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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김정은과 트럼프는 다시 만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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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다음주의 질문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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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하노이 정상회담’이 실패로 끝났다. 엄숙한 서명도 화려한 기자회견도 없었다. 직전까지 크건 작건 성과를 예상했던 이들을 비웃는 ‘대반전’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선 합의할 수 없다는 게 확인되는 순간, 두 사람의 얼굴에 스쳤을 표정이 궁금하다. 헤어질 땐 웃었다지만, 시쳇말로 웃는 게 웃는 게 아니었을 것이다.

하노이의 실패 이후 이른바 톱다운 방식의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최고지도자들의 결단에 의지하는 정상회담의 위험성이 하노이에서 여실히 입증됐다는 것이다. 사실 최고지도자들이 만나 다투면 대책이 없다. 그러니 실무자들이 박 터지게 협의하고 최고지도자들은 우아하게 서명하는 정상회담의 ‘성공방정식’으로 돌아가자는 말이 이어진다.

그러나 정상회담은 본디 위험한 것이다. 정상회담이란 말을 외교용어로 끌어들인 이는 윈스턴 처칠이다. 그는 냉전이 한창이던 1950년 2월 “소련 최고위층과의 또다른 회담”을 제안했다. 그러면서 그것을 ‘정상(summit)에서의 회담’으로 불렀다. 적대국 최고지도자와의 회담을 ‘산꼭대기에서의 만남’에 빗댄 것이다. 그는 “정상에서의 회담으로 인해 사태가 더 악화될 수 있다는 말은 이해하기 힘들다”고 강변했다.

산꼭대기는 올라가기도 힘들지만, 내려오기도 어렵다. 깃발을 꽂고 정복의 기쁨을 누릴 수도 있지만, 발을 헛디뎌 추락의 고통을 맛볼 수도 있다. 정상에선 건곤일척의 승부가 펼쳐질 수밖에 없다. 위대하지만 위태롭기도 한 외교 형식이다. 처칠은 당시 세계를 휩쓸던 에베레스트산 등반 열기에서 정상에서의 회담이라는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

이런 정상회담의 묘미를 가장 잘 표현한 이는 김 위원장이다. 그는 기차를 타고 평양에서 하노이 앞까지 66시간을 달려갔다. 중국 대륙의 산과 강을 내질렀다. 에베레스트산 등반을 연상하게 하는 여정이었다. 김 위원장이 트럼프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여기 하노이까지 걸어왔다. 많은 고민과 노력, 그리고 인내가 필요했다”고 말한 것은 비유가 아니라 묘사다. 그는 싱가포르 1차 북-미 정상회담 때도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는데, 모든 걸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은 헤어지면서 다음 만남을 기약하지 않았다. 트럼프 대통령도 합의가 불발된 직후 열린 기자회견에서 “다음 회담이 언제쯤 열리겠느냐”는 질문에 “빨리 열릴 수도 있고, 오랫동안 안 열릴 수도 있다”고 답했다. 하노이 이후 정상회담을 향한 또다른 고민과 노력, 인내를 예고한다.

1961년 빈에서 열린 미-소 정상회담은 외교사에서 최악의 실패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미국의 야심찬 대통령 존 에프 케네디는 소련의 호전적인 최고지도자 니키타 흐루쇼프와 베를린 봉쇄 위기와 핵전쟁의 공포를 안고 만났다. 케네디는 회담 직전 “벼랑에서 만나는 것보다 정상에서 만나는 게 훨씬 더 좋다”고 호언했지만, 회담장 분위기는 싸늘했다. 케네디는 회담 내내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에 승리할 것”이라는 흐루쇼프의 이념공세에 시달렸다. 케네디는 그런 흐루쇼프에게 절망감을 느꼈다.

빈의 실패 이후 외교관들은 정상회담의 유용성에 의문을 품었다. 심각한 의견 차이가 있는 상태에서 열리는 정상회담의 위험성을 새삼 깨달은 것이다. 하지만 미국이 베트남전쟁의 수렁에 빠져들고, 소련 역시 핵무기 경쟁에 한계를 느끼면서 정상회담의 필요성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쿠바 미사일 위기까지 겪었던 미국과 소련은 결국 1972년 모스크바에서 다시 만나 전략무기제한협정(SALT)에 서명한다. 미-소 냉전 종식의 전환점이 된 1985년 제네바 정상회담을 예고하는 대진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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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회담은 단박에 성공하지 않는다. 미국과 소련의 냉전은 네차례의 결정적인 정상회담을 통해 서서히 해소됐다. 1945년 얄타를 시작으로 1961년 빈, 1972년 모스크바, 1985년 제네바에 이르기까지 40년이 걸렸다. 그 과정에서 실패와 성공이 엎치락뒤치락했다. 정상회담의 위험성은 연속성으로만 극복할 수 있다.

유강문 통일외교팀 선임기자 moo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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