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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29 (토)

국제 무대의 美얼굴 ‘유엔 대사’ 자리 둘러싼 이야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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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엔(UN) 주재 미국대사는 국제 무대에서 미국을 대표하는 ‘얼굴’이다. 미 대통령이 직접 지명하며 상원에 공식 인준을 요청해 청문회를 통과하면 활동을 시작한다.

정부의 정책을 명확하게 전달하면서도 UN과 충돌 없이 외교적 수완을 발휘할 인물이 적합하다. 2000년대 들어 정권마다 내세웠던 ‘UN 주재 미국대사’ 후보를 통해 대사 자리를 둘러싼 이야기를 살펴본다.

◇ 헤더 나워트, 외교 경험 ‘無’…결국 자진 낙마

방송 뉴스 앵커로 활약하며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띄어 미 국무부 대변인까지 올랐던 헤더 나워트는 스스로 차기 미국 UN 대사 후보 자리에서 물러났다. 나워트 대변인은 16일(현지 시각) 성명에서 "(후임 대사로 지명된 뒤) 지난 2개월은 우리 가족을 녹초로 만드는 시간이었다"며 "후보직에서 물러나는 게 가족에게 최선일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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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더 나워트 미 국무부 대변인이 2018년 5월 29일 워싱턴 DC에서 국무부 언론 브리핑을 진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일리노이 출신의 나워트는 1998년부터 폭스 뉴스, 2005년부터 ABC 뉴스 등 공중파에서 뉴스 앵커로 활약했다. 트럼프 대통령의 눈에 띄었던 그는 2017년 4월 조용히 백악관에 입성했다.

당시 미 국무부는 나워트를 대변인으로 임명하고 "9·11테러, 이라크 전쟁, 수단 다르푸르 사태 등 국내외 뉴스를 두루 취재한 경험이 있는 15년차 언론인으로, 국제 문제에 대해 관심이 커서 미 행정부의 외교 정책을 전달하는 데에 매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하지만 나워트는 외교 관련 경력이 전무했다. 미 언론도 이 부분을 지적했지만, 트럼프 대통령은 작년 12월 7일 나워트 대변인을 다시 UN 주재 미국 대사로 지명했다. 이후 두달 넘게 상원에 정식으로 인준 서류를 제출하지 않자 언론에서는 "신원 조사 과정에서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는 의혹도 제기됐다.

나워트의 국제 무대 진출은 결국 개인사 때문에 좌절됐다. 블룸버그통신, 뉴욕타임스 등 현지 언론들은 "신원조사 과정에서 나워트 대변인이 취업 자격이 없는 이민자를 보모로 고용한 전력이 문제가 됐다"고 소식통을 인용해 전했다. 보모는 합법적으로 미국에 체류 중이었으나 취업 비자가 없었다.

◇ 외교 경험 없어도 ‘불도저 스타일’…인도계 니키 헤일리는 통과

외교 경험은 없었지만 대사에 발탁된 인물도 있었다. 트럼프 행정부가 임명한 인도계 이민자 가정 출신의 니키 헤일리가 대표적이다.

2016년 대선 당시 헤일리는 트럼프 후보에게 "원하지 않는 모든 것을 갖춘 대선 주자"라고 직격탄을 날리며 양 극단에 섰다. 이때까지만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헤일리를 선택할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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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키 헤일리가 2018년 11월 26일 UN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중동 분쟁을 주제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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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출신 때문에 ‘공화당의 오바마’로 불렸지만, 정책만 보면 ‘리틀 트럼프’에 가까웠다. 트럼프와 똑같이 보유세 감세와 교육의 자율성을 주장했고 낙태 제한과 불법 이민자 추방에 대해서도 강경한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그는 사우스캐롤라이나 주지사로 재임 중이던 2016년 갑작스럽게 유엔 대사로 임명됐다.

헤일리 대사가 발탁됐을 때 공화당 내에선 ‘탕평’과 여성 배려’라는 말이 나왔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정책과 비슷한 주장을 했기 때문에 발탁된 것으로 알려졌다.

헤일리의 결단력과 추진력은 UN대사로 활동하며 그대로 드러났다. 그는 지난 2017년 7월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시험 발사하자 "미국은 북한과 무역하는 국가들에 대한 교역을 단절할 준비가 돼 있다"며 중국에 경고했고, 북한에 대해서는 "북한이 전쟁을 구걸하고 있다"며 군사조치 불사 의지까지 드러냈다.

‘불도저’ 스타일의 헤일리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UN 대사직을 수행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러시아에 대한 추가 제재 문제와 관련해 백악관과 의견 차를 좁히지 못했고 2018년 10월 돌연 사임했다.

◇ 美-UN 관계 복원 카드, 수전 라이스

오바마 정권 들어서 처음으로 UN 대사를 맡았던 인물은 흑인 여성으로서는 최초로 대사에 지명된 수전 라이스다. 미국과 유엔의 관계는 부시 행정부 때 크게 악화됐다. 오바마 행정부는 다시 관계를 개선하기 위해 수전 라이스를 선택했다.

라이스는 복잡한 국제 정세 속에서 명쾌하게 미국의 입장을 진솔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힘이 있었다. 2012년 라이스 대사는 북한에 대한 미국의 정책과 입장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미국의 정책이나 태도는 한결같다"며 "북한이 다시 핵실험을 강행한다면 대재앙이 있을 것"이라고 강력하게 경고하기도 했다. 그는 2009년 1월부터 2013년 6월까지 비교적 오랜 기간 UN대사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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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라이스가 2015년 7월 22일 워싱턴 백악관에서 브리핑에 참여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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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UN비판론자’ 존 볼턴, 임시 대사직 16개월 만에 낙마

대통령의 입장을 완벽하게 대변했지만, 낙마한 경우도 있다. 조지 부시 행정부 내에서 임시로 UN 대사직을 수행하고 16개월만에 낙마한 존 볼턴이 그 주인공이다.

부시 대통령은 2005년 8월 볼턴을 UN대사로 임명했으나, 대표적 네오콘(신보수주의자)이자 유엔 비판론자였던 그는 민주당의 필리버스터(합법적 의사진행 방해)로 상원 인준 청문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시 대통령은 휴회 기간을 틈타 볼턴 대사 임명을 강행했다.

부시 행정부는 북한, 이란 핵프로그램, 수단 다르푸르 분쟁 등과 관련해 유엔 외교에 의존하고 있었다. 부시 대통령은 자신의 의중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볼턴 대사를 결코 포기할 수 없었다.

하지만 부시 대통령의 결정은 여러 진통을 낳았다. 볼턴은 "UN 같은 국제 기구는 필요없다", "국제사회는 때로 유일한 강대국인 미국이 주도해야 한다"고 강조해 유엔으로부터 거센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코피 아난 UN 당시 사무총장도 "미국 의도에 맞게 UN을 개혁할 생각은 꿈도 꾸지 말라"고 경고하기도 했다.

불협화음이 지속되자 부시 대통령은 결국 볼턴의 재지명을 포기했다. 볼턴은 임시 대사직 수행 16개월만인 2006년 12월 낙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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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볼턴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2019년 1월 6일 이스라엘 총리를 만나기 위해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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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효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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