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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25 (월)

이슈 불법촬영 등 젠더 폭력

몰카 피해자 평생의 고통…촬영·유포자는 2%만 구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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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이 안전한 사회 ② ◆

매일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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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매일 고통스러운데 가해자가 누군지조차 모르고 그 사람이 언제 잡힐지도 모르는 게 너무 무서워요."

불법촬영·유포 피해자 A씨는 친한 지인 남성에게서 자신의 동영상이 떠도는 것 같다는 얘기를 듣고 황급히 관련 게시물을 검색했다. 지인이 알려준 웹하드 사이트에선 A씨가 나오는 불법촬영 영상이 '중노'라는 제목이 붙은 채 빠르게 유포되고 있었다. 중노는 '중국 노 모자이크'의 줄임말로 중국에서 촬영된 모자이크가 없는 야한 동영상이라는 뜻이다. A씨는 자신이 나오는 불법촬영물이 마치 해외 포르노 영상처럼 취급돼 유통된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았다. 더 치가 떨리는 건 도대체 언제, 어디서 불법 촬영 피해를 입었고 누가 유포한 건지 전혀 감을 잡을 수도 없다는 점이다.

유포 가해자를 찾기 힘든 건 B씨도 마찬가지다. B씨는 디지털 성범죄를 보도하는 시사 프로그램을 시청하던 중 영상 속 주인공이 자신임을 깨닫고 엄청난 충격에 빠졌다. 알고 보니 B씨가 나온 불법촬영 영상은 수많은 사이트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상태였다. B씨는 "내가 나오는 불법촬영물이 인터넷상에 영원히 돌아다닐 것이고 내가 죽어도 '유작'으로 희화화될 뿐"이라며 울분을 토로했다.

가수 정준영의 성관계 동영상 불법 촬영·유포 문제가 불거지면서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이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안타깝게도 시중에 유포된 불법 촬영물 10건 중 6건은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어 처벌이 불가능한 상황이다. 가해자를 포착해도 불법 촬영 범죄로 구속되는 비율과 징역형이 선고되는 사례가 모두 극히 저조해 '솜방망이 처벌' 논란을 피할 수 없다.

19일 여성가족부에 따르면 지난해 4~12월 디지털성범죄피해자지원센터가 삭제 지원한 불법 촬영물 총 2만8879건 중 가해자를 특정할 수 없는 건이 60.2%에 달했다. 최란 성폭력상담소 상담팀장은 "주로 설치형 카메라로 촬영돼 가해자를 알 수 없는 경우가 많은데, 이럴 때는 수사기관을 찾아가는 방법밖에 없다"며 "하지만 수사기관을 찾아가도 언제, 어디에서 찍힌 건지 장소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아 처벌이 힘들다"고 말했다. 이어 "불법 촬영 장소와 카메라를 찾았다 하더라도 유포자를 찾는 건 또 다른 문제"라며 "의심이 가는 사람이 있어도 유포에 대한 물적 증거를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처벌이 어렵다"고 설명했다. 가해자가 특정되지 않으면 피해자들은 언제 또 피해를 볼지 모른다는 불안에 시달리기도 한다.

가해자 신원을 알아내 수사기관에 신고해도 처벌까지 도달하기는 쉽지 않다. 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대법원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선고된 '불법 촬영·유포 범죄(성폭력특별법 제14조 위반)' 관련 1심 판결(1702건) 중 징역형이 내려진 것은 215건(12.6%)에 불과했다. 벌금 등 재산형 처벌(692건)이나 집행유예(681건) 판결이 내려진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동안 수사 과정에서 불법 촬영·유포 피의자가 구속되는 사례도 극히 드물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지난해 1~9월 성폭력특별법 제14조(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구속된 비율은 2.6%에 그쳤다. 정춘숙 의원은 "불법 촬영은 인권을 침해하는 심각한 범죄임에도 불구하고 벌금형 수준에 그치는 등 처벌이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그나마 불법 촬영·유포 관련 형량이 기존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서 올해 '5년 이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 벌금'으로 강화됐다. 하지만 피해자가 좀비처럼 유포되는 불법 촬영물로 평생 고통받는 것에 비해 여전히 처벌이 약하고, 추가적인 법 정비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특히 재유포자에 대한 법적 처벌 근거를 정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법률구조공단에서 피해자들의 국선 변호를 전담하는 신진희 변호사는 "불법 촬영을 하고 영상을 유포한 당사자에 대해서만 수사기관이 주로 처벌하는데, 해당 영상을 공유받은 이들이 재유포했는지에 대해서는 수사가 잘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사이버성폭력대응센터 측은 "유포 피의자들은 음란물을 공유한 것뿐이라고 주장한다"며 "이럴 때는 성폭력특별법이 아닌 정보통신망법으로만 처벌돼 가벼운 형을 받는다"고 밝혔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우연히 유포됐다고 주장하는 피의자도 많다. 한 여성단체 관계자는 "피의자들이 휴대폰을 잃어버렸다거나, 해킹당했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상당하다"며 "특정적인 물적 증거를 확보하지 못하면 기소가 잘 안 되곤 한다"고 토로했다. 윤김지영 건국대 몸문화연구소 교수는 "불법 촬영물을 찍고 소지한 것으로 유출에 대한 귀책 사유를 인정하는 법 조항이 있어야 근본적으로 성폭력 문제를 근절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이희수 기자 / 박윤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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