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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비행 훈련의 꽃, `솔로 크로스컨트리`를 끝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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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아름다운 필리핀 해변. 눈호강하면서 솔로 크로스컨트리를 즐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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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바이 파일럿 도전기-102] 필리핀에서 비행훈련을 받으면서 항상 그동안 마음속에 부채 의식이 하나 있었으니, 바로 '솔로 크로스컨트리'에 대한 압박이었다. 쉽게 말해 교관 없이 비행을 혼자 3~5시간 동안 하는 훈련 과정인데, 머나먼 외국에서 아직 비행시간도 오래되지 않았는데 혼자서 몇 시간 동안 비행을 한다는 게…. 압박이 없을 수 없었다. 시간이 흘러 드디어 주어진 과정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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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주로에서 군용기와 함께 대기하면서 이륙을 준비하고 있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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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크로스컨트리가 뭐기에

원래 크로스컨트리란 '경기장을 출발하여 들판이나 언덕과 같은 야외를 달리는 경기'를 통칭하는 말이다. 예컨대 육상 크로스컨트리는 말 그대로 들판과 언덕 같은 야외를 달리는 종목이고, 스키 크로스컨트리는 눈덮인 들판과 언덕 같은 곳을 스키로 타고 다니는 종목이다. 하지만 비행에서는 조금 다르게 쓰인다. 원래 의미는 특정 목적지까지 가는 모든 비행을 일컫는 말이나, 학생 파일럿 사이에서는 주로 3시간 넘는 장시간 비행으로 통칭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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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크로스컨트리를 하면서 찍은 조종석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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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비 파일럿들이 비행기술을 배울 때 교관과 함께하는 비행 레슨을 '솔티(Sortie)'라고 부르는데, 보통 1시간에서 1시간30분 정도로 구성돼 있다. 이 시간 안에 한 공항에서 이륙, 순항, 비행기술 습득, 착륙까지 모두 한다. 하지만 크로스컨트리는 다르다. 한 공항에서 이륙한 뒤에 다른 공항까지 가서 착륙한 다음 다시 돌아오곤 한다. 피곤함이 두 배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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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같으면 교관이 앉아있어야 할 조종석 오른쪽 자리가 비워져 있다. 솔로 크로스컨트리를 하는 순간만큼은 누구도 자신을 도와주지 않으며, 모든 위급상황 대처와 책임은 오롯이 본인에게 있다.


2. 혼자 5시간 동안 하늘을 달리다

필자가 한 솔로 크로스컨트리 시간은 각각 3시간과 5시간짜리였다. 그리고 이 솔로 비행을 나가기 전에 교관과 함께 자신이 갈 루트로 똑같이 비행을 하면서 낯선 지리 등을 익히고 평가를 받는 과정을 거친다. 만약 이 과정에서 교관이 '이 학생 솔로 비행 나가기 좀 불안한데?'라는 인상을 갖게 되면 탈락이다. 대학생들이 하는 재수강처럼 재비행을 해야 하며, 추가되는 비용은 모두 학생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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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에서 바라본 해안가의 모습.


크로스컨트리 코스는 나라마다 그리고 학교마다 모두 다르다. 우리나라 울진에서 크로스컨트리를 할 때엔 보통 울진공항을 출발해 양양공항까지 다녀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필자가 베이스로 하고 있는 필리핀 클락(Clark)에서는 같은 루존아일랜드 북쪽 해변에 위치한 '산페르난도 라우뇽(San Fernando La Union)'과 더 멀리 있는 북쪽 해변의 '베건(Vegan)' 공항을 찍고 다시 돌아오는 코스였다.

크로스컨트리를 무사히 다녀오기 위해서는 플라이트 플래닝 로그북이란 것을 미리 작성해야 한다. 정해진 표지판이 없는 하늘의 특성상 정확한 헤딩 각도와 속도 그리고 거리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서 각 웨이포인트를 찍으면서 다녀야 하기 때문이다. 이 로그북에 학생들은 각각 웨이포인트를 가기 위해 필요한 헤딩 각도와 거리 그리고 예상 소요 시간 등을 적으면서 자신이 현재 어디쯤 위치해 있는지 예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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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클락국제공항(RPLC)에서 산페르난도 라우뇽 공항(RPUS)까지 가는 방법과 웨이포인트를 정리해놓은 필자의 노트.


예컨대 클락 국제공항에서 산페르난도 라우뇽 공항까지 간다고 할 때 그냥 바로 일직선으로 쭉 가는 게 아니다. 클락공항(RPLC)-카파스(CAPAS)-타를락(TARLAC)-파니키(PANIQUI)-바얌방(BAYAMBANG)-말라시키(MALASIQUI)-산 파비앙(SAN FABIAN)-다모티스(DAMORTIS)-아린가이(ARINGAY)-바왕(BAUANG)-산페르난도 공항(RPUS) 등 각 웨이포인트를 찍으면서 가야 한다.

이번에 다녀온 크로스컨트리가 시계에 의존하는 시계 크로스컨트리다 보니 각 웨이포인트의 특징과 랜드마크 등을 미리 숙지해야만 했다. 파니키는 커다란 공장이 보이고, 말라시키는 은색빛깔 돔이 보인다 이런 식으로 말이다. 우리나라 도시들도 잘 모르는데 낯선 필리핀 도시를 익히고 특징까지 익혀야 하는 과정이 조금은 버거웠으나, 뭐 어쨌든 잘 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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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페르난도 라우뇽 해안가 위에서 찍은 전경. 색깔이 참으로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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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살아 있음에 감사하면서

하늘 위에서는 모든 것들이 작게 보인다. 돈이 아무리 많고 좋은 건물에 살고 맛있는 것을 먹어도 하늘 위에서 보면 다 같은 점에 불과하다. 바둥거리면서 순간의 욕심을 위해 사는 나날에 대한 무상함이랄까. 어차피 높은 곳에서 보면 아무것도 아닌걸. 우리는 무엇을 위해 살아가야 하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까. 사람을 겸허하게 만드는 매력이 하늘 위에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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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메랄드 바닷색깔이 지친 심신을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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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전경은 참으로 아름다웠다. 클락에서 산페르난도 라우뇽까지 간다고 했을 때 산파비앙(SAN FABIAN)부터는 해변가를 따라 가는 코스인데, 3500피트 밖에서 아래로 쭉 펼쳐진 에메랄드빛 바다는 정말 뭘로도 바꿀 수 없는 눈 호강이었다. 비치에서 해수욕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서핑하는 사람들, 고급 레스토랑과 호텔 등이 눈 아래로 펼쳐져 있는 광경을 내 두 눈에 온전히 담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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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피트 구름위에서 찍은 전경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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솔로 비행을 하는 5시간 내내 이 순간 내가 살아 있음을 감사하게 느끼면서 이 감정을 평생 느낄 수 있게 계속 상기하면서 비행을 했다. 정해진 커리큘럼에서 솔로 비행은 이제 오늘로 끝이기 때문에, 앞으로는 평생 혼자서 비행을 할 일이 없을 것임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더 그랬다. 에어라인에서는 기장과 부기장이 무조건 같이 비행하기 때문이다. 비행훈련이 끝나면 언제 이곳에 다시 오겠나. 지금 이 순간을 앞으로도 잊지 못할 것이다.

[Flying J / john.won320@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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