 여성의 선택권을 늘리는 쪽으로 진화했기에 이런 차이가 발생한다고 저자는 추론한다. "평등한 몸집에 대한 여성의 선호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신체적 우위 감소'로 이어지며, 성적 강제를 비롯한 폭력에 저항할 기회를 향상시킨다."

저자가 책에서 주장하는 '배우자 선택에 의한 미적 진화'는 애초 다윈이 '자연선택'과 함께 주창했으나 외면돼온 이론이다. 합리성이란 관점에 부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현대인은 하나의 현상엔 원인과 이면이 있어야 한다고 교육받아왔기에 동물이 아름다움을 그 자체로 좋아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다.

저자는 "21세기의 현대음악가들이 작곡한 무조음악은 연주하기가 무척 까다롭지만, 연주자의 노고나 초절기교 때문에 관객들이 그 음악들을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며 아름다움은 아무런 쓸모없이도 의미 있다고 역설한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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