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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재건축 규제의 깊은 뜻이?…공시가 인상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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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보다 낮은 공동주택 공시가 인상에 울상을 짓는 재건축 추진 단지들이 나올 것 같다.

공시가를 덜 올린 것이 오히려 서울 재건축 단지를 겨냥한 ‘핀셋’ 조정이란 말까지 나온다. 다들 너무 올랐다고 불만인데 덜 올랐다고 한숨을 쉬는 이유는 뭘까.

정비사업대상에 해당하는 아파트의 공시가 인상폭이 예상보다 작아 앞으로 재건축을 추진할 경우 초과이익 환수제로 토해낼 금액이 늘어날 가능성이 커졌기 때문이다. 알짜 재건축 예정지로 꼽히던 일부 아파트 단지들은 지난해 집값 상승분이 반영된 2019년 공시가격 발표까지 조합 설립 추진위원회 구성을 늦추며 시기를 가늠하던 중이다.

당장 영향이 클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은 1970~1980년대 준공됐지만 아직 재건축 사업이 본궤도에 진입하지 못한 영등포구 여의도 일대 아파트와 아직 안전진단 준비 단계에 있는 양천구 목동 아파트 단지 등이다.

1975년 11월 입주한 한양아파트 공시가격을 보면, 전용면적 105㎡ 규모형 중간층 주택의 올해 인상률은 17.6%다. 지난해 인상률(10.5%)이나 2017년 인상률(13.1%)보다는 높지만, 가격 상승분에는 못 미친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 집계를 보면, 같은 면적 주택의 매매가는 지난해 초 10억2000만원 안팎이었다가 연말까지 12억5000만원으로 올랐다. 최근 매매 시세도 12억3000만~12억5000만원선에 형성됐다.

조선비즈

1975년 588가구로 준공된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 한양아파트 단지. /다음로드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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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세별 평균 인상률과 비교해도 같거나 낮은 수준이다. 국토부는 시세 9억~12억 주택인 경우 평균 17.61%, 12억~15억 주택인 경우 평균 18.15%씩 공시가격을 올렸다.

한양아파트를 비롯해 지은지 40년이 넘은 대교·공작·수정아파트 등은 지지부진한 재건축 사업의 속도를 높이기 위해 추진위와 조합 설립 단계를 생략할 수 있는 신탁 방식으로 가닥을 잡은 상태였다. 시범아파트 정도를 제외하면 시행사를 아직 정하지 못했다.

‘재건축초과이익 환수에 관한 법률’ 제8조에 따르면, 조합설립 추진위원회가 지자체로부터 승인을 받은 날과 준공 인가를 받은 날이 각각 재건축 개시·종료 시점이다. 신탁 방식의 경우에는 시행사를 선정한 날짜가 개시 시점이다. 재건축 종료 시점과 개시 시점의 집값을 비교해, 이 기간 정상적인 주택가격 상승분과 사업 비용을 뺀 금액이 1인당 3000만원을 넘으면 이중 10~50%를 초과이익 환수 차원에서 조합원들이 토해내야 한다.

국내 대형 금융그룹 소속인 한 부동산시장 전문가는 "재건축 종료 시점의 집값도 따져봐야 하지만, 개시 시점 집값에 반영되는 공시가격 자체가 높게 산정되지 않으면 재건축 이익이 그만큼 크게 잡혀 초과이익으로 환수되는 금액이 늘어나는 셈"이라며 "재건축 일몰제도 다가오는 만큼 추진위도 설립되지 않은 곳들은 재건축 사업 계획 자체를 접어야 할 수도 있다"고 평가했다.

최근 서울시가 발표한 ‘도시·건축 혁신안’도 재건축 전망을 어둡게 만드는 요인이다. 이전에는 사업성과 용적률, 일조권 등 관련 건축법만 고려했다면, 앞으로는 주변 환경과 조화, 친환경성 등 공적인 성격 요소도 설계·시공 과정에 반영하면 조합원에 돌아가는 개발이익은 줄어들 가능성이 크다.

한 감정평가업계 전문가는 "정비계획이 아직 안 잡혔거나 조합 설립 추진위도 아직 없는, 즉 재건축 초기 단계에 해당하는 아파트들이 영향을 받을 것"이라며 "서울시가 연구용역을 진행해 정비계획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하려면 최소 1년은 걸릴테고, 그 기간만큼 재건축 일정이 늦어진다는 얘기가 된다"고 설명했다.

정부는 지난 해 재건축 안전진단 기준과 재건축 사업지 청렴도 점검을 강화하는 등 재건축 사업 단계마다 한층 더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중이다. 국토부는 올해 업무계획에 재건축 추진위나 조합이 관행처럼 사업 초기 자금을 건설사 등으로부터 빌리는 데 비리 등 문제가 없는지 감시를 강화한다는 내용 등을 포함했다. 집값 안정 기조의 연장선에서 다각도로 그물을 쳐, ‘노후 주택 매입-재건축-차익 실현 매도’로 이어지는 투기성 아파트 거래를 막기 위한 것으로 풀이된다.

유한빛 기자(hanvit@chosunbiz.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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