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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2 (금)

이슈 불붙는 OTT 시장

OTT와 박찬욱 감독의 첫 만남 “스마트폰으론 안봤으면 좋겠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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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

지난달 26일 서울 삼청동의 카페에서 만난 박찬욱 감독은 지난달 29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플레이를 통해 공개된 6부작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에 대해 “픽션 속에서 가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라며 “그 속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위대한 공감 능력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주)왓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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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으로는 안 봤으면 좋겠어요. 하다못해 태블릿 PC로는 봐야지.”

박찬욱 감독(56)이 한 손으로 이마를 짚으며 웃었다. 지난달 29일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왓챠플레이서 공개된 그의 첫 드라마 연출작 <리틀 드러머 걸> 감독판에 대한 이야기다. 세계적인 거장으로 자리매김한 지 오래인 그에게도 급변하는 콘텐츠 플랫폼은 ‘숙제’인 모양이었다. 그는 여전히 “극장 상영 포기는 뼈 때리는 고통”이라고 이야기할 만큼 보수적인 영화 애호가지만, 동시에 원하는 이야기와 의도를 구현하기 위해서라면 과감히 새로운 형식과 플랫폼을 선택하는 도전가이기도 하다. 그의 드라마 데뷔작이자 OTT와의 첫 만남인 <리틀 드러머 걸>, 그리고 이를 둘러싼 박 감독의 도전기는 영화라는 예술 산업이 현시대 직면하고 있는 변화에 대한 이야기일지도 모른다.

“장르 소설이지만, 노벨 문학상 후보가 돼도 이상할 것 하나 없을 만큼 굉장히 문학적인 작품이었어요.” 지난달 26일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박 감독은 <리틀 드러머 걸> 동명의 원작 소설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가 갑자기 드라마 감독으로 변신한 것은 영국 작가 존 르 카레가 빚어낸 이 흥미로운 이야기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첩보 스릴러인 동시에 로맨스인 이 이야기의 매력을 희석시키고 싶지 않았어요. 120분 영화 분량에 맞춰 내용을 축소하고 싶지 않았기에 드라마 제작을 생각하게 됐죠.” 지난해 영국 BBC와 미국 AMC 방영 이후 미국 최대 비평사이트 ‘로튼토마토’에서 신선도 지수 95%를 기록하는 등 호평을 받았던 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번에 공개된 감독판은 당시 제작 여건상 감독의 의도대로 구현되지 못했던 편집, 사운드, 색보정 등을 다시 다듬은 결과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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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의 한 장면. (주)왓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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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야기의 배경은 1979년 독일. 이스라엘 대사관 관저에서 폭탄 테러가 발생하자 이스라엘 정보국 모사드의 고위 요원 ‘마틴 쿠르츠’(마이클 섀넌)는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조직 깊은 곳으로 침투하기 위해 대담한 작전을 기획한다. 런던의 백인 여성 무명 배우 ‘찰리’(플로렌스 퓨)를 스파이로 영입해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의 애인으로 투입시키는 것이다. 모사드의 최정예 요원 ‘가디 베커’(알렉산더 스카스가드)는 직접 찰리의 애인인 테러리스트의 역할을 자처해 연기 지도에 나선다. 현실과 허구는 자연히 뒤섞이고 첩보라는 목적을 위한 두 사람의 연극에 의도치 않은 로맨스가 흘러든다.

“이 드라마는 픽션 속에서 가짜 역할을 하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그 속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위대한 공감 능력에 집중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어요.” 무명 배우인데 스파이가 되어가는 찰리, 직업 스파이지만 배우처럼 역할하는 가디가 현실과 허구를 오가며 혼동에 빠질 때 이 작품의 재미와 의미가 발생한다는 이야기다. “표적인 팔레스타인 테러리스트 미셸을 연기하는 이스라엘 요원 가디를 보세요. 미셸과 같은 옷, 같은 목걸이를 착용하고, 액센트까지 바꿔 말을 똑같이 따라하다보니 어느새 미셸을 마음에 들이게 되죠. 이스라엘인이 팔레스타인을 학살한 이야기를 할 땐 진심으로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기까지 해요. 연기를 통해 그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게 된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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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리틀 드러머 걸>의 한 장면. (주)왓챠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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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흥미로운 이야기는 눈이 시릴만큼 원색적이고 강렬한 이미지를 통해 화면 위에 펼쳐진다. 절제되고 어두운 색감을 주로 써왔던 박 감독의 작품 세계를 되짚어볼 때 다소 예외적인 행보다. 그는 이번 작품에서 역시 존 르 카레 소설이 원작인 영화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미술감독을 맡았던 마리아 듀코빅과 처음으로 호흡을 맞췄다. 박 감독은 “<팅커 테일러 솔저 스파이>의 차갑고 가라앉은 색과는 다르게, 대담한 색을 쓰는 게 좋겠다고 이야기했다. 찰리의 넘치는 에너지를 표현해야 했다. 1979년이라는 시대적 배경을 활용해 1980년대의 화려한 패션을 선취적으로 가져오자고 했다. 드라마 속에서 찰리가 ‘텔레토비’를 연상케하는 노란색, 파란색 등 원색 드레스를 입고 나오는 것은 그 때문”이라고 말했다.

찰리의 대담성은 패션과 색감을 통해서만 구현되는 것이 아니다. 박 감독은 각색 과정에서 찰리의 무모함을 강조하고 원작에는 없던 유머 감각을 불어넣었다. 그는 “이전 작품들의 여성 캐릭터들도 근본적으로 용감한 캐릭터이긴 했지만, 찰리처럼 사랑을 위해 무모하게 위험을 무릅쓰는 뜨거운 사람은 없었던 것 같다”며 캐릭터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았다. 배우 플로렌스 퓨에 대한 칭찬도 이어졌다. “영화 <레이디 맥베스>를 통해 처음 발견한 플로렌스 퓨는 찰리의 중요한 성격적 특징인 대담성을 지니고 있었어요. 사람이 참 겁이 없다고 해야 하나? 처음 만나는 감독에게도 스스럼 없이 친한 친구인 것처럼 대해요. 감독과의 논쟁에서도 자기 할 이야기를 다해요. 전작에서 함께 연기한 노배우 안소니 홉킨스 앞에서도 주눅드는 법이 없었죠.”

이 대담한 인물 찰리가 향하는 곳은 지금까지도 계속되고 있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이라는 예민한 소재다. 한국 시청자들에게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겠다는 의견에 박 감독은 “촬영장에서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출신 배우와 스태프들에게 분쟁에 대한 의견을 계속 물어가면서 진행했다. 술자리에서 분쟁 관련 이야기가 나오면 이들 역시 눈물부터 차오르더라. 남북한 이야기와 크게 다를 것 없다”고 설명했다. 극장 아닌 OTT로 플랫폼이 바뀌고, 40년 전 세계 반대편의 이야기를 다뤄도 인간의 감정을 건드리는 이야기의 보편성은 여전하다는 말처럼 들린다.

플랫폼 고민에 머무를 새가 없다. 그는 벌써 여러 개의 차기작을 준비하고 있다. 박 감독은 “할리우드에서 서부극을 준비 중인데 아직 투자 확정은 되지 않았다. 한국 영화도 준비 중에 있다”고 말했다.

김지혜 기자 kimg@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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