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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3 (토)

이슈 세월호 인양 그 후는

세월호참사 5년…유가족 목소리로 밝힌 한국사회 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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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사작가기록단,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출간

(서울=연합뉴스) 임형두 기자 = "살아야 되니까 안 먹을 수는 없는데도 먹는 것, 마시는 것, 입는 것, 모든 게 다 보기 싫었어요. 아들도 밉고 남편도 밉고 나 자신도 너무 미웠어요. 안 먹을 수만 있다면 진짜로 안 먹고 살고 싶더라고요. 그래놓고도 너무 배가 고프니까 나도 모르게 밥통을 끌어안고 먹다가 배가 좀 차면 막 울어요…"

세월호 참사로 딸(조은정)을 잃은 박정화 씨의 뼈아픈 고백이 듣는 이의 가슴을 저민다. 살아도 도무지 사는 것 같지 않은 5년의 시간들. 억울함의 고통은 갈수록 속 깊이 파고들며 괴롭혔다. 통한의 아픔이 어찌 박씨만의 일일까. 유가족과 생존자 등 희생자들은 어느 누구 할 것 없이 아프고 또 아팠다.

오는 16일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지 5주년이 되는 날이다. 지난 3월 18일, 세월의 투쟁 상징이던 서울 광화문 세월호 분향소와 천막이 철거됐다. 하지만 기억은 여전히 2014년 4월 16일에 머물고, 특히 희생자 유가족들의 통한은 오늘도 가실 줄 모른다. 철거된 광화문 분향소 자리에는 참사를 추모하기 위한 '기억·안전 전시공간'이 조성돼 12일 일반에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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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몰하는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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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3월 17일 서울 광화문광장 세월호 천막에서 열린 이안식에서 눈물을 흘리는 유족



때맞춰 '416세월호참사 작가기록단'(미류·박희정·유해정·이호연·홍은전)은 5년의 시간 속에서 참사 희생자와 유가족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을 곡진한 육성 기록으로 추적한 '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를 펴냈다. 다섯 작가는 지난해 여름부터 반년 가까운 시간 동안 53명 유가족과 4명 생존자 가족을 만나 세월호참사를 둘러싼 한국사회 민낯을 이들의 생생한 목소리로 들춰냈다.

이 책은 유가족 등이 겪은 5년간의 경험과 감정을 절절하게 들려주는 증언집이다. 참사의 희생자이자 국가폭력의 희생자였던 이들이 그날의 진실에 대해 냉철하게 질문하고 한국사회의 깊은 균열과 부정의를 직시한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크다. 작가기록단은 2015년 '금요일엔 돌아오렴'과 2016년 '다시 봄이 올 거예요'에 이어 이번에 세 번째로 관련서를 출간해 세월호의 기억과 공감을 확산한다.

기존 서적들이 피해자 목소리로 슬픔과 상실감에 주목했다면 이번 책은 피해자라는 정형화한 프레임에서 벗어나 유가족이라는 동질적 정체성이 다양화해 가는 모습을 생생하면서도 담담한 언어로 그려내어 전달한다. 유가족의 고통을 단순히 부각하는 것은 그 고통을 소비하는 데 그칠 수밖에 없다고 보고, 그저 억울함을 풀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정의와 싸우기 위해 유가족과 생존자 가족이 어떻게 자신과 세상에 울림을 보내왔는지 증언하는 것이다. 다음은 희생자 임요한의 엄마 김금자 씨의 심경―.

"세월호 참사를 해결해야 하는 이유 중 하나가 우리와 같은 슬픔을 더이상 다른 사람이 겪지 않았으면 하는 거예요. 웃을 때도 있겠지만 평생을 울어야 돼요. 그 쓰리고 가슴 아픈 일을 또 다른 누군가도 겪어야 하나요? 그러지 말자 이거죠."

작가기록단은 사회적 참사가 개인의 일상을 어떻게 부쉈는지 '고통의 단어 사전', '세월호의 지도' 등의 제목으로 각 장에서 보여준 데 이어 슬픔과 고통이 어떻게 연대와 투쟁으로 이어졌는지도 '416가족의 탄생', '다시 만난 세계', '시간의 숨결' 등을 통해 들려준다.

이와 함께 인권활동가 박래군 씨와 사회학자 엄기호 씨는 세월호를 둘러싼 우리 사회의 움직임을 사회운동의 관점에서 정리하고 사회적 참사에서 유가족이 과연 어떤 존재인지 철학적으로 해석한다. 엄씨는 세월호 유가족뿐 아니라 전태일 열사의 어머니, 박종철 역사의 아버지 등을 차례로 호명하며 한국사회에서 유가족이 '이 사회의 깊은 심연, 봉합 불가능한 균열'을 폭로한 존재였다고 밝힌다.

봄은 또다시 왔다. 하지만 올해도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일까? 각종 봄꽃이 곱고 아름다운 꽃망울을 펑펑 터뜨리며 천지사방을 화려하게 장식하나 희생자와 유가족들에게는 여전히 어둡고 차갑고 아픈 한겨울이다. 세월호 참사의 진상을 숨김없이 밝히고 애도가 가능할 사회적 조건이 아직 만들어지지 못했다는 이들의 목소리는 이 시대의 과제가 무엇인지를 숙연히 되묻게 한다.

"진상규명을 외치면서도 이게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한 적은 없어요. 전 정권 때는 더했고, 문재인 대통령으로 바뀌면서 기대는 했지만 쉽지 않다는 것도 알지요. 그러니 아직 우리 일이 끝난 게 아니죠. 진상규명을 위해 끊임없이 해야 할 일들이 있고, 우리가 하고자 했던 일들도 있으니 잘 버텨야죠."(전찬호의 아빠 전명선 씨)

"우리가 진상규명이라고 하면 사람들은 유가족이 원하는 진상규명이 따로 있는 줄 알아요.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진상규명은 없어요. 그냥 진실을 알고 싶은 것뿐이죠. 그러면 아픈 진실이라도 다 받아들일 수 있어요. 진실을 가리니까 여태까지 싸워온 거죠."(장준형의 아빠 장훈 씨)

창비 펴냄. 392쪽. 1만6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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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이 우리의 창을 두드렸다



ido@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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