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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4 (월)

인간의 `욕구 손익계산` 전쟁·평화를 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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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인류는 왜 전쟁을 치르는가. 왜 죽고 죽임의 끔찍한 파국을 자처해온 것인가. 이에 답하기 위해선 우선 두 명의 사상가를 참조해야 한다. 각자의 답은 양극단에서 대립쌍을 이루기 때문이다. 17세기 토머스 홉스와 18세기 장 자크 루소 얘기다. 전쟁의 기원에 관한 이들의 생각은 완전히 판이했다.

우선 홉스. '리바이어던'을 쓴 그는 국가 형성 이전 상태를 '만인 대 만인의 전쟁 상태'로 규정했다. 국가 외양이 군주제든 공화정이든 민주주의든 그는 그것의 설립 이전을 무질서한 항구적 비상 사태로 봤다. 루소의 생각은 반대였다.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쓴 그는 국가 이전의 자연 상태야말로 최상의 평화가 보장된다고 확신했다. 사유재산 없는 농업 이전 시대야말로 서로 대립하지 않는 항구적 평화 상태라는 것.

이들 생각을 두 축으로 삼으면 독서가 한결 수월해진다. '전쟁과 평화'는 두 사상가의 관념적인 생각을 감안하되, 다른 방향으로 가지를 내뻗어가는 책이다. 그러니까 앞선 물음, 인류는 왜 전쟁을 치르는가에 대한 저자 아자 가트의 답변은 루소와 홉스라는 양극단 사이 절충점에 있다. 그 절충점은 지극히 상식과 합리를 지향한다. 그럼 과연 어떤 점에서?

일단 이 문장을 읽자. "전쟁은 국가를 만들었고, 국가는 먼저 국내에서, 나중에 국제 세계에서 평화를 만들었다." 전쟁과 평화에도 논리가 있다는 게 중요하다. 인간이 무한적으로 악해서 전쟁을 하는 게 아니다. 본성이 선해서 평화를 지향하는 것도 아니다. 말하자면, "본성과 사회적·역사적 조건 둘 다 중요하게 작용한다."

인간에게 욕구를 채우는 선택지는 크게 세 가지다. 협력과 평화적 경쟁 그리고 폭력적 분쟁이 그것이다. 이는 인류 초창기부터 쓰여 온 생존 전략이었다. 어느 하나만 좇는 게 아닌 때와 상황에 맞게 택일했다는 것이 핵심이다. 인류는 생존과 번식 계산법에 따라 폭력을 택하거나, 평화적 경쟁을 택했고, 그것도 아니면 협력을 지향했다. 이러한 논지는 진화론의 논리와도 상통한다.

"근본적으로 말해 폭력과 전쟁은 평화적 경쟁과 협력보다는 분쟁 행동 전략이 인간 욕구의 어떤 대상을 얻는 데 더 유망하다고 판단할 때 일어난다. 전쟁이 발생하는 이유를 알려면 우리는 기본적인 욕구와 이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노력을 분쟁 경로 쪽으로 몰아가는 조건, 이 두 가지를 모두 이해해야 한다."

요체는 근대 이래로 평화를 위한 인류의 상호작용이 수익성 면에서 훨씬 높아졌다는 것. 평화가 제공하는 보상이 커지면서 폭력적 분쟁 전략과 평화적 경쟁 전략이 제공하는 이익은 줄었다는 의미다. 그러나 이는 선진 사회에 국한할 때 애기다. 내전과 지역 분쟁이 들끓는 후진국은 여전히 평화의 보상보다 전쟁의 보상이 크다.

이 말인 즉슨, 지금 우리가 누리는 평화는 항구적이진 않다는 뜻이다. 인류의 손익계산서에 부합할 경우 언제든 전쟁은 재발할 수 있어서다. 지금 추세가 평화를 추구한다고, 마냥 낙관하지는 말라는 소리다. 전쟁과 평화는 순전한 인류 욕구의 산물이기에 그렇다.

[김시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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