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건 꿈꾼 박삼구 회장, 금호타이어 매각 놓고 산은과 갈등
아시아나 신뢰 위기로 결국 사퇴…추가 사재 출연 필요할 듯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금호그룹) 회장이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기로 하면서 박 회장과 금호그룹 채권단인 산업은행의 10년 인연에 관심이 쏠린다. 박 회장은 그룹 핵심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020560)의 신뢰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자진 사퇴한다고 밝혔지만 금융권에서는 산업은행의 압박이 결정적이었다고 보고 있다.
박 회장이 사퇴를 발표하기 전에 최종구 금융위원장과 이동걸 산업은행 회장이 잇따라 대주주의 책임을 거론하며 박 회장을 압박했기 때문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박 회장과 산업은행의 10년 인연이 박 회장 입장에선 악연으로 끝을 맺게 될 가능성이 커졌다"고 말했다.
박삼구 아시아나그룹 회장이 작년 7월 서울 광화문 사옥에서 열린 ‘기내식 대란’ 관련 기자회견에서 두 손을 모으고 생각에 잠겨 있다./김연정 객원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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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호그룹과 산업은행의 질긴 인연
박 회장은 2002년 그룹 회장에 오르면서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전개했다. 2006년에는 대우건설(047040)을 인수했고, 2008년에는 대한통운을 그룹에 끌어들였다. 두 회사를 인수하는데 쓴 돈만 10조원이 넘는다. 당시에도 박 회장이 무리한다는 평가가 많았다. 결정타는 글로벌 금융위기였다. 그룹을 키우려고 돈은 잔뜩 빌려다 썼는데 금융위기 여파로 돈줄이 마르면서 갚아야 할 돈을 제때 갚을 수 없게 됐고 유동성 위기가 닥쳤다.
결국 금호그룹은 2009년 6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개선약정을 체결했다. 질긴 10년 인연의 시작이었다. 금호그룹의 주요 계열사는 뿔뿔이 흩어졌다. 금호산업(002990)과 금호타이어(073240)는 워크아웃에 돌입했고, 아시아나항공도 자율협약을 체결했다.
산업은행의 도움으로 위기를 넘긴 박 회장은 2010년 11월에 다시 그룹 경영에 복귀했다. 이 때도 여러 말이 많았지만 채권단은 일단 침묵을 지켰다. 박 회장은 금호그룹 재건을 꿈꾸며 동분서주했는데 2015년 금호산업을 인수하는데 성공하며 그룹 재건의 첫 발을 뗐다. 박 회장과 산업은행의 갈등이 수면 위에 올라온 게 이 때부터다. 그룹 재건을 꿈꾸는 박 회장과 그룹이 어려워진 책임이 박 회장에 있다고 보는 산업은행은 물과 기름 같은 관계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박 회장이 2017년초 금호타이어 인수를 선언한 게 갈등이 폭발하는 계기가 됐다. 당시 산업은행은 중국 국영 타이어 기업인 더블스타를 금호타이어 인수 우선협상대상자에 선정하고 협상을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박 회장이 컨소시엄을 구성해 금호타이어 인수에 뛰어들면서 산업은행과 사사건건 부딪혔다.
산업은행도 "매각 무산 시 금호그룹에 대한 지원 중단 및 책임을 추궁할 것"이라는 입장을 내놓으면 물러서지 않았다.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인수가 여의치 않자 2017년말 금호홀딩스와 금호고속 합병을 강행했는데 이 과정에서도 산업은행과 극한 대립을 겪었다.
◇아시아나 위기는 '신뢰 위기'
이번 아시아나항공 위기는 회계 논란에서 시작됐다. 외부 감사인인 삼일회계법인이 아시아나항공의 재무제표 자료가 불충분하다며 감사 범위 '한정' 의견을 내면서 사태가 들불처럼 번졌다.
