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일(현지시간) 오전 베트남 하노이 호찌민 베트남 초대 주석 묘소를 찾아 헌화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로이터=뉴스1 <저작권자 © 뉴스1코리아,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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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미 양측 간 달랐던 비핵화 셈법, 세계 최강대국 미국의 대통령이 '빈손'을 각오하고 나선 협상에서 '영변'만 제시한 북측의 무능이 하노이 '노딜'(no deal)을 만들었다.
지난달 28일 베트남 하노이에서 '노딜'로 끝난 제2차 북미 정상회담 직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기자회견, 지난 1일 리용호 북한 외무상의 기자회견 등을 종합해 보면 북측이 요구한 것은 '영변 핵시설의 폐기에 따른 핵심 경제제재의 전면 해제'였다.
지난해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에서 김 위원장이 영변 핵시설 폐기를 언급한 이후 '플러스 알파 비핵화 조치' 카드는 애초에 없었다는 점이 확인됐다. 북측이 '영변 플러스 알파'를 제시하면 미국이 '종전선언 플러스 알파'를 보장할 것이라는 기대는, 전제 조건 자체가 틀렸었다. 김 위원장은 영변 핵시설 하나만으로 전면적인 경제제재 완화를 달성할 생각밖에 없었다.
북미 간에는 흥정(북핵 협상)의 기본인 비핵화 정의와 개념에서부터 해석이 갈렸다. 그러다 보니 폐기 대상인 영변 핵시설의 '가치'도 달리 매겼다.
북측은 '핵·미사일 실험 중지+영변 핵시설 폐기'를 비핵화 이행 조치로 봤다. 핵실험을 멈췄으니 경제제재를 풀어주면 의미 있는 비핵화 조치를 이행하겠다는 셈법이었다. 반면 미국은 핵시설(미래 핵) 외에 핵물질(현재 핵)과 핵무기(과거 핵)까지 폐기하거나, 최소한 전체 그림(로드맵)을 그려야 비핵화로 볼 수 있다는 도식을 갖고 있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은 '확실한 비핵화 업적'을 남기고픈 인물이다. 영어로 발음도 어려울 '영변 핵시설 폐기' 같은 것은 관심 밖이다. 모든 핵시설 폐기-핵무기 반출이라는 완전한 비핵화를 임기 내에 달성하겠다는 게 목표다. 그래야만 재선을 위한 확고한 업적을 쌓을 수 있고, 노벨 평화상에도 근접할 수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북측이 '영변 폐기-경제제재 완화'만 주장하는 가운데서도 '북미 정상회담'부터 애드벌룬을 띄웠다. 지난해 말부터 거듭 "김 위원장과 2019년 1~2월 중 만날 것"이라고 언급했다.
톱다운 담판에서 김 위원장이 완전한 비핵화로 나아가는 '플러스 알파'에 확약을 하지 않는다면 '노딜'도 불사하겠다는 의도가 깔려있었다. 회담전부터 연일 "서두를 필요없다"고 해온 게 그 증거다. 약간의 비난을 받겠지만, 충격 요법으로 거래의 마지노선을 정하며 협상의 주도권을 쥘 수 있는 카드가 '노딜'이기 때문.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이 '정상회담'을 세팅하자 자신들의 뜻이 관철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베트남까지 66시간 동안 기차를 타고 간 이유다. 경제적 성과의 선전효과 등 '하노이 대장정'의 이면에는 딜 성사에 대한 기대감이 깔려 있었다. 하노이 현지 실무협상 결과 종전선언 및 평양 연락사무소 개설에 합의한 것도 이런 자신감에 영향을 줬을 것이다.
정상 간 핵담판 장에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측이 예상대로 '영변 카드'를 꺼내자 △핵 리스트 제출 △고농축 우라늄 시설 해체 △영변 외 기타 핵시설 해체가 돼야 그 정도를 해줄 수 있다고 역제안하며 플랜A를 가동했다. 김 위원장이 "그 정도는 준비가 안 됐다"고 하자 곧바로 플랜B를 택했다. 미련없이 자리에서 일어서서 미국으로 돌아갔다.
김 위원장은 '최악의 시나리오도 마련하라'는 협상의 기본원칙도 못지켰다. 지난해 6월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앞두고 한 차례 미국이 회담을 물렸던 것의 학습도 안 한 순진함이었다.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의 '노딜' 카드에 대응하기 위한 '플러스 알파 비핵화'를 준비하지 못했고, 결단하지도 못했다.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예상대로 미국 조야와 언론으로 부터 비판을 받는 출혈이 있었다. 하지만 정적인 민주당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이번 '노딜'에 대해 "좋은 일"이라고 평했다. 북측이 경제제재 해제를 받고 싶다면 핵 리스트 제출 등 '플러스 알파' 비핵화 조치를 가져와야 함도 분명히 했다.
'경제 총력'을 앞세운 김 위원장은 리더십에 타격을 받았다. 왕복 130시간의 '철도 대장정'으로 대대적인 선전을 하려했던 계획은 자충수가 됐다. 정세도 시간도 자신의 편이 아니다. 확실한 미국식 비핵화 조치를 결단하지 않고서는 후속협상을 세팅하는 것도 힘들어졌다.
하노이(베트남)=최경민, 오상헌 기자 brown@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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