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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7.01 (월)

시진핑⋅트럼프 앞에서 분열되는 유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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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일 유럽순방 떠나는 시진핑, 이탈리아와 일대일로 체결...4개 항구 거점 확보
프랑스⋅독일, 중국 영향력 견제에 무게...트럼프發 미중 무역전쟁 탓 유럽 곤경

오는 21일 시작되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의 유럽 순방이 중국을 어떻게 다룰지를 놓고 양분된 유럽의 시각을 보여준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9일 보도했다. 시 주석은 26일까지 이탈리아, 모나코, 프랑스를 방문한다.

시 주석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를 통한 중국의 영향력 확대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미중 무역전쟁 도발과 아메리카퍼스트 전략 등 주요 2개국(G2)의 공격외교가 새로운 지정학적 질서에 대한 유럽의 대응을 놓고 분열된 시각을 노출케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시 주석이 이탈리아에서 유럽 순방을 시작하는 21일 유럽연합(EU) 정상들은 벨기에 브뤼셀에서 이틀간의 정례 정상회의를 시작한다. 유럽 정상들은 EU 집행위원회가 지난 11일 발표한 전략보고서를 논의한다. 이 보고서는 처음으로 중국을 '경제적 경쟁자'이자 '체제 경쟁의 라이벌'로 규정하고 일대일로에 대한 협력이 EU 규정을 준수하는지 확인해야 한다고 제언하고 있다.

하지만 주세페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23일 시 주석과 로마에서 일대일로 양해각서(MOU) 체결식을 지켜볼 예정이라고 WSJ 등 외신들이 전했다.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MOU 체결은 주요 7개국(G7)과 EU 창립멤버 국가중 처음이다. 이탈리아의 일대일로 참여를 두고 WSJ는 시진핑의 외교적인 주요 승리라고 했고, 블룸버그통신은 미국에 대한 모독이 될 것이라고 전했다.

왕차오(王超) 중국 외교부 부부장(차관)은 20일 베이징에서 연 기자회견에서 "시 주석은 이번 유럽 3개국 방문을 통해 중국-유럽 관계 발전에 신동력을 불어넣고 일대일로 건설을 위한 새로운 협력 공간을 마련할 것"이라고 밝혔다.

WSJ는 시 주석이 방문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는 분열된 유럽의 반대측에 있다고 전했다. 이탈리아는 중국을 순수하게 비지니스 기회로 보는 쪽이고 프랑스는 독일과 함께 중국의 경제∙정치적 영향력으로부터 스스로를 보호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쪽에 속한다는 것이다.

조선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21일부터 26일까지 이탈리아 모나코 프랑스 등 유럽 3국을 국빈방문한다. 프랑스 마크롱 대통령이 작년 1월 중국을 국빈방문했을 때 의장대를 사열하는 모습./신화망


♢ 중국과 밀착하는 이탈리아...유럽 분열 부각

중국 대응에 대한 유럽의 분열은 이탈리아와 중국간 밀착 행보로 부각되고 있다. 24일까지 진행될 시 주석의 이탈리아 방문 때 중국이 이탈리아 항구 4곳과 투자 협력을 추진할 것으로 보인다고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가 20일 보도했다.

중국의 투자가 유력시되는 항구는 제노바, 팔레르모, 트리에스테, 라벤나 등 4곳이다. 이탈리아 북서부에 있는 최대 항구도시인 제노바는 중국 국유기업인 중국교통건설(CCCC)과의 합작법인 설립 허가를 이탈리아 정부에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시 주석이 들를 예정인 남부 시칠리아섬의 항구도시 팔레르모는 중국 해운사 유치를 원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북부 아드리아해에 접한 두 항구 트리에스테와 라벤나에 대한 투자는 이탈리아와 중국이 서명할 일대일로 양해각서(MOU)에 포함될 것으로 관측된다. 이탈리아와 슬로베니아의 접경 지역에 있는 트리에스테는 중국 일대일로 사업의 공략 지역인 중·동부 유럽과 지중해를 잇는 전략적 요충지다. 트리에스테에는 중국 국영 항만기업 자오상쥐(招商局)그룹이 합작법인 설립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SCMP에 따르면 중국과 이탈리아가 서명할 일대일로 MOU에는 양국이 도로와 철도, 교량, 민간항공, 항만, 에너지, 통신 등 인프라 분야에서 협력한다는 조항이 포함된 것으로 전해졌다. 시 주석은 20일 이탈리아 신문 코리에레델라세라(Corriere della Sera) 기고문을 통해 "일대일로를 이탈리아의 ‘북방 항구 건설계획’ 및 ‘이탈리아 투자계획’과 연계해 해상, 육지, 항공, 우주, 문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새로운 시기의 일대일로를 만들어가기를 원한다"고 밝혔다.

