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왼쪽)과 가수 승리. [중앙포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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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사가 진행될수록 경찰과 검찰의 걱정은 커지고 있다. 김 전 차관 사건의 1·2차 수사기록을 모두 검토한 검찰 과거사 진상조사단 관계자는 “어떤 결론이 나오든 ‘봐주기’라는 욕을 먹게 될 거 같다”며 “그렇다고 무에서 유를 창조할 수는 없지 않겠냐”고 말했다. 버닝썬 수사를 맡은 경찰 관계자도 “할 수 있는 데까지 최선을 다한다지만 국민이 바라는 만큼 결과가 나올지는”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버닝썬 사건의 경우 카카오톡 단체대화방 속 ‘경찰총장’이 청장이 아닌 총경이라는 사실이 공개되자 꼬리 자르기라는 비판이 계속되고 있다. 윗선이 있을 것이라는 의심 때문이다. 가수 승리에 대한 비난 여론도 거세다. 문 대통령은 연예인을 특권층으로 규정하고 철저한 수사를 지시하기도 했다. 경찰은 승리를 성매매 알선, 식품위생법 위반, 횡령 등으로 혐의를 늘려가며 입건하고 있지만 식품위생법 위반을 제외하고는 아직 명확히 입증된 건 없다고 한다.
윤리적으로 비난받을 행동이 모두 위법은 아니다. 그러나 결론을 정해놓고 수사하면 이를 구분하지 못하게 된다. 대통령의 지시라거나 국민적 관심 사건이라는 이유로 죄형법정주의와 무죄 추정이라는 원칙이 깨져서는 안 된다. 특히 이목이 쏠린 수사의 경우 피의자 인권은 쉽게 무시된다. 구속영장실질심사에 출석하면서 수갑을 차고 카메라 앞에 섰던 이재수 전 기무사령관은 영장이 기각됐음에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버닝썬 사건으로 입건된 유명 연예인은 처벌보다 포승줄이나 수갑을 차고 포토라인에 서게 될 순간을 더 걱정하고 있다고 한다.
수사기관이 무에서 유를 창조해 ‘없는 걸 있다’고 할 수는 없다지만 이런 고민은 사실 검·경 스스로가 자초했다. 국민의 불신은 ‘있는 걸 없다’고 했던 수사기관의 과오가 낳았다. 검찰이 김 전 차관에 대한 1·2차 수사 때 불기소 처분을 내리면서 복잡한 법리를 제시하는 대신 “영상 속 인물은 김학의 전 차관이 맞다”고만 밝혔어도 공소시효에 허덕이는 지금의 상황을 만들진 않았을 것이다. 경찰은 버닝썬 최초 폭행 신고자인 김상교씨가 20분 동안 업무 방해를 해서 체포했다는 등의 반복된 거짓말로 의혹을 키웠다. 국가인권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실제 실랑이가 있었던 시간은 2분이다. 남양유업 외손녀인 황하나씨가 마약 투약 공범으로 지목되고도 조사받지 않았다는 사실까지 뒤늦게 드러났다.
수사기관이 신뢰를 되찾는 방법은 김 전 차관과 승리를 비롯한 버닝썬 관계자에게 억지로 혐의를 만들어 적용하는 게 아니다. 없는 건 없다고, 있는 건 있다고 명확히 밝혀야 한다. 검찰 간부 출신의 변호사는 “정의로운 수사기관이라면 범죄 혐의를 발견하지 못했다는 수사결과를 발표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다만 “수사 과정이 국민에게 인정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하고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다. 우리 수사기관이 정의롭다는 것을 이번 기회에 증명할 수 있길 바란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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