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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트럼프, 언론에 가장 적대적이지만 언론과 가장 가까운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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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YT 발행인 돌발 인터뷰 요청에 집무실서 러시아 스캔들 등 설전

WP 등 비판적 언론사 기자와도 수시로 통화하며 政街정보 얻어

워싱턴포스트(WP)의 정치 칼럼니스트 댄 발즈는 지난 1월 18일(현지 시각) 프랑스 파리의 한 식당에서 식사하던 중 옆 테이블의 남성으로부터 갑작스러운 제안을 받았다.

"대통령과 통화할래요?" 얼떨결에 휴대폰을 건네받은 발즈는 수화기 너머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목소리를 들었다. 발즈는 2분여간 트럼프와 통화하며 당시 진행 중이던 연방정부 셧다운(일시적 업무정지) 등에 대해 질문했다.

그러다가 트럼프는 의아하다는 듯 "당신이 나에 대해 좋은 말을 했다고 하던데…. 당신은 힐러리 지지자요, 내 지지자요?"라고 물었고, 발즈는 "제가 누군지 모르세요? 저는 기자입니다"라고 답했다. 트럼프는 잠깐 침묵했다가 크게 웃었다.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왼쪽) 미 대통령이 10일(현지 시각) 플로리다주 마러라고 리조트에서 주말 휴가를 보낸 뒤 백악관으로 돌아와 부인 멜라니아(오른쪽), 아들 배런과 함께 백악관 경내를 걷고 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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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즈에게 휴대폰을 건넨 이는 CNBC의 앵커 조 커넌이었다. 커넌은 트럼프와 통화하다가 옆 테이블에 발즈가 있는 것을 보고, 트럼프에게 "대화를 나누면 좋아할 사람이 있다"며 전화를 바꿔준 것이다. 발즈는 "처음엔 거짓말인 줄 알았다. 현실이라기엔 너무 이상했다"고 이날을 떠올렸다. 그러나 트럼프에게는 이런 일이 일상과도 같다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언론사와 기자에 대해 연일 "국민의 진정한 적" "가짜 뉴스" "구역질 난다"는 등 공격을 퍼붓는다. 자신에게 비판적인 CNN 기자에게는 한때 백악관 출입금지 조치를 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이런 트럼프가 역대 미국 대통령 중 가장 언론을 가까이하는 대통령이라는 평가가 나왔다.

미국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존 F 케네디 대통령에 버금갈 정도로 언론과 긴밀하게 상호작용을 하고 있다"고 했다. 트럼프는 대표적 '친(親)트럼프' 언론인인 폭스뉴스의 앵커 션 해니티와는 그의 뉴스쇼가 끝난 뒤 매번 전화를 주고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럼프의 전화가 '충성파'들에게만 열려 있는 것은 아니다. 그는 뉴욕타임스(NYT)·WP·폴리티코 등 비판적인 언론사 기자들과도 수시로 통화한다. 그는 기자들과 통화하며 이들로부터 정치권 정보를 얻고, 자신이 얼마나 중요한 일을 하고 있는지에 대해 말한다고 한다.

트럼프는 "망해가는 신문"이라고 맹비난했던 NYT와는 지난 1월 31일 돌발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트럼프가 NYT의 아서 그레그 설즈버거 발행인에게 비보도를 전제로 만찬을 하자고 제안했는데, 설즈버거가 인터뷰를 요구하자 흔쾌히 받아들인 것이다.

인터뷰는 백악관 집무실에서 약 85분간 이뤄졌고, 설즈버거와 NYT 기자 2명이 참석했다. 이 자리에서 트럼프와 설즈버거는 '언론 자유'를 주제로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 스캔들, 국경 장벽 건설 등 민감한 현안들을 다룬 이 인터뷰는 NYT 2월 2일 자 신문에 실렸다.

트럼프는 회의 등을 끝낸 뒤 사진을 찍으며 기자들과 즉석에서 짧게 문답을 나누는 것도 좋아한다. 폴리티코는 트럼프가 기자들과 열심히 소통하는 이유에 대해 자신을 지지하는 여론을 듣기 위해서라고 분석했다. 기자들과 정책 논의를 하던 케네디와는 달리 '칭찬'을 듣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유력 매체와 유명 기자들에 대해 알고 싶어하고, 자신과 같은 주제에 관심이 있는 사람들과 대화하고 싶어 하는 트럼프의 개인적 성향도 이유로 꼽힌다.

24년째 백악관을 출입하는 NYT의 피터 베이커 기자는 "트럼프는 분명 언론에 가장 적대적인 대통령이지만, 내가 겪은 대통령 중 가장 언론과 가까운 대통령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이옥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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