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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1 (금)

서로의 소리를 기다리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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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장애·비장애 아이들이 함께하는 오케스트라 그린 다큐멘터리영화 <뷰티플 마인드>

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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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들지?” 지휘자 이원숙 선생님이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마음을 살핀다. “선생님이 더 힘든 거 아니에요?” 단원들은 되레 이 선생님을 걱정한다. 이 선생님이 웃으며 말한다. “우리가 고생한 만큼 더 예쁜 소리가 나올 거야. 다시 처음부터 해보자.” 그의 지휘에 맞춰 바이올린, 클래식기타, 첼로, 클라리넷, 트롬본 등 다양한 악기가 소리를 낸다. 그들은 오로지 서로의 소리에만 집중하며 화음을 맞춘다.

아이들 음악으로 힐링하던 류장하 감독은 떠났지만

음악 다큐멘터리영화 <뷰티플 마인드>(4월18일 개봉)의 첫 장면이다. <뷰티플 마인드>는 시각장애, 발달장애를 가진 아이들과 비장애 아이들이 10년째 함께하는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이야기다. 이들 오케스트라 단원이 서로의 차이에 귀 기울이고 음악을 매개로 소통하는 과정을 잔잔하게 담았다. 지금 우리 사회에 필요한, 혐오와 차별 없이 더불어 함께하는 공동체를 보여주는 것이다. 2018년 제14회 제천국제음악영화제, 제44회 서울독립영화제 등 국내 유수의 영화제 초청작으로 주목받은 작품이다. 이 영화의 극장 개봉을 앞둔 4월16일, 손미 감독과 조성우 음악감독을 서울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류장하) 감독님이 인터뷰 다 한다고 했는데….” 손미 감독은 인터뷰에 앞서 예정대로라면 함께 이 자리에 있어야 할 공동 연출자 류장하 감독 이야기를 꺼냈다. 예측 불가능한 게 인생이라 했던가. 류 감독은 지난 2월 암 투병 끝에 세상을 떠났다. 이 영화가 <꽃피는 봄이 오면>(2004), <순정만화>(2008) 등을 연출한 류장하 감독의 마지막 작품이 됐다.

손 감독은 류 감독과 <순정만화> 작업을 하며 인연을 맺었다. “몇 해 전 류 감독님이 함께 (<뷰티플 마인드> 작업을) 해보자고 제안했어요. 마침 그때 오케스트라 음악과 클래식에 관심이 생기기 시작한 때라 선뜻 한다고 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이번 작업은 예측 불가능한 촬영이었다. 무언가 규정짓고 거기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연주하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대로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그런 예측 불가능한 지점이 있었기에 오히려 더 즐겁게 촬영했다고 한다. “류 감독님이 촬영할 때부터 몸이 안 좋으셨는데 아이들 음악을 들으며 힐링이 된다는 말을 자주 하셨어요. 저희에게도 이들의 음악이 마음에 와닿았어요.”

조성우 음악감독은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와는 우연한 인연으로 만났다. “한 지인분이 장애인과 비장애인이 함께하는 오케스트라가 있다고 하길래 따라갔어요. 거기에서 ‘뷰티플마인드’ 친구들의 연주를 듣고 깜짝 놀랐어요. 아이들이 표현하는 음악의 느낌과 정서가 일반 음악인들과 다르지 않았어요. 다만 차이가 있다면 악기를 훈련하는 과정에서 민주 같은 경우는 손으로 악보를 읽어야 한다든지, 발달장애가 있다면 언어 소통에 문제가 있을 뿐이죠.”

그들이 영화를 제작한 시선은 사려 깊고 따뜻하다. 장애인을 도와줘야 한다거나 불쌍한 존재라고 동정의 시선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일례로 단원들 인터뷰가 나갈 때 자막에 ‘김○○ 시각장애’가 아니라 ‘김○○ 기타’ ‘김○○ 첼로’로 한다.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와 이름만 관객에게 전한다. 악기를 전공하는 음악인으로만 보여주기 위한 제작진의 뜻이다. 뷰티플마인드 단원들의 바람이기도 하다. 첼리스트 김민주씨는 “시각장애인 첼리스트 김민주가 아니라 ‘첼리스트 김민주’로만 봐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런 그는 사람들에게 좋은 음악으로 힐링을 주는 첼리스트가 되고 싶단다.

