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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 (토)

시적인 문체로 소수자 보듬은 한강, 韓 최초 노벨문학상 거머쥐었다 [한강 韓 최초 노벨문학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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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의 작품 세계

억압이 몰고온 상처 ‘채식주의자’

에로티시즘·공포 버무려 시각화

신군부의 광주 장악 ‘소년이 온다’

뒷세대 시각으로 풀어 독자 호평

“촉각적 세계 인식·소통의 감수성

엄청난 문체적 변주 매우 놀라워”

‘소년이 온다’와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주옥 같은 작품을 통해서 10일 한국인 최초로 노벨상을 수상한 한강은 역사와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 삶의 비극성을 집요하게 탐구하되, 압축적이면서도 시적인 문체를 통해서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스웨덴 한림원 내 노벨위원회의 안데르스 올손 의장은 이날 수상자 선정 기자회견에서 한강의 작품 세계에 대해 “역사의 상처를 마주보고 인간 삶의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내는 작가의 강렬한 시적 산문”을 높이 칭찬했다. 그러면서 “한강이 대부분 여성인 인물들의 상처입기 쉬운 처지를 거의 ‘육체적’으로 공감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세계일보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한국인 소설가 한강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뉴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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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 문학위원회 위원이자 소설가 안나 카린 팜 역시 “한강은 강렬하고 서정적인 산문을 쓰는데, 부드러우면서도 잔인하고, 때로는 약간 초현실적이기도 하며, 주제에 대한 연속성이 매우 놀랍지만, 동시에 모든 책이 이러한 중심 주제의 새로운 측면 또는 새로운 표현을 만드는 엄청난 문체적 변주가 있다”고 분석했다.

한강의 작품 세계과 관련해 문학평론가 양현진은 “일관되게 인간의 폭력성과 그에 따른 상처, 삶의 비극성을 집요하게 탐구했다”며 “촉각적 세계 인식과 소통의 감수성”을 주목했고, 나병철 평론가는 “합리적 현실을 횡단해 복수 코드적 환상을 통해 에로스의 회생을 모색했다”고 주목하기도 했다.

세계일보

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로 최초로 10일 노벨 문학상 수상의 영예를 안았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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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이자 아버지인 한승원 작가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한강의 문학 세계는 환상적이면서도 신화적인 쪽에 가깝고, 세계 작가적 감성도 갖고 있다고 평하기도 했다.

“조심스럽지만, 낡은 세대인 저의 느낌대로 말한다면, 그의 작품은 제가 상상할 수 없는, 전혀 새로운 신화적이고 환상적이고 자연친화적인 측면이 있다. 고발 형식이 아니고, 자유와 민주와 평화에 대한 희망을 섬세하게 정서적으로 보여준다.”

세계일보

스웨덴 한림원은 10일(현지시간) 2024년 노벨 문학상 수상자로 우리나라 소설가 한강 작가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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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한강 작가 스스로 문체와 문장에 각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강 작가는 ‘소설 문장을 쓸 때 낭독하기 좋은 문장이 되도록 신경을 쓰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소설을 다듬을 때 소리 내서 읽을 때가 많다. 그냥 쓸 때는 몰랐지만, 소리 내서 읽어보면 자연스러울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는데, 읽어서 자연스러울 때까지 굴리면서 고치는 편”이라고 답했다.

한강은 1993년 등단 이후 장편소설 ‘여수의 사랑’, ‘내 여자의 열매’, ‘그대의 차가운 손’, ‘검은 사슴’, ‘바람이 분다 가라’, ‘희랍어 시간’, ‘소년이 온다’, ‘채식주의자’, ‘작별하지 않는다’ 등 다양한 소설집과 장편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단에서 가장 주목받는 소설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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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커상 인터내셔널 수상작이자 대표작 ‘채식주의자’는 강렬한 이미지로 독자들을 흡인해 내는 인상적인 작품으로 꼽힌다. 어린시절 자신의 다리를 문 개를 아버지가 잔인하게 죽이는 장면으로부터 트라우마가 생긴 주인공 영혜가 어느 시점에서 육식을 거부하기 시작하고, 이를 둘러싼 가족과 사회 구성원들의 억압이 비극으로 몰아가는 맥락을 에로티시즘과 공포를 버무려 선명하게 시각화해낸 작품이다. 이 작품은 표제작 ‘채식주의자’와 처제의 엉덩이에 남은 몽고반점을 탐하는 사진작가 영혜 형부 이야기 ‘몽고반점’, 남편과 여동생의 불륜을 인지한 인혜의 시각으로 그려진 ‘나무불꽃’ 등 세 편의 연작소설로 꾸려졌다.

한강은 스스로 “마치 한 여자의 작은 이야기인 것처럼 보이지만 정치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며 “애초에 우리는 정치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을 분리하지 못하는 삶을 산다”고 말했다. 작품은 “감각적이고 도발적이며, 격렬하다. 강력한 이미지와 선명한 색채, 충격적인 질문으로 무르익었다”고 평가를 받으며 부커상을 수상, 작가 한강을 세계적인 반열에 올려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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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한강이 한국 작가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10일 서울 종로구 교보문고 광화문점에 한강의 책이 진열돼 있다. 한강의 수상 소식이 전해지자 작품 주문이 폭주하면서 대형 서점 사이트들이 한때 접속이 느려지는 혼란이 빚어졌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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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편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서는 잡지사 기자 출신 작가 경하를 내세워 제주 4·3 학살 이후 실종된 가족을 찾기 위한 생존자들의 길고 고요한 투쟁 서사를 시적으로 담아서 호평을 받았다. 프랑스 메디치 외국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또 ‘소년이 온다’는 1980년 신군부의 광주 장악을 뒷세대의 시각으로 그려 국내외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안나 카린 팜은 “한강은 이 역사적 기반(광주민주화운동)을 아주 특별한 방식으로 활용해 당시와 현재의 다양한 인물들이 이 사건을 반영하고 산 자와 죽은 자가 어떻게 얽혀 있는지, 이런 종류의 트라우마가 어떻게 한 집단에 대대로, 때로는 수 세대 동안 남아 있는지 보여줬다”며 “이 책에서 효과적인 것은 그 자체로 잔인한 권력의 소음에 거의 대항하는 힘이 되는 매우 부드럽고 정확한 산문”이라고 분석했다.

김용출 선임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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