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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6 (토)

“현금복지 경쟁 그만” 여당 구청장의 분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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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 토로

“노인·출산수당 남발 다 무너질 것

중앙정부가 현금복지 전담하고

지자체는 맞춤복지 대타협 필요”

정원오 서울 성동구청장 토로

“아이디어 짜내도 현금에 빛 가려

현금복지 한번 주면 계속 늘려야”

중앙일보

정원오


“지자체들이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현금 살포 복지정책이 도를 넘어섰습니다. 현금 복지는 극약 처방과 같아요. 이런 게 우후죽순으로 번지면 지자체끼리 발목을 잡게 되고, 결국 모두 무너질 것입니다.”

청년수당·공로수당·무상의료 등의 선심성 복지정책을 내놓고 있는 가운데 더불어민주당 소속 정원오(51·사진) 성동구청장이 ‘현금 복지’의 문제점을 강하게 비판하고 나섰다. 정 구청장은 임종석 전 대통령비서실장이 국회의원을 할 때 보좌관을 역임했고 민주당 부대변인을 지낸 재선 구청장이어서 그의 지적이 더 무게있게 들린다.

그는 13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현장을 발로 뛰고 아이디어를 짜내 정책을 만들면 뭐합니까. 현금 복지, 그 간편한 걸로 주민들 눈길을 잡아버리는데요”라고 말했다. 5년여 구청장을 하며 현금 복지와 싸워 온 고충이 이 한마디에 응축돼 있다.

정 구청장은 “현금성 복지는 중앙정부가, 주민과 직접 부닥치는 서비스 복지는 주민 사정을 잘 아는 지방정부가 맡는 식으로 대타협을 하는 게 시급하다”며 “현금 복지는 제발 중앙정부가 가져갔으면 좋겠다”고 대안을 제시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Q : 현금성 복지가 문제인가.



A : “서울 중구에서 ‘어르신 공로수당’을 추진 중이다. 아직 시행도 안 했는데 ‘우리는 안 주느냐’는 (우리 관내) 주민들의 민원이 엄청나다. 구의회의 요구도 거세다.”




Q : 중구처럼 공로수당을 지급할 것인가.



A :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중구는 대상자가 1만2838명, 예산은 156억원이다. 성동구는 2만3332명, 280억원이 들어간다. 올해 우리 복지예산 2338억원의 12%다. 이를 ‘수당’으로 써버릴 수는 없다.”


문제 있는 또 다른 현금 복지로 출산장려금을 꼽았다. 전국 229개 기초단체 중 첫째부터 출산장려금을 주는 데는 145개다.

중앙일보

[그래픽=김영옥 기자 yes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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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성동구는 출산장려금을 안 주나.



A : “둘째 아이부터 20만원을 준다. 반면에 중구는 첫째 아이 20만원, 둘째 100만원을 준다. 종로구는 첫째 30만원, 둘째 100만원이다. 이러니 성동구 주민들이 ‘우리도 첫째부터 줘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항의한다. 구청장이 선거로 선출되다 보니 주민 의견을 마냥 외면하기 어렵다.”




Q : 현금 대신 뭘 하나.



A : “구립 어린이집을 늘리면서 공보육 인프라 구축에 주력해 왔는데 계속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2014년 이후 구립 어린이집을 34곳 신설했다. 믿고 맡길 만한 시설 서비스를 늘렸다. 그 결과 2017년 성동구가 서울 25개 구청 중 출산율 1위(2015~2016년 4위)를 했다. 그런데 주민들은 ‘다른 구처럼 출산장려금을 늘려 달라’고 계속 민원을 제기한다. 그러면 어린이집은 늘릴 수 없다.”




Q : 복지 예산을 어떻게 써야 하나.



A : “예산은 한정돼 있다. 같은 돈을 투자해 최대한 많은 사람이 혜택을 누릴 수 있는 서비스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내 휴대전화 번호를 주민에게 공개해 민원을 직접 받고, 불편을 호소하는 현장에 직접 가 보고, 이를 토대로 ‘서비스 복지’를 만들어가고 있다.”


