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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시진핑, 트럼프와의 회동 최악의 시나리오...3가지 데자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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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2차 미북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1999년 당시 주룽지(朱鎔基) 중국 총리와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 세계무역기구(WTO)협상 결렬, 19세기 청나라와 서구 열강의 불평등 조약’

미중 무역전쟁 종식을 위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앞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재연하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과 CNBC 등 미국 매체들은 지난 8일(현지 시각) 소식통들을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이 시 주석과의 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2차 정상회담에서처럼 아무런 합의를 하지 않고 걸어 나갈 수 있다는 우려를 하면서 미중 무역협상이 큰 장애물을 만났다고 보도했다.

당초 오는 27일 미국 플로리다주(州)에 있는 트럼프 대통령의 별장인 마러라고에서 열릴 것으로 알려졌던 미중 정상회담이 연기됐다는 미 폭스뉴스의 보도까지 나왔다. 래리 커들로 미국 국가경제회의(NEC) 위원장도 같은 날 CNBC TV에 출연해 미중 정상회담에 대해 "3월 말이나 4월 초가 될지 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작년 12월 1일 미중 정상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만나 무역전쟁 휴전을 선언한 이후 이미 3차례 면대면(面對面) 고위급 협상이 진행됐다. 양국은 현재 화상 전화회의로 협상을 진행중이다.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작년 12월 1일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업무만찬을 갖고 무역전쟁 휴전에 합의하고 협상을 진행중이라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신화망


♢미중 정상회담 무역협상 타결 최종서명 vs 마지막 담판

미북 회담의 ‘노딜’에 충격 받은 중국은 시 주석이 마러라고까지 가서 정상회담을 하고 아무런 합의를 하지 못하는 ‘외교 참사’를 우려하고 있다고 CNBC는 전했다. 1999년 당시 주룽지 중국 총리가 WTO가입을 위한 양보안을 들고 미국으로 건너가 클린턴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했지만 결렬된 ‘악몽’도 중국의 우려를 부추긴다. 클린턴은 이 협상안을 거부한 뒤 공개했고, 주룽지 총리는 중국내 강경파들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이 때문에 중국은 정상회담을 모든 조율이 끝난 협상안을 최종 서명하는 자리로 띄우고 싶어 한다는 게 소식통들의 전언이다. 반면 미국은 정상회담을 ‘마지막 담판의 장(場)’으로 만들려고 한다. 모든 협의 내용을 조율한 뒤 추인하는 자리이기 때문에 ‘실패하는 정상외교는 없다’는 관례까지 무너뜨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협상 전략에 따른 것이다.

테리 브랜스태드 주중 미국 대사는 8일 WSJ와의 인터뷰에서 합의시 이행 메커니즘을 포함해 미중간 간극을 더 좁힐 필요가 있다면서 "우리는 합의안에 꽤 진전을 이루고, 몇가지 '마지막 터치' 또는 '마지막 사항'이 두 정상에 의해 해결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고 말했다.

시진핑과의 만남에서 최종 타결이 이뤄질 것이라고 공언해온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달 28일 미북 회담 결렬 뒤 가진 하노이 기자회견에서 "중국과의 협상에서도 언제든지 (아무런 합의없이) 걸어나갈 준비가 돼 있다"고 밝혔다. 지난 8일엔 백악관에서 기자들에게 "만약 우리나라(미국)를 위해 매우 좋은 거래가 아니라면 합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로이터통신이 전했다.

미중 무역협상에 참여하고 있는 클리트 윌렘스 백악관 통상담당 보좌관도 "중국은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과의 회담에서 ‘나쁜 거래’를 거부하기 위해 기꺼이 걸어 나간 데서 배워야 한다"고 말했다. ‘좋은 거래(굿딜)’ 아니면 ‘거래는 없다(노딜)’는 전략으로 중국을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일시적인 정치적 승리만을 위해 중국과 ‘나쁜 거래’에 합의할 수 있다는 미국내 일각의 우려를 불식시키려는 의도도 작용했다는 지적이다.

♢불평등 협약의 악몽...평등 협상 연일 강조

조선일보

중국 관영 신화통신에 따르면 양회 기자회견에서 왕이 외교부 부장(왼쪽부터), 왕서우원 상무부 부부장(차관), 이강 인민은행 행장 등 중국 고위관료들은 미중 무역협상의 양방향과 평등을 강조했다. /신화망


지난 3일 개막한 중국 연례 최대 정치이벤트 양회(정협⋅전인대)에서는 미중 무역협상이 평등하게 진행되고 있다는 점을 부각시키는 장면이 곳곳에 보였다. 이강(易纲) 중국 인민은행 행장은 10일 기자회견에서 미국과의 환율 문제 협상에서 어떤 양보라도 한게 있냐는 질문에 직답을 하지 않고, 중국의 환율 시스템은 주요 20개국(G20)와 여러 국제무대에서 약속한 것과 부합하고 있다고 답했다.

그는 양국이 환율과 관련 중요 문제를 다뤘다며 △상대의 통화정책 자주권 존중 △시장이 결정하는 환율제도 견지 △경쟁적인 평가 절하가 없다는 역대 G20정상회의에서의 약속 준수 △국제통화기금(IMF)에 투명도 기준에 맞는 수치 공개 등 4가지를 거론했다.

