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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6 (수)

순서 바뀌어도 편하게 굴러간다…습관, 너 별거 아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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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오래] 권대욱의 산막일기(23)
중앙일보

새해를 맞아 우리 부부는 산막에서 '함께 또 따로'의 시간을 보냈다. 목욕을 하고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고, 나는 글을 쓰고 곡우는 기도했다. [사진 권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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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는 완벽한 이심이체지만 서로 다른 가운데 같음을 찾아야 하는 '함께 또 따로'의 대상이다. 서로 참 많이도 다르지만, 산막은 그 따로 중 '함께'를 실현하는 몇 안 되는 공간이기도 하다.

새해를 맞아 우리는 각각 목욕재계하고 나는 글을 쓰고 곡우는 기도했다. 각이 맞지 않아 불편했던 소파와 TV 라인을 정렬하며 이렇게 편안한 걸 그동안 왜 못했던가 하고 생각했다. 떡국을 먹고, 낮잠을 잤으며, ‘메멘토 모리(Momento Mori)’에 대해 이야기했다.

곡우는 솔로몬과 다비드 왕의 ’This will also pass away’를 말했고, 나는 스티브 잡스의 ‘죽음과 물처럼 왔다 바람처럼 가는 인생(I came like water, and like wind I go)’을 이야기했다. 낮잠 후 이부자리 잘 갰다고 칭찬을 듣고 포옹을 받았으며 군밤과 요거트와 사과를 얻어먹었다. 기해(己亥)의 첫날이 그렇게 갔다.

모든 것은 지나간다, 현재에 충실하고 감사하라
‘메멘토 모리(Momento Mori)’, ‘욜로(YOLO)’, ‘까르페디엠(Carpe diem).’ 모두 연결된 말들이다. 그렇다. 모든 순간은 지나간다. 기쁜 일이든 슬픈, 일이든, 승리의 환희이든 패배의 좌절이든, 이 모든 것은 지나간다. 지나갈 뿐이다. 그러니 현재에 충실하고 감사하며 성심으로 매 순간을 사는 것, 그 이상 무엇이 있겠는가.

새해를 맞으면 하루 날을 잡아 산막 식구들과 떡국 한 그릇 나누는 일을 몇 해째 하고 있다. 산막은 외로운 곳이다. 사고가 날 수도 있고, 물이 나오지 않을 수도 있고, 차가 계곡 얼음구덩이에 빠질 경우도 있다. 그때마다 서로 의지가 되고 그럼으로써 서로 외롭지 않은 곳이다. 십수 년을 주말마다 만났으니 어느 형제 죽마고우가 그럴 수 있겠는가. 오늘도 곡우는 떡국을 끓이고 문어를 자르고 갓 꺼낸 김치에 막걸리에 맑은 술에 정성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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갓 삶아낸 문어와 싱싱한 김치를 상에 올려 죽마고우를 대접했다. [사진 권대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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相識 滿天下 知心能幾人(상식 만천하 지심능기인)

아는 사람 천하에 가득하나 마음까지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되겠는가.

酒食兄第 千個有 急難之朋 一個無(주식형제 천개유 급난지붕 일개무)

술자리 밥자리 친구 1000명이나 되지만 위급하고 어려울 때 친구는 하나 없고….

진정한 친구는 정녕 어렵고 위급할 때 그 빛을 발한다는데, 길이 멀어야 말의 힘을 알고 날이 오래라야 사람 마음 알 수 있듯, 친구의 사귐은 깊고 오래여야 할 것이라 믿는다. 담백하기 물과 같고 언제 만나더라도 바로 엊그제 만난 듯 세월의 간격 또한 무상할 것이다. 사랑과 우정, 가족 간 형제간의 우애 역시 그와 다르지 않을 거라 믿는다. 마종기 님의 ‘우화의 강’을 떠올리며 내가 먼저 좋은 친구가 되는한 해가 되었으면 한다.

“사람이 사람을 만나 서로 좋아하면

두 사람 사이에 물길이 튼다’

한쪽이 슬퍼지면 친구도 가슴이 메이고

기뻐서 출렁이면 그 물살은 밝게 빛나서

친구의 웃음소리가 강물의 끝에서도 들린다



큰 강의 시작과 끝은 어차피 알 수 없는 일이지만

물길을 항상 맑게 고집하는 사람과 친하고 싶다

내 혼이 잠잘 때 그대가 나를 지켜보아 주고

그대를 생각할 때면 언제나 싱싱한 강물이 보이는

시원하고 고운 사람과 친하고 싶다”

너나없이 우리는 습(習)과 관(慣)에 의존해 이 세상을 살고 있는지 모르겠다. 습(習)이라고 다 좋은 것도 아닐 것이고 관(慣)이라 해 다 나쁜 것도 아닐 터요, 개중에는 굳혀야 할 습(習)도 있고 깨뜨려야 할 관(慣)도 있겠으나 결코 얽매여 노예가 되어서는 아니 되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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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혀야 할 습(習)도 있고 깨야할 관(慣)도 있지만, 결코 얽매여 노예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진 이정환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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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휴일이라면 산막에서 된장찌개에 밥, 김치, 생선구이, 김, 계란프라이, 국으로 이루어진 집밥 먹을 시간. 우리는 집 앞 설렁탕 집에 앉아 아침을 먹었다. 다양한 메뉴 중 나는 양곰탕, 곡우는 설렁탕을 시켜 잘 먹었다. 심지어 남은 걸 대백이 준다고 비닐봉지에 싸 담기까지 해도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이제 각자 씻으러 갈 차례. 곡우를 먼저 내리게 하고 내가 곡우를 나중에 픽업할지, 내가 먼저 내리고 곡우가 나를 픽업하게 할지에 대해 습(習)을 따르되 약간의 변형을 가했다. 먼저 내가 씻고 나 씻는 동안 곡우가 기다리고, 함께 곡우의 목욕탕에 가 곡우가 씻는 동안 내가 기다리고 했어도 결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걸 보면, 습(習)이니 관(慣)이니 하는 놈들도 별거 아니지 싶어지기도 한다.

‘집 앞 식당에서 휴일 아침을 먹어도 나쁘지 않고, 씻는 동안 서로 기다려주는 맛도 나름 괜찮구나‘ 생각하고, 쉬는 날 편한 옷은 기본이고, 맨발에 스니커즈 신는 맛 또한 상쾌하고 통쾌하다 느끼는 나는 습(習)을 깨고 관(慣)을 되돌릴 소양이 충분하구나 싶다.

두고 보라. 쓰ᆞ말ᆞ노에 춤까지 곁들여 무대에서 강연하다 말고 팝핀 댄스나 문 워크를 선보이는 날이 오게 될 수도 있겠다 싶단 말이다. 깨뜨려야 할 것이 어디 문 워크뿐이랴. 내 속에 덕지덕지 앉아 ‘내가 주인입네’하는 낡고 고루한 생각은 어떠하며, 틀림없이 ‘그건 그럴 거야’하는 선입견은 어떠하며, 내가 쳐놓은 틀에 남을 끼워 맞추는 상은 또 어떠한가. 매일 털어내고 씻고 닦아도 모자랄 나의 업 아닌가 싶다.

권대욱 ㈜휴넷 회장·청춘합장단 단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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