“아픈 노인에겐 10만원보다 의사가 찾아가는 게 더 나은 복지”

중앙일보

서울시 중구에서 지난달 1월 부터 시행하고 있는 ‘어르신공로수당’의 홍보 페이지. [중구청 홈페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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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 서비스 복지가 뭔가.



A : “보육시설이 대표적이다. 다음으로 어르신 복지 정책을 예로 들겠다. 60대를 위해 ‘어르신 일자리 주식회사’를 만들었다. 성동구 내 만두가게·커피숍 등에서 하루 4시간 정도 일하고 생활임금을 적용해 한달에 60만원 정도 받도록 주선한다. 만 75세 이상 어르신 대상으로는 ‘효사랑주치의제도’를 운영 중이다. 간호사가 정기적으로 방문해 건강을 체크하고 의사가 찾아가는 맞춤형 건강관리 서비스다. 어르신들의 자존심을 세우고 성취감을 높이는 데는 10만원의 현금보다 훨씬 낫다. 이 정책에 대한 만족도가 95.2%였다.”




Q : 왜 지방정부가 ‘서비스 복지’를 해야 하나.



A : “시·군·구 단위까지 지방자치를 하는 이유가 뭔가. 지역 실정에 맞는 맞춤형 행정 서비스를 제공하라는 거다. 이런 서비스는 현장에 찾아가 주민과 만나 머리를 맞대고 아이디어를 짜야 나온다. 현금 복지는 아이디어도, 노력도 필요없다. 다른 지자체의 발목을 잡는다. 그래서 중앙과 지방정부 간 복지정책의 역할을 나눠야 한다. 현금 복지는 중앙정부가 맡아 전 국민을 상대로 일괄 시행하는 게 맞다. 지방정부는 지역 실정에 맞는 서비스를 만드는 데 경쟁해야 한다. 이런 서비스를 벤치마킹하는 게 건강한 지방자치제도 아닌가.”




Q : 현금 복지로 주목 받은 지자체장이 많은데, 역할 나누기가 가능할까.



A : “아마 많은 단체장이 현금 복지를 우려하고 있을 거다. 하지만 현금 복지라는 극약처방만큼 주민의 마음을 사기 힘들다 보니 계속 늘릴 수밖에 없는 구조다. ‘복지 대타협’을 해 중앙과 지방정부의 가이드라인을 마련한다면 적극 동참할 것이다. 지키지 않을 경우 패널티를 부여하면 된다.”


전문가들도 정 구청장의 주장에 공감한다. 현금 복지가 감염병처럼 번지면서 지방자치의 근간을 흔들 것이라고 경고한다. 신동면 경희대 행정학과 교수는 “현금 복지는 소득 재분배 효과가 있기 때문에 중앙정부 차원에서 전국 단위로 시행하는 게 맞다”며 “특정 지역에서 현금 수당을 지급하는 건 또 다른 사회적 불평등을 야기할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안상훈 서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도 “스웨덴을 비롯한 복지 선진국은 현금 복지를 줄이고 서비스 복지로 방향을 튼 지 오래”라며 “지자체 간에 재정 불균형이 심하기 때문에 중앙정부가 재원을 조달하고, 지자체는 현장 서비스에 집중하는 게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정원오 구청장은
서울시립대 총학생회장 권한대행 출신으로 한양대 사회복지학 석사다. 2000~2008년 임종석 새천년민주당 국회의원 보좌관, 민주당 부대변인, 노무현재단 기획위원 등을 역임했다. 지난해 지방선거에서 서울 최고 득표율로 재선됐다. 지난해 정부혁신평가에서 최우수상(대통령상)을 받았고, 행정안전부 평가에서 5년 연속 서울 1위를 했다.



박형수 기자 hspark9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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