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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한국선 꿈도 못꿀 '모바일 외환 결제'… 英, 넉달만에 스피드 면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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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기업 가치가 17억달러(약 1조9000억원)로 평가돼 '유니콘(기업 가치 1조원 넘는 창업 기업)' 반열에 오른 레볼루트에선 '은행을 무찌르자!(Beat the banks)'는 구호를 자주 외친다. 기존 질서에 안주한 은행들을 꺾겠단 얘기다. 도전정신으로 무장한 임직원들은 영국은 물론 인도·베트남에서까지 찾아온 '세계 연합군'이다. 이 회사 창업자이자 최고경영자(CEO)인 니콜라이 스토론스키(Storonsky)는 러시아인이다. 리시 스토커(Stocker) 레볼루트 글로벌 전략 담당 디렉터는 "직원 760명 중 영국인은 20%도 안 된다"고 했다. 영국 핀테크 기업 연합체인 '이노베이트 파이낸스'에 따르면, 2017년 기준 런던의 핀테크 종사자 7만6500명 가운데 42%가 해외 출신이다. 이런 글로벌 핀테크 인재들과 개방적 금융 시스템을 등에 업고 런던은 미국 월가와 실리콘밸리를 위협하는 '글로벌 핀테크 성지'로 부상하고 있다.

◇매주 상담해주고 신청 4개월 만에 면허 발급한 英 금융 당국

레볼루트는 '수수료 없는 실시간 환전 결제' 서비스로 4년 만에 유럽에서만 430만 명의 회원을 사로잡았다. 레볼루트 앱을 설치해 회원 가입 후 계좌를 만들면, 계좌와 연결된 모바일 카드나 플라스틱 카드가 발급된다. 계좌에 돈을 넣어두면 미국 달러, 일본 엔, 유로, 영국 파운드 등 29개 주요 통화를 '환전 수수료' 없이 자유롭게 쓸 수 있다. 미국에서 레볼루트 카드를 쓰면 달러화로 결제되고, 유로존 국가에선 유로화로 계산되는 식이다. 매달 평균 50억달러(약 5조7000억원)가 레볼루트 서비스로 결제된다. 레볼루트는 최근 유럽에서 받은 은행업 면허를 기반으로 향후 대출이나 보험 판매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수익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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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일 영국 런던에 있는 레볼루트 본사에서 직원들이 서비스 품질 개선을 위해 고객 데이터를 분석하고 있다. 지난해 기업 가치가 1조원이 넘는 ‘유니콘’ 기업이 된 레볼루트는 창업한 지 4년 만에 유럽에서만 고객 430만 명을 모으는 등 최근 ‘유럽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핀테크 기업’으로 불린다. /정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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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트가 2015년 7월 이 서비스를 시작할 땐 직접 면허를 따지 않고, 면허가 있는 영국 금융회사와 제휴했다. 하지만 사업이 궤도에 오르자 2016년 1월 자체적으로 가상 계좌를 만들고 선불카드를 연결할 수 있는 'e머니' 면허를 영국 금융감독청(FCA)에 신청했다. 해당 면허를 받는 덴 4개월밖에 안 걸렸다. 더욱이 FCA 담당자는 매주 전화하거나 직접 만나 면허를 받기 위해 어떤 서류가 필요한지, 보완할 건 뭔지 등을 친절하게 알려줬다고 한다.

한국의 핀테크 기업 관계자는 "한국에서 레볼루트의 e머니 면허와 같은 전자결제사업자 면허를 받으려면 1년은 걸린다"며 "기술이 있어도 인·허가를 기다리다 뒤처지기 일쑤라 런던이 부러울 따름"이라고 했다. 또 한국은 영국과 달리 핀테크 기업은 아예 환전 업무를 못 하게 돼 있기 때문에 레볼루트 같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창업할 꿈도 못 꾼다.

◇핀테크 기업 활개 치도록 시스템 개방

개방적인 런던의 금융 시스템도 레볼루트의 성공 요인 중 하나다. 모든 은행이 같이 쓰는 결제망을 핀테크 기업도 같이 이용할 수 있게 열어줬다. 하지만 한국에선 은행들이 저마다 다른 결제망을 별도로 쓰고 있다. 그러다 보니 핀테크 기업이 일일이 은행마다 찾아가 결제망을 사용하게 해달라고 부탁해야 한다. 결제망 이용료도 건당 400원 안팎으로 런던보다 10배쯤 비싸, 한국에선 핀테크 기업이 낮은 수수료의 서비스로 수익을 내며 성장하는 게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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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볼루트는 몇 년 전 한국 진출을 검토했지만 이런 복잡한 규제 탓에 인·허가를 받기 어렵겠다고 판단했다고 한다. 국내 대형 은행들과의 제휴도 검토했지만 외국 기업과 손잡고 서비스하는 걸 꺼리는 분위기라 접었다고 한다. 대신 아시아 첫 진출 무대로 싱가포르와 일본을 택했다.

◇"런던을 세계 핀테크 수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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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이 핀테크에 최적인 금융 환경을 갖춘 건 하루아침의 일이 아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로 기존 은행권이 타격받자 영국 정부는 대안으로 2014년 핀테크 혁신을 시작했다. 당시 조지 오즈번 재무장관은 "런던을 세계 핀테크의 수도로 만들겠다"고 했다.

그해 영국 금융 당국은 핀테크 전담 부서인 '이노베이션 허브'를 만들고, 2015년엔 혁신 서비스에 대해 일정 기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세계 최초로 도입했다. 민간도 따라 움직였다. 2013년 유럽 최대 규모의 창업 지원센터 '레벨39' 등이 생겼다.

그 결과 레볼루트뿐만 아니라 자기 사진을 찍어(셀카) 본인 인증을 할 수 있게 한 모바일 은행 몬조, 환전하려는 사람들을 서로 연결해줘 수수료를 낮춘 트랜스퍼와이즈 등 유럽에서 손꼽히는 기업이 등장했다. 런던의 글로벌 핀테크 선도 기업도 2017년 8개에서 2018년 12개로 증가 추세다.

정유신 서강대 기술경영대학원장(핀테크지원센터장)은 "기술과 금융이 결합하지 않고서는 선진 금융이라도 안주할 수 없는 시대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런던=정한국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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