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슬픔을 공부하는 기쁨... '메이드 인 전도연'의 힘

세월호 유가족의 일상을 담은 애도의 영화 ‘생일'을 보았다. 그 먹먹함에 몸을 맡길 자신이 없어 안보려다 전도연에 호기심이 생겨 보았다. 다큐멘터리에 가까운 그 영화에서 배우 전도연은 어떻게 존재했을까. 동그란 이마에 가느다란 팔자주름은 이 범국가적 슬픔에 어떻게 반응했을까. 스크린 속에 모습을 드러낸 그녀는 유가족이라는 막중한 캐릭터에서 홀연히 벗어나 있었다.

그녀가 맡은 극 중 순남은 처음부터 주변의 등장인물들과 따로 놀았다. 추모공원을 찾아 밥도 먹고 농담도 하며 슬픔의 곁을 주는 유가족들과 달리 전도연은 앙다문 입술로 "다들 무슨 소풍 나왔어요?" "우리 애 사진만 주세요. 저 들어가 봐야 해요" 하며 빠지는 식이다. 필사적으로 상처 입은 무리에 섞이지 않으려는 듯.

‘내 슬픔은 나만의 것'이라는 이 까칠한 태도는 매우 전도연답다. 슬픔이 하나의 덩어리로 존재한다면, 그것은 애초부터 영화가 될 수 없으며, 무엇보다 모든 캐릭터에 ‘순애보적인’ 엔진을 장착했던 전도연을 납득시킬 수 없었으리라.

외국에 간 남편(설경구 분) 대신 자신의 수호천사가 되어준 속 깊은 아들 수호. 아버지의 부재 속에 엄마를 ‘순남 씨'라고 부르며 애인처럼 살가웠던 아들을 그녀는 익사한 익명의 어린 친구 중 하나로 받아들이지 못했다.

죽은 아들 방문을 열어 "수호야~ 엄마, 뭐 사 왔나 볼래?" 새로 사온 점퍼를 옷걸이에 걸어 주고, 반찬 투정하는 어린 딸에게 "오빠는 추운 바다에서 먹지도 못하고 누워있다"고 몰아세우는 모습은, 사랑의 상실에 훼손당한 착란 상태의 모성을 정확하게 보여준다.

영화 ‘생일'이 박스오피스 1위를 지키며 극장에 조용한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전도연이 참았던 감정을 풀고 목놓아 우는 장면이다. 그녀 자신, ‘아파트가 떠나가도록 오열한다'는 지문을 보고 ‘어떻게 울면 아파트가 떠나갈까' 의아해했다지만, 근육이 다 뒤틀리도록 쏟아낸 울음은 창을 넘고 문을 넘고 골목을 넘어 이웃의 방문을 두드린다.

그 소리에 누군가는 창문을 닫고, 누군가는 귀를 막고 집을 나가며, 누군가는 달려와 그녀를 끌어안는다. 전도연의 통곡을 들으며 나는 이성복의 시 ‘길1’을 떠올렸다.

그대 내 앞에 가고/나는 그 뒤에 서고/ 그대와 나의 길은 통곡이었네.
통곡이 너무 크면 입을 막고/그래도 너무 크면 귀를 막고
눈물이 우리 귀를 지워버렸네/눈물이 우리 길을 삼켜버렸네.
못다간 우리 길은 멎어버린 통곡이었네

나는 전도연이 자식을 잃고 슬퍼하는 부모가 아니라, 슬픔 그 자체를 연기한다고 느꼈다. 아, 슬픔이란 생물은 저러하구나. 창자의 마디가 끊어지고 체액이 모조리 빠져나가는 저 모습은 생때같은 자식을 잃은 것이 아니라 생 그 자체를 잃은 것이로구나. 왜 유독 슬픔만큼은 세상 끝까지 뻗쳐있는 것인지, 왜 슬픔 뒤에는 다시 슬픔이 오는 것인지, 왜 우는 자는 마음껏 울게 해야 하는지 점점 납득이 되어갔다. 전도연을 통해 우리는 유가족이라는 덩어리에서 생략되었던 개별적 슬픔의 맨얼굴을 목격한다.

1997년 ‘접속'으로 시작해 ‘해피엔드' ‘너는 내 운명'으로 이어지는 촉촉한 멜로의 시대를 지나 전도연은 2007년 이후 ‘밀양' ‘하녀' ‘집으로 가는 길' ‘무뢰한' ‘남과 여'에 이르기까지, 매 영화에서 어떤 보호자도 없이 홀로 비극과 참담을 통과해왔다. 그럴 때마다, 나는 이 연약한 자의 무시무시한 생존의 의지와 사랑의 투지에 놀라곤 했다. ‘멜로의 여왕'일 때나 ‘고통의 대리자'일 때나 그것은 온 몸을 던져 사랑한 자의 힘이었다.

전도연은 영화 ‘생일'로 제21회 이탈리아 우디네 극동영화제 골든 멀버리 평생 공로상을 받는다. 영화제 측은 전도연에 관해 "모든 시대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한국 여성 배우, 지금 시대 아시아 영화의 최대 여성 스타"라고 소개했다.

사력을 다해 울고 난 후에야 그녀는 그토록 거부하던 아들을 위한 ‘생일'모임에 참석한다. 수호의 친구들과 유가족의 증언을 통해 자신만의 애틋한 사랑이었던 수호가 많은 사람의 것이었음을 깨닫는다. 수호는 그날 구명조끼를 양보하고 다른 친구를 구하러 들어갔으며, 수호는 비바람과 파쿠르를 좋아했으며, 수호는 눈치 없이 친구 집 냉장고의 우유를 바닥내기도 했으며, 수호의 영혼은 죽은 후 바다 건너 아버지에게 찾아가 어서 엄마 곁으로 돌아올 것을 당부했다는 것을.

평범한 유가족들과 섞인 채로 전도연은 해사하게 웃는다. 기이한 것은 그때 전도연은 영화 속 캐릭터가 아니라 상처 입은 군중 속으로 들어와 ‘함께 울고 웃는' 한명의 스타로 보인다는 것이다. 그것은 영화마다 배역으로만 존재하려던 그녀의 연기사에 한 획을 긋는 찬란한 실패이자, 정치적 쟁점을 초월해 배우는 어떻게 인간으로 존재하는가에 대한 선물같은 답장이다. 항상 스스로를 제물로 던져 자기를 넘어서는 고결한 사랑의 노동자, ‘메이드 인 전도연’의 힘. ‘슬픔을 공부하는 기쁨'을 알아버린 그녀의 얼굴엔 자존의 광채가 일렁였다.

김지수 문화전문기자(kimjis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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