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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7 (일)

[박종면칼럼]트럼프와 김정은, 몰신이이(沒身而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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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박종면 본지 대표]

‘가여적도 미가여립’(可與適道 未可與立), 함께 같은 길로 갈 수는 있어도 함께 무엇인가 도모하고 세울 수 없는 사람이 있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은 빅딜도 스몰딜도 아닌 ‘노딜’로 끝났다. 두 사람은 멀고 먼 길을 돌아 하노이에 왔지만 성과 없이 합의문조차 채택하지 못한 채 협상이 결렬됐다.

2차 북미 정상회담도 애초부터 주역은 김정은-트럼프 두 사람이었다. 김정은은 신년사에서 트럼프와 언제든 마주 앉을 용의가 있다고 말했고, 트럼프가 트위터로 화답하면서 2차 회담은 급물살을 탔다. 회담이 이처럼 두 정상간 톱다운 방식으로 빠르게 진행된 것까지는 좋았지만 디테일하고 기술적 합의까지 끌어내는 데는 한계가 많았다. 두 정상에게만 의존하다 보니 실무 준비도 부족했다.

‘군자구저기 소인구저인’(君子求諸己 小人求諸人), 군자는 자기에게 요구하고 소인은 남에게 요구한다. 인생에서 중요한 것은 ‘추기급인’(推己及人)이다. 나를 미루어 남을 생각하는 것이다. 자기가 바라는 것을 남에게 베푼다면 당연히 어떤 협상도 실패로 끝나진 않는다.

그러나 트럼프는 협상 결렬 후 기자회견에서 “북한은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원했지만 그런 요구를 들어줄 수 없었다”고 말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이 영변 핵시설 해체에는 동의했지만 이것만으로는 완전한 비핵화가 아니라고 판단했고, 영변 이외 기타 시설 해체가 필요했는데 북한은 준비가 안 돼 있었다”고 덧붙였다.

김정은은 리용호 외무상과 최선희 부상의 심야 기자회견을 통해 이를 반박하고 나섰다. 리용호는 북한이 요구한 것은 트럼프의 주장처럼 전면적 제재 해제가 아니라 민수경제와 인민생활에 지장을 주는 제재를 먼저 해제하라는 것이라고 밝혔다. 최선희는 “민수용 제재 결의까지 부분적으로 해제하는 것조차 어렵다는 미국 측 반응을 보면서 김정은 국무위원장 동지께서 앞으로의 거래에 의욕을 잃으신 것은 아닌지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도 말했다.

‘몰신이이’(沒身而已), 소리 없이 물러나 조용히 근신한다. 인재도 때를 만나지 못하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한다. 어떤 일이 성사되려면 주변 상황이 맞아떨어져야 한다. 이번 하노이 핵협상에서 트럼프는 최악의 때를 만났고 이게 핵합의 무산에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트럼프의 옛 개인변호사 마이클 코언은 의회 청문회에서 트럼프가 성관계 입막음용으로 준 돈이 트럼프의 장남에게서 나왔다고 폭로했다. 트럼프에게는 북핵 협상보다 내년 대선을 앞둔 자신의 정치적 생명이 더 중요한 이슈로 부각됐다. 결정적 순간에 ‘트럼프 리스크’가 현실화되면서 핵협상 타결에까지 악영향을 미치고 말았던 것이다.

‘물불가궁 미제종언’(物不可窮 未濟終焉), 사물은 다 할 수 없으므로 영원히 미완성으로 끝난다. 우리는 누구나 완성을 바라지만 그건 바람일 뿐이다. 1989년 북핵 문제가 불거진 이후 북한과 미국은 파국과 대치, 대화국면을 30년 동안 반복했다. 빅딜을 통해 하루아침에 평화와 공존 국면으로 이행하기를 바라는 것은 애초에 무리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는 것만도 천만다행이다.

트럼프와 김정은의 핵협상은 결렬됐지만 양측이 품격을 지키면서 후속 대화를 완전히 닫아버리지 않았다는 점은 불행 중 다행이다. 민생 관련 제재완화를 요구한 사실에서 드러났듯이 김정은은 경제난 해결이 시급하다. 트럼프도 2020년 재선을 위해서는 핵협상 타결이 긴요하다. ‘궁즉통’(窮則通)이고 ‘궁즉변’(窮則變)이다. 협상결렬이 꼭 나쁜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절대적으로 좋은 일도, 절대적으로 나쁜 일도 없다. 핵협상도 그렇다.

박종면 본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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