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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9.29 (일)

트럼프 "영변外 큰 규모의 핵시설 지적하자, 김정은 깜짝 놀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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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노이 담판 결렬] 협상 왜 결렬됐나

하노이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정상 간 합의문' 없이 결렬된 것은 핵심 의제였던 북한 비핵화와 제재 완화를 놓고 양측의 간극이 너무 컸기 때문이다. 미국은 영변 핵시설 외 추가 발견한 대규모 우라늄 농축 핵시설 문제를 거론했다고 한다. 이에 북한은 깜짝 놀란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반대로 영변 핵시설 폐기 대가로 미측에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영변 핵시설 폐기만으론 불충분하다며 거부한 것으로 전해했다.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베트남을 떠나는 비행기에서 취재진에 "합의문에 서명하지 않은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이었다"며 "미국은 하노이 회담에서 북한에 핵능력 신고를 재차 요구했었다"고 했다. 미 정부 소식통은 이날 본지에 "협상팀이 어젯밤 트럼프 대통령에게 '영변 플러스 알파(α)'가 없을 경우, 다른 상응 조치 카드를 다 주더라도 제재 해제만큼은 절대 줘선 안 된다는 점을 주지시켰다"고 했다.

◇트럼프 "영변 외 시설 언급하자 北 놀라"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구체적으로 영변 핵시설 얘기를 나눴느냐'는 질문에 "그렇다. 영변 핵시설보다 플러스 알파를 원했다"고 했다. 이어 "(그간 협상 때) 나오지 않은 것 중에 우리가 발견한 것, 사람들이 잘 모르는 부분도 있었다"고 했다. '추가 발견한 시설이 우라늄 농축 시설 같은 것이냐'는 질문엔 "그렇다. 우리가 알고 있었던 것에 대해 북한이 놀랐던 것 같다"고 했다. 회견에 동석한 폼페이오 장관도 "영변 핵시설 외에 굉장히 규모가 큰 핵시설이 있다"며 "미사일, 핵탄두와 무기 체계가 빠져서 합의를 못 했다. (핵)목록 신고 작성 등에 합의를 못 했다"고 했다. 미측이 영변 핵시설 외 다른 핵·미사일 시설의 신고·폐기·검증까지 목표로 삼고 북한을 압박했다는 뜻이다.

조선일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28일(현지 시각) 베트남 하노이의 소피텔 레전드 메트로폴호텔에서 회담을 하던 도중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다. 이날 양 정상은 비핵화와 제재 완화에 대한 견해 차이로 합의문 없이 회담을 끝냈다. /EPA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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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대통령은 '다른 우라늄 농축 시설'이 어디를 가리키는지는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그간 미 조야(朝野)에선 영변 외 '제2, 제3 우라늄 농축 시설'의 존재를 확신해 왔다. 대표적인 곳이 평양 인근 남포시 천리마구역 동쪽 끝 '강선'이다. 워싱턴포스트(WP)는 작년 6월 "미 정보 당국이 2010년 농축 규모가 영변의 2배인 강선의 비밀 우라늄 시설을 파악했다"고 보도했다. 우라늄 농축 시설은 대규모 재처리시설 등이 필요한 플루토늄 시설보다 은폐가 용이하다. 미국이 이날 협상에서 영변·강선 외 또 다른 시설을 지적했을 가능성이 크다. 작년 7월 미 외교 전문지 '더 디플로맷'은 "정보 당국이 영변, 강선 외에 세 번째 비밀 우라늄 농축 시설도 탐지해 냈다"고 전했다. 또 지난달 아사히(朝日)신문은 전직 청와대 관리를 인용해 "북한이 최대 10곳에 이르는 우라늄 농축 시설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美 의지 오판한 北

김정은은 이날 회담에서 "모든 제재를 다 풀어달라"고 요구했다. 당초 금강산 관광이나 개성공단 재개, 또는 일부 제재 해제를 요구할 것이란 예상을 넘어선 것이다. 제재 해제가 절실한 김정은 입장에서 영변 핵시설 폐기의 대가로 연락사무소 개설, 종전(終戰) 선언, 금강산 관광 재개 정도에 만족할 수 없었을 것이란 관측이다. 국내 정치적으로 코너에 몰린 트럼프 대통령을 상대로 전략적 베팅을 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트럼프 대통령의 반발을 부른 것으로 관측된다. 김정은의 공세에 넘어가지 않고 회담을 결렬시키는 선택을 한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대 정상회담 직전에 "속도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며 "서두르지 않는다. 우리가 올바른 합의(right deal)를 하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반드시 오늘 그렇다고 얘기할 순 없어도 좀 더 장기간엔 우리가 북한과 관련해 환상적인 성공을 거둘 것을 확신한다"고 했다. 이번에 반드시 타결을 짓지 않을 수 있다는 전략으로 나간 것이다.

우정엽 세종연구소 미국연구센터장은 "국내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한 트럼프가 '어설픈 딜(deal·거래)' 대신 '노 딜(No deal)을 택한 것"이라며 "북측이 영변만으로 전면적인 제재 해제를 요구했다면 현재 협상 상황과 미국의 제재 의지를 오판한 것"이라고 했다.

[하노이=안준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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