장애가 아닌 삶의 속도 차이

영화는 개성 강한 뷰티플마인드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일상을 전하는 데 방점을 찍는다. “이 빠지는 꿈을 자주 꾼다”는 고민 많은 바이올린 전공 김수진씨, “패러글라이딩도, 스쿠버다이빙도 하고 싶다”는 호기심 많은 첼로 전공 김민주씨, 클래식기타를 전공하며 타인의 별명 짓기가 취미인 심환씨, 피아노 페달이 아직 닿지 않는 최연소 단원 10살 김건호군 등 주인공을 인터뷰하며 그들의 목소리를 들려준다. 그리고 또 다른 주인공들의 이야기도 전한다. 그들은 바로 단원들을 이끌어주는 선생님, 연습을 도와주는 봉사자들, 무대 뒤 스태프처럼 지원해주는 부모님이다. 이들은 옆에서 아이들이 변화하고 성장하는 모습을 지켜본다.

영화는 겉으로 드러나는 장애가 아닌 각기 다른 ‘삶의 속도’를 보여준다. 오케스트라 단원들 실력이 개개인마다 다르니 연주를 위해서는 서로 기다리는 시간이 필요하다. 바이올리니스트 김수진씨는 말한다. “(시각장애인) 저희보다 지적장애인분들이 새로운 음악을 받아들이는 걸 어려워해요. 계속 연습해도 다시 제자리인 경우가 많아요. 이번에 연습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다음 연습 때 나아진 게 없는 것 같고. 그런데 선생님들은 힘들고 몸이 안 좋을 때도 있을 텐데 그래도 연습을 계속해요. 포기하지 않으세요.” 김씨도 오케스트라를 하며 다른 장애를 이해하고 알게 됐단다. 다른 이들의 속도를 알고 기다려주고 같이 연주하는 법을 배웠다. “뷰티플마인드 사람들이 모두 훈훈하고 따뜻해요. 영화에서 피아노 선생님이 ‘뷰티플 마인드’가 좋은 바이러스처럼 퍼졌으면 좋겠다고 하잖아요. 저도 그런 생각이 들어요.”

영화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으로 아파하는 부모의 깊은 속내도 오롯이 전한다. 비올라를 전공하는 조현성씨의 어머니 이인숙씨는 영화 인터뷰에서 힘겹게 상처를 이야기한다. 지하철에서 사람들이 현성이를 보던 차가운 시선을, “쟤 이상해, 장애아인가봐”라고 비하하는 이의 말을 잊지 못한다고 한다. 이씨는 “20년 넘게 그런 시선을 받아왔는데…. 예전보다 나아졌지만 지금도 힘겹다”고 털어놓는다.

손 감독은 지난해 4개월간 촬영하며 잊히지 않은 순간이 있다. 발달장애인 심환씨와 그의 아버지가 함께 기타를 연주하던 모습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환이네 집에 갔더니 기타가 두 개 있는 거예요. 아버님에게 아들과 듀엣 연주를 하냐고 물었더니 그런다고 하셔서 연주를 부탁했어요. <아베마리아>를 연주하는 그 모습이 너무 좋아 영상으로 담았어요. 그때 촬영한 지 얼마 안 됐을 때라 이분들을 잘 모르는 상태였죠. 그런데도 연주를 들으며 둘의 감정을 느낄 수 있었어요. 얼마나 많은 시간이 쌓여 이들이 연주할 수 있게 되었을지 알 것 같았어요. 둘이 음악으로 대화하는 모습을 보며 이런 분위기를 영화로 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진짜 잘한다는 것은

조 음악감독은 클라리넷을 전공하는 발달장애 김범순씨의 어머니 안선희씨 인터뷰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범순이의 어머니가 인터뷰에서 ‘힘들기도 하지만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범순이가 있어서 가족이 더 많은 대화를 해요. 범순이는 축복의 통로예요’라고 말해요. 그것이 이 영화가 하고 싶은 말 같아요.” 영화 제목이 말하는 ‘아름다운 마음’은 범순이 어머니가 범순이를 바라보는 긍정적이고 따뜻한 시선에서 나온다는 의미다.

<뷰티플 마인드>는 느리지만 한발 한발 함께 걸어가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많은 사람 앞에서 연주회를 하는 장면으로 끝난다. 그들의 마음에는 “우리가 함께하는 게 진짜 잘하는 거야. 소리를 맞춰가는 것, 서로의 소리를 듣고 가는 것, 이걸 잊으면 안 돼”라는 지휘자 선생님의 말이 담겼다. 서로의 차이에 귀 기울이고 다른 속도를 가진 이들을 기다리고, 화음을 만들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만의 하모니로 들려준다.

허윤희 기자 yhher@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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