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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예멘 전장에서 ‘스파이’로 체포됐다 풀려난 불가리아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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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예멘에서 ‘스파이’로 오인받아 구금됐다 풀려난 흰목대머리수리 넬손. 야생동식물기금(FWFF) 페이스북 제공


불가리아 출신 넬손은 터키, 시리아, 레바논, 요르단을 거쳐 사우디아라비아를 여행했다. 지난해 11월 예멘으로 향하면서 연락이 끊겼다. 5개월쯤 지났을까. 충격적인 소식이 들려왔다. 그가 ‘스파이’로 몰려 구금됐다는 것이다. 불가리아와 예멘 시민들이 합심한 덕에 그는 혐의를 벗고 풀려날 수 있었다. 희귀종 흰목대머리수리인 넬손의 이야기다.

예멘 남서부 타이즈에서 반군의 정보 수집용 조류로 오인돼 정부군에 붙잡혀 있던 넬손이 오해를 풀고 시민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다고 불가리아 매체 노비니테 등이 18일(현지시간) 보도했다.

불가리아에서 흰목대머리수리 보호사업을 펼치는 자연보호단체 ‘야생동식물기금’(FWFF)은 넬손을 포함한 14마리에 위치 추적이 가능한 인공위성위치정보(GPS) 발신기를 달았다. 지난해 11월 중동쪽으로 이동하던 넬손의 신호는 불통지역인 예멘으로 들어가면서 끊겼다. 이달 초 FWFF는 예멘인들로부터 e메일 수백통을 받았다. 넬손의 사진과 함께 ‘쇠약해 보이는 독수리가 예멘 타이즈에 있는데, 안전이 걱정된다’는 내용이 담겨 있었다. 타이즈 주민들이 넬손의 발목에 달린 인식표를 보고 단체 연락처를 알아낸 것이다.

‘최악의 내전’ 상황인 예멘에서 넬손을 어떻게 보호할지 문제였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예멘 정부군이 넬손의 왼쪽 다리에 부착된 GPS 발신기를 의심했다. 정부군은 후티 반군이 군사기밀을 빼내려고 새를 이용했다고 판단하고 넬손의 몸을 묶어 ‘억류’했다. 날지 못하게 된 넬손은 하루하루 쇠약해졌다.

위기에 빠진 넬손을 구한 건 예멘 수도 사나에 사는 동물구조 활동가 히샴 알후트였다. 넬손의 사연을 알게 된 후트는 위험한 여정을 감수하고 타이즈로 내려갔다. 넬손을 가둔 ‘살렘 장군’을 만나 ‘석방’과 먹이 제공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FWFF도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에 있는 예멘대사관을 상대로 넬손은 스파이가 아니라고 설득했다. 프랑스·아일랜드의 동물보호 활동가들도 넬손의 소식을 알리는데 발벗고 나섰다.

각고의 노력 끝에 넬손은 혐의를 벗고 풀려났다. 내전으로 식량 사정이 열악한 예멘에서도 고기 먹이를 먹으며 체력을 기르고 있다. 몇 주간 후트와 동료들의 보살핌을 받은 후 고향 불가리아로 돌아가는 긴 여정에 오를 예정이다.

FWFF의 나디아 반겔로바 활동가는 내전 상황에서도 새 한 마리에 애정을 쏟은 예멘인들에 대해 “멋진 사람들”이라며 “전쟁, 콜레라, 기아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나라에서는 매우 어려운 일을 해냈다”고 BBC에 말했다.

노도현 기자 hyune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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