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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트럼프-폼페이오-볼턴 합작…미, 정상회담 일주일 전부터 문턱 높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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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동시적·병행적’→빅딜 선회 과정

북-미 회담 전 “모든 WMD 동결”이 신호

①비건 평양 방문 ‘성과’ 확실치 않고

②트럼프의 국내 정치 후폭풍 고려에

③폼페이오의 강경 여론 의식 ‘합작’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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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븐 비건 미국 국무부 대북특별대표가 11일(현지시각) ‘올 오어 나싱’(전부 아니면 전무) 대북 접근법을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미국 행정부가 강경 일색으로 평정된 모습이다. 강성 기조로의 변화는 2차 북-미 정상회담 합의 무산 뒤에 두드러지지만, 되돌아보면 파행 조짐은 정상회담 일주일 전 무렵부터 있었다.

협상에 관한 장밋빛 전망을 낳은 주요 계기는 비건 대표의 1월31일 스탠퍼드대 연설이었다. 시그프리드 헤커와 로버트 칼린 등 현실적 해법을 추구하는 전문가들이 모여 있는 이곳에서 비건 대표는 “북한과 동시적·병행적 이행을 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해, 기존의 ‘선 비핵화, 후 제재 해제’ 방침을 버렸다는 평가를 받았다. 2월14일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은 언론 인터뷰에서 “제재 완화의 대가로 좋은 결과를 얻는 게 우리의 전적인 의도”라고 말해, ‘일부 제재를 완화하려는 것 아니냐’는 해석을 불렀다.

미국의 문턱 상향이 표면화한 것은 정상회담을 닷새 앞둔 2월21일 ‘고위 당국자’의 언론 브리핑이었다. 이 당국자는 당시 “비건 대표는 ‘단계적 조처’(스텝 바이 스텝)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우리는 매우 신속하게 움직일 필요가 있고 매우 크게 움직여야 한다”며 “점진적 조처를 이 과정의 핵심 추동력으로 보지 않는다”고 말했다. 또 그는 북한과의 협상 주제로 “모든 대량파괴무기(WMD)와 미사일 프로그램의 동결”을 언급해, 당시까지 관심 대상이던 ‘영변 폐기’보다 범주를 크게 넓혔다.

앞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2월19~20일 “궁극적으로 비핵화를 보게 되겠지만 서두르지는 않는다” “이번이 마지막 회담이 될 것으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것도, 되짚어보면 ‘노딜’까지 염두에 둔 발언으로 해석할 수 있다.

1월 말~2월 하순에 기류 변화가 생긴 요인으로는 비건 대표의 평양 방문을 우선 꼽을 수 있다. 비건 대표는 스탠퍼드대 연설 뒤 2월6~8일 평양을 방문해 김혁철 북한 국무위원회 대미특별대표와 실무협상을 하고, 정상회담 직전 하노이에서 다시 만나기로 했다. 당시 비건 대표는 “북한이 실무협상에서 적극적이었다”고 전했지만, 실제로는 성과가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하노이 실무회담에 맞춰 공격적으로 톤을 조정했을 수 있다.

가장 큰 요인은 영변 핵시설 폐기에 그칠 경우 정치적 후폭풍을 우려한 트럼프 대통령의 의중이었을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담 합의 무산 직후 기자회견에서 “오늘 함부로 서명했다면 ‘너무 끔찍하다’는 반응이 나왔을 것”이라며 “빨리 하기보다는 옳게 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공화당의 차차기 대선 주자로 꼽히는 마이크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당내 주류 여론과 의회의 공세를 의식해 강경 기조를 택했으리라는 관측도 있다. 이는 초강경파 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득세하기에도 좋은 구도였을 것으로 보인다. ‘빅딜론’ 회귀는 트럼프-폼페이오-볼턴의 3자 합작품으로 볼 수 있는 셈이다.

워싱턴/황준범 특파원 jayb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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