환율은 양국이 추진중인 6개 협정 분야중 하나로 스티븐 므누신 미 재무장관은 지난달 24일 끝난 워싱턴 DC에서의 고위급 협상에서 환율과 관련한 강력한 합의에 대해 결론에 이르렀다고 밝힌 바 있다. 이를 두고 일본이 엔화절상 수용으로 미국에 굴욕을 당한 1985년 플라자합의의 ‘중국판 협약’이 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자 중국언론들은 평등 협상이라는 보도를 내보냈다.

왕서우원(王受文) 상무부 부부장(차관)은 9일 기자회견에서 양국 무역협상 합의사항의 집행체제에 대해 "양방향이며 공평하고 평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기적으로 이행사항을 점검하고 중국이 이를 위배하면 즉각 관세폭탄을 되살리는 '스냅백'(snapback) 조항을 가동하되 중국은 보복관세를 물릴 수 없도록 하자고 주장해온 미국의 입장과 배치되는 대목이다.

앞서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국 무역대표부(USTR)대표는 지난 달 27일 미 하원 세입위원회에 출석, "미중 각급 레벨에서 이행기구를 정기적으로 개최할 필요성이 있다"고 말했다. 실무급에서는 월별, 차관급에서는 분기별, 각료급에서는 반기별 회동으로 중국의 이행 여부를 점검하고, 각료급에서 이견이 있다면, 미국은 그에 상응해서 이행을 요구할 것이라고도 했다.

9일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국은 중국의 합의 이행 상황을 지켜보며 단계적으로 철폐하는 쪽을 선호하지만 중국은 지난해 양측이 상호 부과한 추가관세를 모두 철폐하자는 입장이라고 보도했다. 왕 부부장은 작년 12월 미중 정상이 모든 추가 관세를 철폐하기로 중요한 원칙과 방향을 정했다고 밝혔다.작년말까지 취한 추가 관세는 그대로 두고 더 이상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것만 유보했다는 미국의 입장과는 거리가 있다.

미국은 작년 7월부터 순차적으로 중국산 500억달러어치 상품에 25%, 2000억달러 규모 상품에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중이고, 중국은 이에 1100억달러어치의 미국산에 대한 맞보복 관세폭탄으로 대응하고 있다.

왕이(王毅) 국무위원 겸 외교부 부장(장관)은 8일 기자회견에서 "중미 무역협상이 최근 실질적 진전을 거두고 양국 각계와 국제사회의 환영을 받고 있다"며 "이는 상호 존중을 견지하고 평등협상에 진력하면 어떤 문제에 대해서도 최종적으로 양측이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해결방안을 찾아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고 주장했다.

♢강한 중국 꿈 외치는 시진핑의 딜레마

조선일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은 작년 6월 청일 전쟁 유적지가 있는 웨이하이의 류공다오를 찾아 역사의 교훈을 새겨 강국을 만들어야한다고 강조했다고 관영 신화통신이 전했다. /신화망


WSJ는 미국이 합의사항 이행을 위해 관세폭탄을 던져도 중국이 보복관세를 부과하지않도록 하는 요구는 중국에 큰 양보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중국 지도부는 19세기 서구 열강과 맺은 불평등 조약과 같은 불평등 협약을 맺었다는 비판을 받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고 WSJ는 전했다.

지난해 전인대에서 개헌으로 주석직의 임기제를 폐지해 1인 권력체제를 강화한 시 주석은 굴욕의 역사를 딛고 ‘강한 중국’의 꿈을 실현할 ‘강한 지도자’로서의 이미지를 부각시켜왔다.

작년 6월 산둥(山東)성 웨이하이(威海)의 포대 유적지와 청일 갑오전쟁(1894년) 박물관을 참관한 시 주석은 "늘 여기와서 교육을 받고 싶었다"며 "역사의 교훈을 새겨 13억 중국인은 더 좋은 더욱 강대한 국가를 건설해야한다"고 역설했다. 청일 전쟁에서 패한 청나라는 1895년 마관(馬關⋅시모노세키)조약을 맺었다. 인민망은 이 조약을 중국이 외국과 맺고 최초의 근대적인 불평등조약인 난징조약(1842년) 이후 가장 불평등한 조약으로 꼽는다.

시 주석은 푸젠(福建)성 성장을 지내던 2001년 근대 사상가인 옌푸(严复)를 추모하는 ‘과학과 애국-옌푸사상 새로운 탐구’저서를 책임편집하면서 쓴 서문에서 "1840년 아편전쟁후 부패한 청 왕조와 제국주의 열강은 난징조약 망샤(望厦)조약 마관조약 등 국권을 잃고 치욕을 당한 불평등 협약을 맺었다"고 술회했다.

중국에서는 2001년 WTO 가입을 외부 압력을 동력으로 자체 개혁개방을 가속화한 성공사례로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중국 관료들은 미중 무역전쟁 이후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고 부쩍 강조하고 있다. 중국이 WTO 가입 당시 약속과는 달리 자국 경제를 개방하지 않았다며 WTO 무용론을 주창해온 트럼프 대통령이 야기한 미중 무역전쟁에서도 중국이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을지 주목된다.

[베이징=오광진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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