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텐츠 바로가기

06.26 (수)

[글로벌 트렌드] 클릭 몇번으로 개인 코디네이터가 생긴다면…

댓글 첫 댓글을 작성해보세요
주소복사가 완료되었습니다
매일경제

미국 화장품 샘플서비스 업체인 `입시(Ipsy)` 가입자 안내 페이지.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 클릭 몇 번으로 연예인의 전유물인 줄 알았던 개인 코디네이터를 가질 수 있다면…."

대형 쇼핑몰이나 아웃렛에서 주로 옷을 사 입던 평범한 미국인들이 '개인 취향'을 자극하는 새로운 서비스에 열광하고 있다. '온라인 개인 스타일링 서비스'를 표방한 미국 기업 스티치 픽스(Stitch Fix)는 290만명에 달하는 유효 고객을 보유하고 있고 연간 매출액은 1조원을 훌쩍 넘겼다.

이 회사는 소비자가 미리 자신의 취향을 알려주면 정기적으로 의류, 신발, 모자 등 5개 패션 아이템을 집으로 보내주는 서비스를 제공한다. 옷을 받는 주기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짧게는 2~3주 단위부터 길게는 석 달에 한 번도 가능하다. 옷값 수준도 세 가지 종류에서 고를 수 있다. 스티치 픽스는 '스타일링 비용'으로 회당 20달러를 청구하는데 회사의 주 수입원이 된다. 옷값을 부풀려 이익을 남기는 구조가 아니다. 서비스 가입은 스마트폰에 애플리케이션을 다운받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다음은 개인 설문조사다. 먼저 신체 치수부터 꼼꼼히 점검한다. 평소 입는 사이즈에서 팔이 긴지 짧은지, 발볼이 넓은지 좁은지도 체크해야 한다. 헐렁하게 입는지, 아니면 타이트한 핏을 선호하는지도 중요한 항목이다. 심지어 어떤 패턴의 무늬를 좋아하는지도 골라야 한다.

그다음엔 수십 장의 실제 사진을 보여주면서 소비자 취향을 더욱 좁혀 들어간다. 반복 과정을 거치며 해당 소비자에 대한 알고리즘이 완성된다. 물론 실제로 제품을 받은 뒤 마음에 들지 않으면 추가 비용 없이 반품할 수 있다. 회사는 해당 소비자가 어떤 옷을 실제로 구매했고, 어떤 옷을 반품했는지 개인별 데이터베이스에 축적해 다음번엔 고객 취향에 더욱 맞는 제품을 보내준다. 축적된 데이터가 곧 스타일리스트 역할을 하는 셈이다. 스티치 픽스는 2011년 카트리나 레이크가 직원 5명으로 시작한 스타트업 기업이다. 1983년생인 레이크 최고경영자(CEO)는 스탠퍼드대를 졸업한 뒤 하버드대에서 경영학석사(MBA)를 취득했다. 컨설팅 회사에 다니다 '패션에 데이터를 접목하겠다'는 아이디어를 가지고 겁 없이 이커머스(e-commerce) 시장에 뛰어들었다.

2012년 넷플릭스의 데이터 담당 부사장이던 에릭 콜슨을 '최고알고리즘책임자(CAO)'로 영입했다. 넷플릭스 역시 가입자 취향을 파악해 영화를 추천하는 서비스로 잘 알려진 기업이다. 또 최고운영책임자(COO)는 세계 최대 유통기업인 월마트 온라인사업부 출신인 마이크 스미스다. 패션 전문가가 아니라 고객 데이터 전문가들이 스티치 픽스의 핵심 인력인 셈이다.

회사는 2016년부터 본격적인 성장 궤도에 올라섰다. 2015년 3억달러 수준이던 매출액은 지난해 12억2650만달러(약 1조4000억원)에 달했다. 2017년의 9억7700만달러에 비해 25.5%나 늘었다. 지난해 순이익은 4490만달러(약 507억원)를 기록했다. 미국 시장에서 성공 가능성을 확인한 스티치 픽스는 곧 영국 시장에 도전할 계획이다.

일찌감치 2017년 뉴욕 나스닥시장에 기업공개(IPO)도 했다. 상장 당시 시가총액은 16억달러에 달했고 2월 말 현재 시총은 25억달러 안팎을 오간다. 지난해 가을엔 매출 급증 소식에 시총이 50억달러까지 폭등했으나 제자리로 돌아온 상태다.

유통공룡 아마존이 재작년 론칭한 '프라임 워드로브(prime wardrobe·옷장)'의 시장 잠식 가능성이 발목을 잡았기 때문이다. 아마존의 신사업은 사실상 스티치 픽스를 모방한 것이다. 아마존의 프라임 회원은 온라인상에서 3~8개 아이템을 고른 뒤 택배를 받아 일주일간 입어볼 수 있다. 그리고 마음에 드는 제품만 결제하고 나머지는 반송하는 시스템이다. 스티치 픽스가 임의로 아이템을 선정해 보내주는 것과 달리 아마존은 고객이 클릭해 제품을 골라야 하는 차이점이 있다. 스티치 픽스가 아마존의 거센 도전을 잘 이겨낼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전문가가 골라준 화장품을 집에서 받아보는 유사 형태의 서비스도 미국 시장에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화장품 샘플 5개를 글램백에 넣어 매달 보내주는 '뷰티박스' 서비스를 하는 '입시(Ipsy)'는 유튜버인 미셸 판이 창업했다. 입시 역시 소비자의 피부톤, 머리색, 선호 화장품 브랜드 등을 입력해 맞춤형 샘플을 받는 서비스 구조다.

한 달 이용 비용은 10달러에 불과하다. 화장품 편집숍인 '세포라(Sephora)'도 같은 서비스를 하고 있고 '버치박스(Birchbox)' '박시참(Boxycharm)' 등도 시장에 뛰어들었다.

음식을 박스에 담아 보내주는 '푸드 박스'도 상한가다. 1회당 7.99달러인 '홈 셰프(Home Chef)'가 대표적이다. 이 밖에 커피, 과자, 견과류, 헬스보충제, 액세서리, 남성용 면도 제품 등을 제공하는 서비스도 줄줄이 등장했다.

아동과 반려동물 시장을 겨냥한 서비스도 눈길을 끈다. '아울크레이트 주니어(OwlCrate Jr.)'는 한 달 28달러에 맞춤 동화책을 보내주는데 책 내용과 관련된 소품을 동봉한다. 월 22달러를 내면 반려견을 위한 장난감과 간식을 보내주는 '바크박스(BarkBox)', 고양이를 위한 '캣 레이디 박스(Cat Lady Box)' 등도 인기다. 이 같은 형태의 서비스가 틈새시장을 넘어 새로운 소비 트렌드로 자리 잡으려면 결국 서비스 제공자의 '큐레이션' 역량이 중요해 보인다. 소비자의 까다로운 입맛을 사로잡는 데 데이터 과학이라는 신무기를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은 고무적인 현상이다.

[워싱턴 = 신헌철 특파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기사가 속한 카테고리는 언론사가 분류합니다.
언론사는 한 기사를 두 개 이상의 카테고리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