SCMP는 "이탈리아 정부는 중국과의 협력을 원하고 있지만, 일부에서는 이탈리아가 중국에 내준 항구들이 장기적으로 상업적 목적을 넘어 군사적 목적으로 쓰일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고 전했다.

이탈리아 정부는 일대일로 MOU가 구속력이 없다며 EU정책과 충돌하지 않는다는 입장이라고 WSJ는 전했다. 콘테 이탈리아 총리는 "중국의 투자를 받는 데 상업적 투명성을 지키고 국가안보와 관련한 유럽의 기본 틀과 원칙을 무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19일 의회에서도 "경제적으로 중국과 인프라에 집중하는 것은 완전히 합법적"이라며 "거대한 시장에 대한 수출을 강화할 수 있어 국익측면에서도 정확하게 정당화된다"고 강조했다.

유럽에선 그리스 등 자금난을 겪는 국가와 규모가 작은 국가 중심으로 13개국이 일대일로에 참여한 상태다. 이탈리아 싱크탱크 IIA의 나탈리 토치 디렉터는 "이탈리아가 불황에 빠지면서 중국 자본은 미국이나 다른 서방의 투자보다 더 쉽게 얻을 수 있다는 잘못된 희망이 생겼다"고 지적했다.

♢ 中 견제하는 프랑스⋅독일...유럽 남중국해 군사활동 강화

WSJ에 따르면 유럽에는 중국을 비즈니스 기회로 보는 시각과 국제질서 재편을 원하는 패권으로 보는 시각이 병존한다. 프랑스 싱크탱크인 스트래티직리서치 재단의 프랑코 하이스부그 특별고문은 "프랑스는 시 주석에 대해 이탈리아보다 더 조심스럽게 접근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중국을 국빈 방문한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일대일로 참여를 희망하는 시 주석에게 적극 참여하겠다고 말은 했지만 양해각서를 체결하지는 않았다. 시 주석은 24일 마크롱 대통령과 만찬을 가진 뒤 25일 엘리제궁에서 정상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WSJ는 트럼프 대통령이 당선 이후 비판하거나 철회한 글로벌 무역∙기후협약∙안보 부문에서 유럽 일부는 중국과 협력할 수 있다는 시각을 가졌지만 남중국해와 시장진입 등에서 중국이 보여준 일방적인 공격성에 환상이 깨졌다고 전했다.

하이스부그 고문은 "독일은 중국이 40년전의 일본과 다르다는 걸을 깨닫고 있다"며 "(중국은) 경제파트너일 뿐 아니라 전략적 플레이어"라고 지적했다. 하이코 마스 독일 외무장관은 지난 18일 "EU 국가들은 전략적인 영향력을 키우기 위한 중국의 경제 정책 활용을 순진하게 대해서는 안된다"며 "궁극적으로 중국에 대응해 단결하는 게 모두에게 이로울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의 중국 견제는 남중국해에서 미국과 함께 군사활동을 하는 것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SCMP에 따르면 미국 싱크탱크 허드슨연구소의 리슬롯 오가드 연구원은 "프랑스가 인도 태평양 해역에 항공모함 전단을 보낼 것으로 보이며, 덴마크도 구축함을 파견할 것"이라며 "여러 국가가 그룹을 지어 남중국해에서 ‘항행의 자유’ 작전을 지지하는 작전을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영국은 남중국해에 항모를 파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며, 프랑스도 일본 해군과 합동 작전을 논의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앞서 영국 해군의 프리깃함 아가일함은 지난 1월 남중국해에서 미국 제7함대 소속 미사일 구축함 맥켐벨함과 합동훈련을 했다. 미·영이 남중국해에서 훈련한 것은 2010년 이후 처음이다.

