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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시론] 보통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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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계급 남성 추악함 드러낸 ‘정준영 몰카’

남자를 시민 만드는데 실패해온 한국 사회

한국 남자들, 잘못된 ‘성적 욕망’과 결별해야

“일부의 사례를 들어 남자 전체를 매도하지 말라”라는 말이 매일 같이 들려온다. 자신은 부패한 고위층도 아니고, 성범죄자도 아닌 평범한 남자인데, 자신이 욕먹는(것 같은 기분이 들게 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항변이었다. 나는 문득 궁금해졌다. 저 주장을 하던 사람과 “정준영 동영상”을 실시간 검색어 1위에 올린 사람들이 얼마나 겹치는지. 모 커뮤니티에 올라왔던 “신체 건강한 남자라면 몰카에 관심 갖는 거 당연한 거 아니냐”는 주장에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이들과는 또 얼마나 교집합을 이룰지 말이다.

지금 드러나고 있는 바와 같이, 지배계급의 남성들은 여성을 선물처럼 주고받으며 추악한 유착관계를 다져왔다. 고급 룸싸롱에서 성매매와 성접대가 일상처럼 벌어지고, 강남의 클럽들은 하룻밤에 수 억 원을 쓰는 남자들을 위해 강간을 상품화했다. 반면 그곳들의 말석에는 요행을 노리고 없는 돈을 모아 테이블에 앉아 두리번거리는 평범한 남자들이 있었다. 고위층의 성폭력에 분노하는 남자들의 상당수는 그들이 여성을 물건처럼 다루고 강간했다는 사실이 아니라, 그들만이 그런 쾌락을 손쉽게 누리고 있다는 사실에 분개한다. 이들은 자신들이 성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거나 혹은 들키지 않았다는 사실 하나로 스스로의 무해함을 굳건히 믿는다. 이런 사고의 끝이 향하는 곳은 ‘(나 같은 남자가 아니라)돈 많은 남자들만 쫓으니 그런 일을 당한다’ 같은 피해자에 대한 비난이다.

이제 우리가 문제 삼아야 하는 것은 드러난 성폭력뿐만 아니라, 한국 남자의 평범함과 그것이 만들어지는 과정이다. 이성애자 남성으로서 이성에게 성적인 관심과 호감을 갖는 것 자체를 잘못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러나 그 관심과 호감을 표현하고 관계를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폭력은 일상화 되어있다. 남성의 성욕은 당연하고 무절제하게 표현되어도 좋은 것이라는 사회적 통념이 여전히 존재하고, 가정과 학교에서 전달되지 않는 성에 대한 지식과 태도가 온라인과 또래집단의 폭력적이고 편견에 가득 찬 성담론으로 대체된다. 여기에 최소한의 동의라도 거쳐서 제작된 것인지를 구분하는 게 무색하리만치 그저 ‘야동’으로 존재하는 불법촬영물과 포르노가 남성들의 뇌리에 성에 대한 왜곡된 이미지를 각인시킨다. 이런 청소년기를 보낸 남성들이 성인이 된다고 해서 갑자기 성에 대한 올바른 지식과 태도가 생겨날리 없다. 자신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타인에게 폭력을 휘두르지 않는 것은 민주주의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가장 중요한 원칙이다. 그리고 이에 비춰 볼 때 한국사회는 남자를 시민으로 만드는 데 계속해서 실패하고 있다.

오늘날 한국 남자의 평범함을 떠받치고 있는 것은 비열함이다. 자신의 평범함을 강변하는 이들은 타인의 미움을 사거나 악당이 되는 것을 두려워하지만, 폭력과 그것의 산물을 포기하지 않으려 한다. 그래서 이들은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다른 것을 그중에서도 피해자를 비난한다. 하지만 돈과 권력이 없다는 것도, 외모가 출중하지 않다는 한탄도 무해함에 대한 어떠한 보증도 될 수 없다. 잘못된 교육의 문제도 그것을 바로잡기 위한 배움의 의지가 없다면 마찬가지로 자기변명에 불과하다. 이 평범한 남자들은 모든 것이 이대로 유지되길 원한다. 성폭력에 대한 증언들이 혹여 자신의 성적 욕망을 실현하는데 방해가 될까에 만 전전긍긍하며, ‘한국은 안전하고,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라는 의미 없는 말만 화를 내며 반복한다.

결국 한국 남자의 평범함은, 그 침묵은, 동조는, 욕망은, 한국의 평범한 여자들이 스스로를 국가 없는 난민으로 여기도록 하는 데에 가장 큰 근거를 제공했다. 여자들은 이제 한국 남자들이 내가 성폭력의 피해자가 되었을 때, 도움은커녕 평범한 남자는 다 이렇다며 ‘몰카’를 찾아 동분서주할 것이라는 차가운 확신을 굳혀가고 있다.

성폭력에 눈감으며 ‘멀쩡한’ 사람이 되는 법은 없다. 성찰과 변화를 거부하는 것은 폭력의 공모자가 되겠다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따위 평범함과는 결별하라. 이것은 시대가 남자들에게 보내고 있는 최후통첩이다.

최태섭 문화비평가
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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