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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폭탄 안고 사는 듯했다"…대구 사우나 건물, 3년간 소방점검서 '부적합' 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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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넘은 노후 건물, 4층엔 스프링클러 없어
최근 3년간 소방시설 안전점검서 ‘부적합’ 판정
400m 거리에 소방서… 신속한 진화로 대형참사는 피해

19일 87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구 사우나 화재는 40년 넘은 노후 건물에 스프링클러 등 소방설비가 제대로 갖춰져 있지 않아, 피해 규모가 커진 것으로 드러났다. 불이 난 7층짜리 주상복합건물은 최근 3년 동안 민간 소방시설 안전점검에서 ‘부적합’ 판정을 받았던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오전 7시 11분쯤 대구시 포정동 한 주상복합건물 4층 사우나 남탕 입구에서 불이 나 20분 만에 진화됐다. 이 사고로 2명이 숨지고 85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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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일 오전 불이 난 대구시 중구 포정동 한 사우나 건물에서 소방당국이 화재·구조작업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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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프링클러 없어 삽시간에 번진 불길
화재가 난 곳은 1980년대 전성기를 누린 ‘대보백화점’ 건물 4층에 있는 사우나다. 이 건물은 1977년 준공됐고, 1980년 사용 승인을 얻었다. 실제로는 1979년부터 이용된 것으로 알려졌다. 스프링클러는 1~3층에만 설치돼 있다. 준공할 때 1~3층이 법령상 다중이용업소인 백화점이 들어서 이곳에만 스프링클러가 설치된 것이다.

반면 4층에 있는 사우나는 다중이용업소가 아니었고, 가게 연면적(913.8㎡)이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기준(1000㎡)보다 좁아 반드시 스프링클러를 설치할 필요는 없었다고 소방 관계자는 전했다.

대보사우나는 4층에 남탕·여탕, 3층에 찜질방이 있다. 화재는 4층 남자 사우나 입구 쪽 복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소방당국은 보고 있다. 하필이면 스프링클러가 없는 곳이다. 사망자 이모(64)씨, 박모(74)씨는 모두 4층 사우나에서 발견됐다. 연기를 흡입해 병원 치료를 받고 있는 부상자도 대부분 사우나에서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입구 쪽에서 불이나 출입구가 막힌 데다, 스프링클러가 없어 유독가스가 탕 안으로 급속하게 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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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픽=이민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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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년간 소방안전점검 부적합 판정… 부분 수리만
건물의 소방시설에 대한 지적도 나오고 있다. 대구 중부소방서에 따르면 이 건물은 민간 소방시설 점검업체가 최근 3년간 6차례 실시한 소방시설 안전 점검에서 ‘비상경보설비’ ‘유도등’ ‘소화시설’ 등 항목들이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 건물은 소방법상 1년에 두 차례 소방시설 안전 점검을 받아야 하는데 소방서가 아닌 민간업체에서 받을 수도 있다. 결과를 30일 이내에 소방서에 제출하면 된다.

작년 1월과 7월 실시한 점검에서도 여러 불량 사항이 지적돼 관련 시설을 수리한 것으로 알려졌다. 소방 관계자는 "현행법상 민간 업체의 안전점검에서 개별 항목이 부적합을 받아도, 이에 대해 조치를 취하면 법적인 문제는 없다"며 "이 건물의 경우에도 안전점검 때마다 지적받은 부분만 보완해온 것"이라고 했다. 또 "건물이 노후화하면서 낡은 전기 설비 등도 문제가 됐다"고 했다.

이 건물 7층에 사는 최해수(76)씨는 "워낙 오래된 건물이라 언제 어떤 사고가 터져도 하나도 안 이상하다고 생각했다"며 "폭탄을 안고 사는 것 같았는데, 결국 일이 터졌다"고 했다.
◇아파트 복도까지 덮친 검은 연기…소방당국 발 빠른 대응

4층에서 발생한 화재 연기는 삽시간에 이 건물 5~7층에 들어선 아파트를 덮쳤다. 이 아파트엔 총 107가구, 200여 명이 살고 있다. 날벼락 같은 화재 때문에 주민들은 이른 아침부터 생사를 헤맸다.

7층 주민 박정애(68)씨는 "‘사람 살려’하는 비명을 듣고 문을 열었는데, 연기가 자욱하고 무서워서 도저히 밖으로 못 나가고 베란다에 서 있었다"며 "근처에 있던 아들이 연기를 뚫고 7층까지 올라와서 함께 겨우 탈출했다"고 가슴을 쓸어내렸다. 6층 주민 김태식(53)씨는 "경보기 소리에 놀라 집 문을 열었더니, 시커먼 연기로 복도가 가득 차 있었다"며 "한 치 앞도 안 보여 한 손으로 입을 막고 다른 손으로 벽을 짚고 겨우 탈출했다"고 말했다.

자칫 초대형 참사(慘事)로 번질 수도 있었지만 소방당국이 신속하게 진화에 나서면서 더 큰 피해는 막았다는 분석이다. 이날 화재는 오전 7시 11분쯤 발생했다. 불이 난 지 3분 뒤인 오전 7시 14분쯤 소방인력이 현장에 도착했다. 다행히 화재 현장 인근 400m 거리에 대구중부소방서 서문로119안전센터가 있어 신속한 출동이 가능했다. 소방당국은 출동 16분 만인 오전 7시 30분 완전히 진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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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과 경찰 등이 19일 화재가 발생한 대구시 중구 포정동 한 사우나 건물 남자목욕탕에서 합동감식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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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소방서 김기태 현장대응과장은 "관내 최대 인력을 현장에 투입해 빠르게 불길을 잡았다"며 "안타깝게도 사망자가 발생하긴 했지만 건물 내 수백여 명을 빠르고 안전하게 대피시켰다"고 말했다.

경찰은 이날 화재에 대해 "방화 가능성은 없다"고 설명했다. 대구중부경찰서 관계자는 "현재까지 방화가능성은 없는 것으로 보고 있다. CCTV는 건물 복도에만 있고 사우나 안쪽이나 탈의실에는 없다"며 "내일(20일) 2차 감식까지 끝나야 정확한 발화점이나 화재원인을 발표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대구=고성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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