신용평가사들은 아시아나항공 신용등급을 기존 BBB-에서 '하향 검토 대상'으로 바꿨는데 실제 신용등급이 하락하면 아시아나항공은 디폴트(채무 불이행)될 수도 있다. 이미 아시아나항공은 영구채 발행이 무산되는 등 금융시장에서 자금을 조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이 자료를 다시 제출하면서 감사 의견은 '적정'으로 바뀌었지만, 바뀐 재무제표는 아시아나항공의 부실한 재무건전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아시아나항공은 작년말 기준으로 부채가 7조979억원에 달하고 부채비율은 649%였다. 28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당기순손실은 1959억원에 달했다.
금융권에서는 이런 상황이 이미 예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아시아나항공은 2009년 금호그룹이 유동성 위기를 겪을 때 함께 부실화됐고 채권단과 자율협약을 체결해 구조조정을 진행했다. 아시아나항공은 2014년에 자율협약에서 졸업했지만 항공기를 리스하는 항공운수업의 특성상 부채비율이 높았다. 여기에다 금호그룹 재건을 꿈꾸는 박 회장이 아시아나항공을 쌈짓돈처럼 쓰면서 언제 다시 유동성 위기에 빠질지 모른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컸다.
결국 아시아나항공은 작년 4월 산업은행과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약정(MOU)을 체결하고 다양한 노력을 진행했다. 금호그룹은 아시아나항공의 재무구조 개선을 위해 CJ대한통운(000120)지분을 매각하고 광화문의 그룹 사옥도 팔았다. 아시아나IDT(267850), 에어부산(298690)등을 상장해 자본을 확보하는 노력도 진행했다. 이런 노력으로 그룹 전체 차입금은 작년말 기준으로 3조9521억원으로 전년대비 1조2000억원 정도 줄었다. 하지만 아시아나항공이 신뢰 위기를 겪으면서 다시 사태가 커졌고, 결국 박 회장의 사퇴로 이어진 것이다.
금융권 관계자는 "아시아나항공 자체는 꾸준히 현금을 창출할 수 있는 우량 회사"라며 "문제는 금호그룹과 박 회장에 대한 금융시장의 신뢰가 바닥까지 떨어졌기 때문에 아무리 아시아나항공이 돈을 잘 벌어도 저 회사는 위험하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조선DB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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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회장 추가 사재 출연 필요할 듯
박 회장이 자진 사퇴를 선언하면서 아시아나항공과 금호그룹의 위기는 한 고비를 넘길 가능성이 커졌다. 남은 과제는 금호그룹이 산업은행에 제출할 자구책이다. 산업은행은 다음달 6일 아시아나항공과 재무구조 개선 MOU 연장을 앞두고 금호그룹에 강도 높은 자구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고 있다.
가능성이 높은 건 아시아나항공 자회사가 보유한 비핵심자산을 추가로 매각하는 것이다. 아시아나항공은 아시아나개발, 아시아나IDT, 아시아나에어포트, 에어부산, 에어서울 등을 자회사로 두고 있다. 자회사가 보유한 부동산 등을 매각하는 방식으로 자본을 늘리는 방안이 나올 수 있다. 금호고속 상장에도 박차를 가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산업은행 등 채권단 안팎에서는 박 회장의 희생이 더 필요하는 의견이 힘을 얻고 있다. 사태가 이렇게까지 온 데에는 박 회장의 욕심과 경영 실패가 컸기 때문에 그에 걸맞는 조치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박 회장은 작년 12월에도 금호산업과 아시아나항공 보유 주식 전부를 담보로 제공하면서 채권단의 도움을 받기도 했다.
박 회장이 보유한 주식을 추가로 담보로 내놓을 가능성이 크다는게 금융권의 전망이다. 박 회장도 28일 내놓은 입장문에서 "어떤 희생을 감수하더라도 아시아나항공의 조기 경영 정상화를 위해 모든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금호그룹이 자구책을 내면 산업은행은 MOU 연장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 지금 산업은행이 MOU 연장을 거부하면 아시아나항공의 시장 신뢰가 회복 불가능한 수준으로 떨어지고 금호그룹 전체가 붕괴될 가능성이 크다. 금융권 관계자는 "금융당국과 산업은행은 최대한 강도 높은 자구책을 끌어내려고 할 테고, 금호그룹은 지원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최대한 덜 내놓으려고 할 가능성이 있다"며 "막판까지 자구책 내용을 놓고 줄다리기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종현 기자(iu@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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