♢ 유럽에 독립∙자주외교 강조하는 중국

중국은 새해 들어 대 유럽 외교를 부쩍 강화하고 있다. 시 주석의 순방에 이어 리커창(李克强) 총리도 내달 9일 유럽으로 떠난다. 벨기에서 중국-EU 정상회담을 갖고 이어 11~13일 크로아티아를 찾아 중국과 중⋅동유럽간 16+1 정상회의를 개최한다. 이를 앞두고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장(장관)은 지난 18일 벨기에에서 처음으로 중국과 EU 외교장관 집단대화를 가졌다.

중국은 시 주석의 이번 순방이 역사적 의미가 있다고 띄우고 있다. 왕차오 부부장은 20일 기자회견에서 "중국 국가주석의 이탈리아 공식방문은 10년 만이며 내년은 중국과 이탈리아 수교 50주년을 앞두고 있다"면서 "이번 방문 기간 시 주석은 마타렐라 대통령, 콘테 총리 등과 정상회담을 하고, 올해 15주년을 맞이한 양국의 전면적인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강화할 것"이라고 소개했다.

왕 부부장은 또 "시 주석의 프랑스 방문은 5년 만에 이뤄지는 것이고 올해는 중국과 프랑스간 수교 55주년"이라며 "프랑스와 양자 관계 강화를 비롯해 일대일로 건설의 협력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전했다. 프랑스에 일대일로 러브콜을 끊임없이 던지고 있는 것이다.

중국의 새해 초 유럽 외교 행보는 미중 무역전쟁의 불확실성이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이뤄지는 것이다. 리커창 총리는 지난 15일 전인대(의회) 폐막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중미 무역마찰은 양국간의 사안으로 제3자를 이용하거나 제3자에 피해를 주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중국의 유럽 외교 강화는 미국에 대항할 ‘우군 확보’ 성격이 짙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EU 28개 회원국 외교장관이 참석하는 지난 18일 외교 이사회 회의에 초청받은 왕이 부장은 회의 뒤 기자회견을 통해 유럽과 10개 항목에 합의했다는 사실을 부각시켰다. 국제 현안에서 유엔의 역할 지지, 보호주의 반대 및 개방경제 지향, 대화와 협의를 통한 지역분쟁의 평화적 해결 등이 그것으로 미국 견제 성격이 있다는 지적이다. 왕이 부장은 "중국과 유럽간에는 때로는 차이도 있지만 공통점이 더 많다"고 강조했다.

왕 부장은 지난 8일 전인대 기자회견에서도 "유럽은 국제사회의 주요 역량중 하나로서 자신의 근본과 장기적인 이익에서 출발해 중국에 대한 정책의 독립성과 안정성 적극성을 유지할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미국의 중국 견제 압박에 굴복해서는 안된다고 우회적으로 주장한 것이다.

♢ 동맹도 무시하는 트럼프 아메리카퍼스트...유럽에 딜레마 안겨

유럽 국가들은 미중 무역분쟁이 야기할 글로벌 경제충격과 미중 무역협상 타결 모두를 우려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주석이 유럽 산업을 불리한 상황에 빠지게 하는 협상안을 체결할 수 있다는 우려다. 중국의 미국산 제품 우선 구매 등으로 유럽기업이 중국 시장에서 역차별 받을 수 있다는 걱정이다.

트럼프 정부는 EU, 일본 등과 통상장관 협의체를 가동해 중국의 기술탈취와 산업보조금 지급을 억제하는 정책을 조율중이다. 유럽은 미국으로부터 중국 통신장비업체 화웨이의 5G(세대) 통신망 장비 배제 압박도 받고 있다. 하지만 미국의 화웨이 압박 동맹에서는 독일 영국 등이 이탈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전통적인 동맹인 유럽에 대해서도 무역전쟁을 벌일 태세여서 중국 견제에 대한 공동 전선을 약하게 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베이징의 외교소식통은 "중국을 견제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행보는 미국 정계에서 고른 지지를 받고 있지만 동맹국까지 무역전쟁 타깃으로 삼는 아메리카 퍼스트에 대해서는 상당수 엘리트 계층에서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며 "이들은 중국에 대한 견제 노력이 타격을 입을까 우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독일의 싱크탱크 GPPI 디렉터 토스텐 베너는 "미국과 중국이 지정학적∙경제학적 경쟁을 벌이면서 유럽은 미국과 중국의 운동장이 될 위험에 빠져있다"며 "유럽의 더욱 강한 단결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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