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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7 (월)

[태평로]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할 대통령 될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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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2002년 父처럼 방러 추진… 시진핑, '왜구'라 했던 日과 화해

위기 때 友軍 확대는 외교 상식… 고립 자초 韓, 누가 두려워할까

조선일보

안용현 논설위원


2002년 새해를 맞은 김정일은 불안했다. 2001년 9·11 테러를 겪은 미국이 북·이란·이라크를 '악의 축'으로 규정하고 선제공격 가능성을 내비쳤기 때문이다. 2000년 남북 정상회담, 2001년 장쩌민 방북 등으로 조성된 유리한 정세는 순식간에 뒤집어졌다. 김정일은 2002년 8월 블라디보스토크로 달려가 푸틴 러시아 대통령을 만난 데 이어 9월 고이즈미 일본 총리를 평양으로 불렀다. 일본 지원을 받으려고 '북이 일본인을 납치했었다'는 고백까지 했다. 미국 압박에 대응하려면 한국 '햇볕'과 중국 '혈맹'만으로는 역부족이라고 봤다. 안보 위기일 때 우군(友軍)을 넓히는 것은 외교 상식이다.

김정은이 다음 주 블라디보스토크에서 푸틴을 만난다는 보도가 나오는 것은 이 상식에 따른 것이다. 지난달 아베 총리가 일본인 납치 문제 해결을 위해 "일·북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겠다"고 말한 것도 흘려듣지 않았을 것이다.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 결렬 이후 문재인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만 믿고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했다간 쪽박 찰 수 있겠다는 걱정이 들었을 것이다. 2002년 김정일처럼 러시아와 일본과의 접촉 면을 넓히려 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일·러 4강 외교가 중요한 건 한국이나 북한이나 마찬가지다.

일본을 싫어하는 건 중국도 한국 못지않다. 1930~1940년대 중일전쟁에서 죽거나 다친 중국인이 2000만명이다. 난징 대학살에선 30만명이 희생됐다. 시진핑 주석은 2014년 중일전쟁을 촉발한 '노구교 사건' 77주년을 맞아 일제를 '르커우(日寇·도적, 왜구)'라고 불렀다. 대일 '역사 전쟁'에서 우군을 확보하려고 한국에도 공을 들였다. 그해 방한해 "임진왜란 때 양국이 같이 싸웠다"고 했다. 당시 중·일 관계는 회복이 어려워 보였다. 그랬던 두 나라가 지금 '우호'를 자랑하고 있다. 중국은 2001년 광우병 발생으로 막았던 일본산 쇠고기 수입을 재개하기로 했고, 일본은 다음 주 베이징에서 열리는 '일대일로(신실크로드)' 포럼에 참석하기로 했다. 일본 외무상은 "일·중 관계가 정상화됐다"고도 했다. 트럼프가 좌충우돌하는 국제 정세에서 국익을 지키려고 해묵은 감정을 뒤로 돌린 것이다. 이것도 상식이다.

이 정부 외교는 이런 상식을 파괴하고 있다. 최대 우군인 미국과의 동맹부터 흔들린다. 문재인 대통령이 "한·미가 빠른 시일 내 북·미 대화의 재개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고 밝힌 다음 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북 대화를) 빨리 가고 싶지 않다. 빨리 갈 필요가 없다"고 했다. 문 대통령이 요청했던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는 면전에서 거부당했다. 민주주의와 시장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의 관계는 사상 최악이다. 광복 70년이 넘었는데 정권은 아직 항일 운동 중이다. 중국에는 '사드 3불(不)'로 주권까지 양보했지만 대놓고 무시당한다. 국빈 방중한 대통령은 '혼밥'을 했고 대통령 특사는 두 번이나 하석(下席)에 앉아 시진핑을 만났다. 북핵은 그대로인데 우군 확대는커녕 있던 우군과도 멀어지고 있다. 김정은이 북만 바라보다 고립되는 한국을 두려워할 리 없다. 시정 연설에서 문 대통령보고 "오지랖 넓은 촉진자, 중재자 행세 그만하라"고 한 것은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문 대통령은 2년 전 대선을 앞두고 소셜미디어에 "김정은이 가장 두려워하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미국이 가장 신뢰하는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 중국이 가장 믿을 만한 대통령이 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지금 어떻게 됐나.

[안용현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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