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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9 (목)

‘펫 보험 의무 가입’이 불러올 변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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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니멀피플] 서민의 춘추멍멍시대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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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치료비가 사람보다 훨씬 비싸다.

개를 데리고 병원에 한번이라도 가본 사람이라면 이 명제에 다들 동의할 것이다. 개 치료비가 비싼 이유도 다들 알고 있다. 사람에겐 의무적으로 가입해야 하는 건강보험이 있지만, 개를 위한 의료보험-펫 보험-에 든 이는 거의 없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건강보험에서 정해놓은 치료비가 매우 싼 나라다 보니, 개 치료비가 상대적으로 더 비싸게 느껴질 수 있다.

개가 무슨 의료보험이냐고 하겠지만 지금이 반려인구 1천만 시대임을 고려하면 이제는 개 보험에 드는 것을 논의할 때다. 개를 버리는 이유 중 상당수가 개가 아픈데 치료비가 없어서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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펫 보험 가입률 0.02%


문제는 턱없이 낮은 가입률이다. 현재 우리나라 반려동물의 펫 보험 가입률은 0.02%로 다른 나라에 비하면 미미하기 그지없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3만달러를 넘어섰다고는 하지만 개에 대한 인식은 1천달러 수준에 머물고 있다. 개 학대가 상시로 일어나고, 개 식용에 찬성하는 비율이 절반을 넘는다. 게다가 반려견 견주 중에는 개에게 돈 쓰기를 꺼리는 이가 많다.

난 정부가 다음과 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본다. 일정 기간의 유예를 두고 펫 보험 의무화, 즉 개를 위해 최소한 한 개의 펫 보험에 가입해야 하는 법안을 시행하는 것이다. 이 말에 격한 저항감이 들겠지만 다음 설명을 들으면 어느 정도 동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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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료비 부담이 줄면 생기는 일들


모든 개는 일생에 몇 번은 병원에 가기 마련이다. 그런데 보험이 없다면 병원비는 비쌀 수밖에 없다. 개 보험에 들지 않은 사람은 개한테 그렇게까지 돈을 쓰고 싶지 않은 사람이니, 비싼 병원비를 감당할 확률도 그리 높지 않다. 결국 그는 나을 수 있는 병에 걸린 개를 내버려 둠으로써 죽음으로 이끌거나 장해를 갖고 여생을 살도록 한다. 좀 더 마음이 독한 이라면, 아픈 개를 쓰레기봉투에 넣어서 버릴 수도 있다.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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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 한 마리를 입양하는 행위는 그 개의 삶을 전반적으로 책임지겠다는 약속을 한 것인데 아프다고 내팽개친다면 그건 그 약속을 위반하는 것이며, 다른 좋은 견주한테 갈 수도 있었던 그 개의 삶을 나락으로 이끈다.

그런데 그가 강제적으로라도 보험에 들었다면 치료비의 30% 정도만 내면 될 테니 병원에 데려갈 확률이 높다.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시행된 이유가 돈의 유무와 관계없이 모든 국민이 적절한 치료를 받도록 한 것이듯, 펫 보험 의무화는 개의 생명과 건강이 더욱 존중되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다.

여기서 ‘어려운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같은 얘기를 꺼내고 싶겠지만, 그러지 마시라.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사람의 생명이 더 중요하다는 명제를 부정하진 않는다. 다만 개 키우는 사람들이 개 보험료를 안 낸다고 해서 그 돈이 어려운 이에게 돌아가는 건 아니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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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입장벽’ 역할도 할 수 있다


펫 보험 의무화의 또 다른 장점은 이것이 개를 키우려는 사람들에게 진입장벽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내 건강보험료를 내기도 바쁜데 개를 위해서 따로 의료보험을 들라니 이럴 거면 안 키운다’고 생각하는 분이라면, 키우지 않는 게 본인에게는 물론 개를 위해서도 더 좋다.

다시 말해서 펫 보험 의무화의 시행은 자격 있는 사람만 개를 키우라는 국가의 요구다. 당장 하면 반발이 심하겠지만 10년쯤 뒤에 시행하면 상황이 조금 나을 것이고, 이미 개를 기르는 사람은 예외로 해주는 조치도 뒤따라야 할 것이다. 그 경우 대략 15년쯤 후에 입양되는 개들은 최소한 의료 면에서 좀 더 나은 대우를 받지 않을까?

펫 보험이 지지부진했던 이유 중 하나는 펫 보험의 혜택이 매우 적었기 때문이기도 하다. 예컨대 기존 펫 보험들은 소형견에서 자주 발생했던 슬관절 탈구를 지원하지 않았는데, 그러다 보니 견주들 사이에선 ‘이럴 거면 적금을 붓는 게 낫다’는 말이 돌기도 했다.

하지만 반려동물 보험에서 탈출구를 찾겠다는 보험사들이 최근 괜찮은 상품을 앞다투어 내놓기 시작했다. 모 보험사의 약관을 보면 ‘이 정도면 들지 않는 게 손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견주들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는데, 그래서인지 요즘 펫 보험에 드는 분들이 급격히 늘어나고 있다. 여기에 펫 보험 의무화로 가입자가 늘어난다면 견주에게 돌아가는 혜택도 커지지 않을까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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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웨덴은 40%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내 희망사항일 뿐인 것이, 우리보다 개의 권리를 더 중시하는 외국에서도 모든 반려동물이 다 가입하는 의무보험이 시행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가입률이 가장 높은 스웨덴도 40%에 불과하고, 영국이 20%, 독일이 15%, 일본이 8%에 그치고 있다. 우리나라의 가입률인 0.02%에 비하면 어마어마하게 높은 수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펫 보험 의무화가 갈 길이 먼, 꿈같은 얘기임을 말해준다.

게다가 펫 보험 역시 아직 갈 길이 멀다. 대부분의 보험이 국가에 등록된 동물만 보험가입을 받는 반면 상당수의 견주는 개에게 칩을 심는 것에 저항감을 보이기 때문이다. 개의 등록 여부는 매우 중요한 문제다. 개들 외모가 다 거기서 거기라, 두마리 이상을 키우는 견주가 한 마리만 가입시킨 뒤 ‘이 개가 그 개다’라고 우길 수 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옆집 개가 가입한 보험을 쓰려는 견주도 있을 수 있다.

또한 동물병원마다 진료비가 제각각인 것도 펫 보험의 정착을 방해하는 요인이 된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문제다. 개는 기르고 싶은데 돈은 쓰기 싫어하는 견주들이 주를 이루는 한, 펫 보험 의무화는 한낱 꿈에 불과할 것이다.

단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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